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이병헌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 입력 2015. 02.26. 10:46:58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병헌이 26일 이른 시각 아내 이민정과 함께 귀국했다. 유부남이, 그것도 아직 신혼인 새신랑이 조카뻘은 됨직한 신인 연예인들과 부적절한 대화 등을 나눴고 그게 덜미를 잡혀 50억 원을 뜯길 위기에 처하자 법에 호소한 끝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입국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했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다수의 취재진이 이병헌과 이민정의 얼굴을 향해 플래시 세례를 퍼부었다.
이병헌은 작정한 듯했다. 할리우드에까지 진출한 그는 의외로 수수한 복장에 진지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서 ‘모든 게 내 탓이오’를 시종일관 고수하며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면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 관리 차원의 연기든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적지 않은 대중이 불편한 속내를 숨기려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그의 공손한 태도만큼은 그만큼 적지 않은 대중의 화를 가라앉힐 만했다.
그럼에도 ‘50억 원 협박사건’이 그의 인생, 정확히 배우인생에 최대 위기임은 사실이다. 그는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이병헌은 배우다. 당장 그의 눈앞에 닥친 큰 숙제는 지난해 말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일단’ 연기된 ‘협녀: 칼의 기억’부터 올 6~7월 개봉예정인 ‘내부자들’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다.
지난해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은 총 관객 160만 명에 그쳐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실패했다. 강동원과 송혜교라는 나쁘지 않은 주연배우의 조합에 내용 역시 따뜻한 휴먼스토리였던 것을 감안하면 참패다. 영화라는 게 주연배우 한 명 잘못 캐스팅했다고 흥행에 참패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받긴 한다. 개봉 직전 송혜교는 세금 과소납부 사실이 알려져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고 그게 영화의 진정성을 훼손한 탓이 컸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이병헌의 브랜드가 한참 뒤에 가는 ‘터미네이터’ 자체가 브랜드이기에 국내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별 눈치 안 보고 예정대로 개봉을 강행군할 계획이지만 이병헌과 조승우, 그리고 이병헌과 전도연이 주연인 ‘내부자들’과 ‘협녀’의 배급사 입장에선 체감온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병헌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1인2역으로 이 영화의 흥행을 주도했다시피 이번 두 영화의 흥행의 선두에 서야 할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유죄판결이 내려져 실형이 선고된 두 명의 ‘협박녀’들을 구제해주기 위해 법원에 피해자처벌불원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진심이든 ‘작전’이든 ‘신의 한 수’였다. 여기에 지난해 아내가 임신사실을 알린 것은 화룡정점이었다.
여론은 이병헌을 미워할지언정 이민정에게는 동정적이다. 그건 어엿한 사실이다. 이병헌이 나잇값과 이름값을 못했을망정 멀쩡한 한 여자의 남편이자 곧 새 생명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만큼은 엄연한 사실이고, 이병헌 때문에 그들이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것을 대중은 잘 알기 때문이다. 연좌제는 어디서든 있어선 안 된다.
게다가 이민정 역시 피해자다. 사랑했기에 결혼까지 이르렀고 그래서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기분을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겨줬다. 그 누구보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바로 이민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는 처지다. 만약 이번 일로 그녀가 이병헌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뱃속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아비 없는 자식’이 될 터고, 자신 역시 결혼 직후 이혼할 만큼 판단이 잘못됐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자충수를 두는 셈이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연예인 겸 가장인 이병헌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부부는 사랑으로 결혼하지만 결혼생활은 믿음과 정으로 유지한다고 했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이병헌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이민정이다. 그런 면에서 임신한 이민정은 최대의 내조를 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그런 그녀에게 평생 속죄하고 봉사하며 살아야 할 이병헌이다. 진정으로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대중의 싸늘한 눈에 어린 분노까지 풀 수 있다.
더불어 관객은 ‘협녀’와 ‘내부자들’에 대해 ‘두근두근 내 인생’이나 ‘쎄시봉’에 보낸 분노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삼 시 세 끼’ 제작진이 장근석을 통편집했던 것과 영화는 다르다. 방송이야 정 안 되면 한두 회 결방하면 되지만 영화는 주연배우 중 한두 명을 편집할 수 없고 미개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영화 한 편에 투입되는 제작진과 출연진만 해도 최소한 1~200 명이다. 여기에 투자사 제작사 홍보대행사 및 후반작업 관계자들까지 포함하면 수백 명은 물론 대작의 경우 1000 단위까지 동원된다. 제작기간 역시 기획단계, 시나리오 수정 과정, 프리프로덕션 기간 등을 포함하면 4~5년은 기본이다. 이런 복잡하고 포괄적인 작업을 거친 한 편의 영화가 주연배우 한 명으로 인해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잃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가 매우 허무하다.
한국의 관객과 할리우드의 제작진이 이병헌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인간성 때문이 아니다. 배우로서의 연기력과 관객을 향한 흡인력이다.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데 대해서 도덕적인 질타로 충분히 처벌받음이 마땅하다. 만약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편집이 정답이다. 드라마 주인공을 맡았다면 최소한 편성을 연기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영화는 좀 다르다.
어차피 영화는 관객이 신중한 선택을 거쳐 어느 정도 거리를 이동해 돈을 주고 관람권을 끊고 약간 기다린 뒤 감상하는, 적극적 주관적 판단을 거쳐 심판을 받는 콘텐츠다. 만약 아무리 영화에 관심이 가고 조승우나 전도연이 보고 싶더라도 이병헌이 꼴 보기 싫어서 내키지 않는다면 안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자체를 즐기고 싶은 사람까지 보지 말라고 만류할 순 없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보여주는 것은 연기다. 어린 두 여자를 희롱한 실제상황이 아니라 감독의 연출의도에 맞춰 최대한 캐릭터를 표현해낼 따름이다. 영화 연출의 기본이 사실감이지만 영화가 현실이라고 보는 관객은 없다. 2시간 픽션의 세계를 즐길 따름이다.
실망하고 화났다면 이병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 이날 이른 시각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사과하는 그의 태도라면 여론의 돌팔매질을 충분히 받아들일 것 같다. 하지만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를 보지도 않은 채 돌을 던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영화 자체에 대한 진중한 평가, 그 영화의 캐릭터 속에 녹아들어가 작품을 충분히 살리는 이병헌으로 평가받는다면 영화에 매달린 수백 명의 관계자들의 노고가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이병헌에게 대중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리고 고마운가를 절실하게 깨우쳐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극장에 돌을 던지든가.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