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비반지’ 속 불편한 현실;만들어진 미의 제국 “성형, 욕망인가 야망인가”
- 입력 2014. 01.04. 15:05:41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의 미색美色탐구] 한국이 성형제국을 넘어서 성형산업 강국으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명실 공히 아시아 최강 ‘미의 제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개별화된 ‘미’를 보편타당한 몇 가지 경우의 수로 함축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미의 기준을 세우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했다.성형은 외모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반적 미적 조건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자존감을 찾아준다며 논란을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성형으로 얼굴과 몸을 바꾼 이들이 그들 앞에 펼쳐진 새 삶에 만족할지에 대한 질문에 성형전문의들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대답을 회피한다.
어제(3일) 종영한 KBS ‘루비반지’에서 언니와 얼굴을 바꾸고 언니의 삶을 산 여주인공 정루나의 마지막 대사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당신은 욕망을 가지고 있나요? 욕망과 야망의 차이가 뭐죠? 당신은 기회가 없었을 뿐이에요”
극 중 정루나는 사고를 통해 의도치 않게 언니 정루비의 얼굴을 가지게 되면서, 학벌과 미모에 재벌가 연인까지 모든 것을 가진 언니의 삶을 원래 제 것이었던 것처럼 살게 된다.
그는 언니의 삶을 사는 것에 멈추지 않고 기업을 욕심을 내고 정치인이 되겠다는 욕망을 키웠다. 결국,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꿈같은 현실에 회복하기 힘든 균열이 생기고 힘들게 파고 들어간 삶에서 도태된다.
성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한 ‘미’에 있다면 성형중독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머쓱해진다.
그러나 성형으로 얼굴을 바꾸려는 이들 대부분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게 되면 사회 시선이 달라지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다.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스스로 성형미인이라고 밝히는 상당수가 객관적으로 뛰어난 미인이라고 할 수 없고 심지어 불편할 정도의 부자연스러운 외모를 가졌음에도 성형 전과 달리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해온다”며 공감하기 힘든 만족감을 드러낸다.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적 행동은 빗나간 것 즉, 다른 상황에서 유용한 혹은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안한 부산물일지 모른다”며 대중이 만들어낸 종교와 신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이것을 망상의 범주에 포함시켜 진화론의 타당성을 강조했는데, 서문에서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며 진실이라 믿는 상당수가 절대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미의 기준과 만족은 철저하게 상대적이다. 패션 좀 안다는 여성들이 아침에 옷장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망설이면서 자기만족이라고 역설하지만, 실상은 절대다수인 타인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해 만족과 불만족을 결정한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타인이 넘치는 사회 속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 통해 비춰지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내 삶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외모에 의해 시작된다는 망상 때문이다. 이 망상은 잘못된 욕망으로 이어지고 이 욕망은 불필요한 야망을 키워 결국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욕망하되 집착하지 말고 야망을 가지되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형이라는 대가를 치른 욕망은 집착하지 않을 수 없고. 성형을 감행하면서까지 키운 야망이 성취되지 않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KB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