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블러드’ 실패는 구혜선 안재현 탓?
- 입력 2015. 03.04. 11:32:38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3일 방송된 KBS2 ‘블러드’가 시청률 5.4%(이하 전국기준,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2일보다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월화드라마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위 MBC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3일까지 거의 전 언론이 이 드라마에 냉담했지만 4일 우호적인 시선을 던지는 일부 매체가 눈에 띄기도 한다. 어떤 ‘힘’이나 ‘노력’이 개입된 의심은 살짝 들지만 증거는 없다. 다만 이미 1~2회 만에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선 ‘언론플레이’보다 진실에 근거한 재미와 완성도라는 진리 하나만큼은 변할 수 없다.
희한하게도 ‘별에서 온 그대’의 유사한 상황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별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는 술에 취해 ‘진상’을 떨고 술을 못 마시는 도민준(김수현)은 그녀를 챙겨준다. 박지상이 인사불성의 유리타를 업고 숙소까지 와서 침대에 눕혀주는 것처럼.
하지만 시청자들은 ‘별그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는 분위기다. 누가 봐도 어색하고 두 사람의 ‘케미’가 잡히지 않는다.
이날 두 사람의 달달한 숲 속 데이트는 그들이 제주도 숲에서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한 신이었다. 리타는 들개에 쫓겨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한 소년이 목숨을 구해준 기억이 있고 그 오빠를 계속 그리워하고 있다. 그 소년은 박지상이다.
천송이의 위기가 때마다 슈퍼맨처럼 나타나 구해준 이 역시 도민준. 그는 이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들통 나고 그게 러브라인의 급물살의 조류가 된다.
전지현은 지난해 34살이었고 김수현은 27살이었다. 아무리 도민준이 늙지 않는 외계인이라고 할지라도 정신연령이 어린 천송이와 묵을 대로 진득하게 묵은 도민준의 캐릭터에 시청자의 정서를 몰입시키기 위해선 배우들의 캐릭터 설정과 연기력 그리고 연출력 등이 중요하다.
‘별그대’에선 아무런 어색함이 없었는데 오히려 두 사람의 나이차가 적은 ‘블러드’는 시쳇말로 손발이 오그라든다. 32살의 구혜선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오빠’가 29살의 안재현이란 겉모습은 ‘별그대’의 상황보단 조금 나음에도 현실감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김수현이 나이보다 늙어 보이고 안재현이 그 반대라고 분석할 수 있겠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연기력과 연출력의 문제다.
유리타는 안하무인이고 욕심 많은 ‘진상’ 캐릭터다. 천송이 역시 중증의 스타병에 걸린 ‘천사 같은 환자’지만 구혜선과 전지현의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게다가 유리타가 그리는 ‘오빠’가 박지상이라는 두 사람의 사랑의 결정적인 비밀은 헛웃음을 유발할 따름이다.
‘블러드’의 편성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하더라도 2013년 자폐증 환자가 진정한 의사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리며 훌륭한 의사의 모델을 제시한 ‘굿 닥터’의 박재범 작가와 기민수 PD가 다시 만났고 그들의 주특기인 메디컬 드라마에 뱀파이어를 결합했다는 아이디어가 주는 기대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모조리 ‘거품’이었다. 드라마는 감독의 역량이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와 달리 작가의 필력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귀하고 신선한 인삼이라고 할지라도 요리사의 실력이 부족하면 도라지만 못한 법. 조리장인 연출가부터 보조인 배우들까지 손발이 안 맞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는 바람에 총체적 난국이다. 물론 허술한 내러티브를 보이는 작가의 필력 역시 ‘굿 닥터’의 작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
이 드라마는 크게 신이 되겠다는 욕망을 불태우는 이재욱(지진희)과 뱀파이어로 변했지만 다시 인간이 되고 싶은 박지상(안재현)의 대립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며, 여기에 박지상과 유리타의 러브라인을 비슷한 비중으로 세운 가운데 ‘굿 닥터’의 이데올로기를 살짝 가미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긴장을 유지해줘야 할 이재욱과 박지상의 대립각은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해 결코 손바닥의 땀을 유발하지 못하고, 박지상과 유리타의 과거의 인연과 현재로 이어지는 질긴 애정의 구도는 작위적일 뿐 신선함이 없다.
요즘 동안의 사람에게 ‘뱀파이어’라는 표현을 쓴다. 그건 소설 속의 가상의 종인 뱀파이어가 비록 음습하고 사악한 이미지에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야 하는 나쁜 점이 께름칙하긴 하지만 가공할 힘을 갖고 있는데다 목이 잘리지 않는 한 젊음을 유지한 채 영생한다는 매우 큰 장점을 보유하고 있기에 결론적으로 부러워한다는 증거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인간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는 서로 사랑하지만 종의 차이 때문에 갈등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은 멀쩡하지만 늙어갈 벨라를 끝까지 사랑할 자신이 없고, 뻔히 이별이 정해져있기에 그 사랑 앞에서 망설인다.
그러자 벨라는 에드워드에게 자신의 목을 물어줄 것을 부탁하지만 에드워드는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인간으로서의 한계적 삶이 나은지, 뱀파이어로서의 영생이 더 나은지 판단을 못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에드워드는 벨라를 문다.
이건 보편타당한 정서다.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긴 하지만 시리즈를 이어가며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다수의 정서를 관통하는 내러티브의 타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러드’의 박지상은 도로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이재욱은 이미 신적인 뱀파이어임에도 더 전지전능한 신이 되고자 한다. 이게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왓치 맨’에서 신보다 더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은 바꾸지 못 한다”며 지구를 떠난다. 신도 못 하는 게 있다. 이재욱이 신이 되고자 하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배우의 기본은 발음과 표정연기다. 그런데 안재현의 발음은 부정확하고 구혜선의 목소리 톤은 과한 데시벨로 시청자의 불쾌지수를 상승시킨다.
안재현의 표정은 한두 가지 밖에 없으며 구혜선의 표정은 캐릭터에 비해 아직 덜 자란 성장의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이렇게 총체적 난국인데 모든 비난의 화살을 안재현과 구혜선에게만 집중시킨다든가, 억지로 구혜선과 안재현의 연기력이 나아지고 있다고 주입하려는 시도는 적합한 처방약은 아니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사진= 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