순환초월의 법칙 “극한의 상황에도 유행은 있다” [2013 패션10대뉴스②]
입력 2013. 12.24. 15:08:36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라르스벤젠은 그의 저서 ‘패션:철학’에서 ‘새로움을 향한 영원한 회귀’라는 발터벤야민의 패션에 대한 정의를 부분 수정한 ‘동일한 것을 향한 영원한 회귀’를 주장했다.
그는 유행으로 대변되는 패션이 새로운 것의 부재로 인해 과거가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느 순간 여러 시점이 동시에 한 시간대에 공존하기 시작했다면서 패션의 동시성 이론을 제시했다.
2013년 패션시장 상황 역시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의 부재라는 전제를 적용시킬 수 있을지는 다소 모호하다.
올 한 해는 전혀 새로운 트렌드의 출현은 아니지만, 과거의 재해석을 토대로 한 ‘OO사조’가 아닌 불황이 초래한 의외의 유행이 패션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PART 2. 패션, 그 드라마틱한 반전 “불황인데?”

4. 그 남자의 반바지 “에너지절감운동, 남자가 변했다”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 패션계는 때 아닌 시즌 특수로 덥지만은 않은 한 철을 보냈다. 에너지 절감 일환으로 사무실 온도 26도 유지가 권고되면서 남성들의 착장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일반 기업은 물론 관공서까지 남성들에게 반바지를 입을 것을 장려했다. 뜨거운 여름에도 신사정장이 당연시돼왔으나, 정부가 나서서 반바지를 입도록 독려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백화점마다 반바지를 중심으로 한 스타일링을 제안하고, 브랜드들 역시 반바지를 기본으로 한 수트나 비즈니스 캐주얼을 출시하는 등 시즌 특수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남성복 브랜드들은 반바지 특수 매출이 시원치 않았다고 전했다. 반바지 수요 증가를 예측 못 해 물량이 충분히 준비돼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론의 관심과 달리 보수적 성향이 강한 남성들의 소비심리가 출근용 반바지 구매에 장애가 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남성들의 출근복으로서 반바지 수요는 내년 여름이 돼서야 제대로 된 집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5. 10대들의 자존심, 캐나다구스 “개성에 앞서는 과시 욕구”
10대들의 미투 심리가 다시 한 번 괴력을 발휘하며, 캐나다구스를 명품패딩 대열에 진입시켰다.
몽클레르가 명품 패딩으로서 공고한 입지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초고가의 위용에 압도당한 10대들이 이보다 조금 낮은 가격과 캐주얼한 디자인을 내세운 캐나다구스에 열광했다.
특별한 마케팅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등골 브레이커 열풍의 중심에 선 캐나다구스는 9월 이후 현재까지 4개월 여간 유통과 미디어 전체를 장악했다.
캐나다구스는 12월 현재 한국공식판매처를 통해 수입된 물량 상당수가 거의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압구정 직영점을 포함한 극히 일부 상권에서 조금이나마 여유 있는 판매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한국공식판매처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 외에도 소셜커머스와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병행수입제품이 유통되고 있으나, 이들 역시 제한적 수량으로 앞으로 판매가 얼마나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6. 인조의 득세 “모피, 가죽…가짜라서 더 좋아”
소위 고급으로 분류되는 명품 패션사는 동물 잔혹사와 밀접하게 관계돼있다. 대중은 최고급 캐시미어 스웨터, 송치가죽 재킷, 밍크코트, 이 모든 것이 동물의 피나는 희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패션’이라는 미명아래 외면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모두가 동물보호운동가로도 된 듯 ‘인조’에 열광하고 있다. 물론 시각적, 촉각적으로 고급스러움의 모든 요건을 만족시키는 가죽이나 모피를 거부하기는 힘들지만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관점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고귀한 가치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조의 호황에 대해 불황과 SPA의 절묘한 합작품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에 따르면, 오리지널 모피를 저가에 공급할 수 없는 SPA들이 대안으로 인조모피를 생산하면서 의도적으로 동물보호 열풍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듯 인조 양털카디건이나 인조 밍크코트 등을 입으면서 이제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의식 있는 패션으로 부상한 인조모피의 유행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진연수 기자, 뉴시스, 티브이데일리 제공, 캐나다구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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