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중상 해리슨 포드는 ‘블레이드 러너’가 될까?
- 입력 2015. 03.06. 13:08:31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할리우드의 대스타 해리슨 포드(73)가 5일(현지시각) 자신의 2인승 소형 비행기를 타고 가다 LA의 한 골프장에 추락해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남자 액션배우인 포드는 오랜 기간 비행사로도 활동해왔다.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과거에도 몇 차례 추락 사고를 겪은 바 있지만 이번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드의 대표작을 들자면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1982년 공개됐으나 ‘E.T.’에 밀리고 평단에서 외면 받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라진 이후 마니아들의 발굴에 의해 SF의 걸작으로 재평가돼 영화사를 빛내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캇 감독)를 빼놓곤 그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할 수 없다.
배경은 2019년 LA. 지금보다 훨씬 더 과학이 발달된 배경은 첨단 비행물체가 날아다니고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줄서있으며 화려한 네온사인이 인간의 욕망을 대변해주지만 정작 사람들이 사는 바닥은 쓰레기투성이고 하늘에선 줄곧 비가 내려 전체적인 거리의 분위기는 음습하다.
그리고 건물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간판은 히라가나와 한자가 난무하고 거리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넘쳐나며 마치 일본의 노점상같은 우동 간이 판매대도 눈에 띈다.
다국적 기업 타이렐 사는 리플리컨트(복제인간)라는 4년 수명의 복제인간을 만들어 다른 행성의 식민지화 작업에 노예로 써먹고, 국가는 필요에 따라 인간과 복제인간의 구별능력을 지닌 블레이드 러너를 시켜 이들을 제거하곤 한다.
그러던 중 로이 베티(룻거 하우어)를 두목으로 한 6명의 리플리컨트가 식민 행성에서 유혈 폭동을 일으킨 뒤 지구로 잠입하고, 국가는 이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그 임무를 노련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에게 맡긴다.
데커드는 타이렐 박사(조 터켈)가 자신의 조카의 기억을 이식해 만든 미모의 리플리컨트 레이첼(숀 영)을 만나는데 금세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다. 하지만 이 인간과 복제인간은 금기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데커드는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이 죽이려던 로이로부터 구원을 받자 복제 인간의 처절한 아픔과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는 마침내 레이첼을 데리고 인간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다.
이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속도감 넘치는 액션이나 어드벤처적 요소는 없다. ‘스타 워즈’ 같은 화려한 볼거리와 시원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더욱더 실망할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역사와, ‘스타 워즈’처럼 선과 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근거로 한 웅장한 대서사시와는 길이 다르지만 그러나 데카르트 이상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진지한 철학만큼은 단연 압권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한다. 뒤늦게 자연 및 생태계 보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곤 있지만 이미 인간은 여러 종을 멸종시켰고, 멸종위기를 초래했으며 많은 면적의 환경을 파괴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부터 인간의 노예로 길들여온 개를 이젠 한 식구라며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싫증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버리기 일쑤고 마치 필요에 따라 죽여도 되는 산업폐기물 정도로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했다.
‘블레이드 러너’는 이미 30여 년 전에 이를 경고했고, 예언했다. 스캇 감독은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결국 인간의 교만함과 욕심 때문에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이 영화에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 식으로 투영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자 아등바등한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단순히 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돈에 집착한다. 하지만 사람은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진 시간대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고, 돈을 긁어모으려 혈안이 될수록 피의 순환은 역류해 삶과 건강이 피폐해진다.
리플리컨트의 생명이 4년으로 유한한 것은 100년 살기가 어려운데 그토록 삶에 집착하는 사람에 대한 조롱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뒤 그렇게 영생을 얻고자 노력했지만 정작 통일의 대가로 수많은 사람들과, 정권유지의 욕망으로 귀한 서적들과, 영생추구의 과정으로 속국과 사람들이 희생양으로 스러졌다.
‘블레이드 러너’ 속 리플리컨트는 반려견이고 국민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경찰이고 군인이다. 그리고 사람은 신이거나 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런 비유는 ‘블레이드 러너’의 디렉터스 컷 안에 담겨져 있다. 타이틀롤을 맡은 해리슨 포드조차 데커드가 사람인 줄 알고 연기했지만 스캇 감독은 나중에 ‘데커드 역시 리플리컨트였고 그에 대한 암시 장치는 영화 몇 군데에 녹아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데커드는 사람이 만든 복제인간들을 죽이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소유한 인격체며 자신을 죽이려는 인간을 살려주는 따스한 가슴을 갖고 있다.
스캇 감독은 이렇게 이 축축한 비가 스멀스멀 인류의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암울한 미래세계에서 생명의 존엄함을 일깨우며 인간의 아전인수식 이데올로기에 준엄한 경고를 던진다.
해리슨 포드는 30대 후반에 이 중요한 이중인간의 역을 맡아 혼돈의 세계를 사는 불확실성의 캐릭터를 소화해냄에 있어 완벽보다는 ‘허허실실’ 작전으로 감독의 연출의도에 잘 부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블레이드 러너’의 실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E.T.’에 그가 단역으로 출연했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에도 단역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다는 점.
‘지옥의 묵시록’이 구체적으로 베트남전을 콕 찍어 미국의 패권주의와 그로 인해 파생한 전쟁의 광기에 대한 감독의 준엄한 경고와 심판이었다면 ‘스타 워즈’ 역시 미국인의 시각에서 본 신화 속에 선과 악의 진정한 의미와 경계를 웅변했다. 해리슨 포드는 이렇게 위대한 영화들을 이끈 ‘영웅’이므로 반드시 영화처럼 병상에서 쌓인 먼지를 툭툭 털고 벌떡 일어서 다시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작두 타는 무당’에 근접한다. 포드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영웅 역을 자주 맡았으므로 신기 내린 무당처럼 기적적으로 치유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 사진=‘블레이드 러너’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