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김건모가 신승훈 서태지와 다른 이유
- 입력 2015. 03.03. 10:09:24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대중음악계에서 레이블은 중요하다. 지금은 기획사 시스템이 워낙 좋아서 음반제작사 혹은 PD메이커(음반을 기획하고 가수 매니지먼트를 하는 제작사) 등의 레이블 시스템보다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지만 1980~90년대 한국 가요계에는 레이블 시스템이 대중음악의 유행을 주도했다. 현재 JYP는 소울 성향으로, SM은 유럽식 댄스뮤직으로, YG는 힙합으로 각각 이미지를 짙게 풍기는 게 그 증거다. 유희열의 안테나뮤직은 당연히 클래시컬한 발라드다.
70~80년대 가요계는 지구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아세아레코드, 성음레코드, 서울음반 등의 토종 레코드사가 주도하다가 80년대 중반 이후 몸집을 불린 PD메이커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며 헤게모니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음반 기획 제작 유통 및 가수 매니지먼트를 통합한 거대 몸집의 동아기획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장기콘서트 붐을 조성한 4인조 록밴드 들국화의 소속사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 회사는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푸른하늘 한영애 등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직 신의 최고 뮤지션들을 대거 보유하고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음악성의 보증수표로 인정받으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한 뮤지션들의 음반을 쏟아냈다.
그리고 91년 신승훈이 자작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들고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신승훈의 소속사는 라인기획이란 작은 매니지먼트사였다. 그런데 신승훈이란 ‘거물’의 등장은 이 회사를 얼마 지나지 않아 ‘공룡’으로 키웠다.
신승훈이 발라드의 황제로서 승승장구하는 사이 라인기획은 이듬해 김건모라는 ‘괴물’을 데뷔시킨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가요계는 60년대 록과 소울을, 70년대 포크를 각각 유행시킨 뒤 80년대 하드록부터 재즈까지 서양의 대중음악 장르 중 거의 모든 종류를 다 수입했고 널리 알렸지만 유독 흑인의 리듬앤블루스 만큼은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벽을 허문 장본인이 바로 김건모였다. 이승철의 히트곡을 다수 작곡한 박광현의 재즈곡 ‘잠도 오지 않는 밤에’의 일부 멜로디를 도입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한 김건모는 80년대 초 이미 미국에서 유행되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 국내에서 신정숙과 홍서범이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랩을 비로소 한국 가요시장에 정착시키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후 신승훈과 김건모는 발라드와 리듬앤블루스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라인기획에서 라인음향으로 정식으로 음반제작사로 몸집을 불린 소속사를 급성장시켰다.
이후 이 회사는 노이즈 클론 등의 댄스그룹으로 아이돌시대의 서막을 열었으며 발라드가수였던 박미경을 김추자의 뒤를 잇는 한국의 대표 여자 소울 보컬리스트로 변신시켰다.
신승훈도 훌륭한 뮤지션이지만 예전에도 있었던 발라드 계열인 데 비교해 김건모는 불모지인 리듬앤블루스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그 값어치가 약간 더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게다가 김건모는 3집 ‘잘못된 만남’으로 한국 가요계 최초로 최고 판매고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공식 기록까지 보유함으로써 남다른 존재감을 뽐낸다.
당시 가수들이 TV 출연을 꺼리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더욱 금기시하던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김건모는 ‘폼’ 잡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그맨들과 코미디를 겨루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색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김건모가 신승훈이나 서태지처럼 신비주의 작전을 구사하지 않아서 그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가 한국 가요계에 끼친 업적과 보유한 음악성 그리고 유니크한 가창력은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록계의 제 2의 조용필이 임재범이고, 발라드계의 제 2의 조용필이 신승훈이라면, 김건모는 만능의 제 2의 조용필이다.
요즘 흔히 ‘소몰이 창법’이라고 해서 너도 나도 R&B 창법을 구사하는데 이것은 김건모가 있기 전과 후로 구분된다. 즉 김건모가 흑인음악을 널리 유행시킴으로써 가수들이 리듬앤블루스의 구사에 자신감을 갖고 나서게 된 이후 본격적으로 소몰이 창법이 국내 가수들 사이에서 유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대중은 스티비 원더, 코모도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같은 미국의 소울 뮤지션들을 좋아해왔지만 가수들이 소울을 직접 시도한 예는 신중현과 그가 배출한 박인수 김추자 등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그 금기의 벽을 깨고 현재의 리듬앤블루스 혹은 R&B의 대유행을 주도한 장본인이 바로 김건모다.
더불어 그는 자메이카 흑인들의 토속음악으로서 밥 말리가 세계 팝시장에 유행시킨 레게를 한국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렸으며(‘핑계’) 그에 그치지 않고 ‘흰 눈이 오면’ 같은 전형적인 클래시컬한 마이너 발라드까지 대중에게 선사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건모가 회식비 단골 지불자라는 게 웃음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그가 음반판매 수익금부터 저작권료까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번 연예인이라고 모두 주변사람들에게 씀씀이가 좋진 않다. 오히려 지갑조차 들고 다니지 않으며 대접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스타다 더 많다. 그래서 남한테 ‘쏘기’ 좋아하는 김건모의 ‘통’과 인정은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뒤풀이도 그의 지갑이 해결했다고 한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I Believe’도 명곡이지만 김건모의 속사포랩과 슬픈 멜로디와 가사의 불협화음이 멋진 ‘잘못된 만남’, 애절한 마이너 멜로디와 그보다 더 가슴을 저미는 피아노 연주가 클래식을 비웃는 ‘흰 눈이 오면’, 가사에 인생이 녹아있는 ‘미안해요’ 등 역시 가요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이다.
결국 90년대 가요계의 음반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라인음향은 신승훈이 초석을 다진 게 맞지만 일등 레이블로 우뚝 세운 장본인은 바로 김건모다. 동아기획이 언더그라운드의 메카였다면 라인음향은 리듬앤블루스의 본산지였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요즘 노래방에서 부르는 젊은이는 많지 않지만 ‘핑계’부터 ‘사랑이 떠나가네’ 등 김건모의 주옥같은 히트곡을 부르는 중장년층부터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껏 그 흔한 옷 한 벌 못 해주고 어느새 거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던 무심한 나를 용서할 수 있나요. 미안해요. 이 못난 날 만나 얼마나 맘고생 많았는지’라는 ‘미안해요’의 가사는 청소년에게 ‘Come back home’을 외치는 서태지의 사회계도적 메시지는 없지만 대신 우리네 지난하고 고단한 삶 속의 진정한 결혼과 인생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아주 쉽고도 절절하게 일깨워준다. 그게 김건모라는 뮤지션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티브이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