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욕설 파문, 방송이 전쟁터다
입력 2015. 03.06. 17:35:38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상파 방송이건 케이블TV건 욕설파문이 일파만파다.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다. 부랑자나 범죄자가 아닌 연예인 혹은 지망생이다. 사건의 최종책임자일 지상파 방송사는 슬며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고, 케이블TV는 교묘하게 시청률로 연결시키려 한다.

이태임은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이하 ‘띠과외’) 녹화 중 후배인 예원이 반말을 했다며 격분해 “CB, M쳤냐? XX버린다”는 욕을 했다는 내용이 알려짐으로써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아 괴로워하더니 급기야 통원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처음엔 ‘욕을 한 건 잘못했지만 반말에 화가 났다’며 변명을 늘어놓더니 상황이 더욱 나빠지자 결국 백기를 들고 ‘무조건 사죄’로 고개를 조아렸다.

한 매체의 르포기사를 보면 사건 당일 이태임은 지난 10년의 슬럼프에 대한 좌절감과 우울증이 심해진데다 추운 날씨 탓에 최악의 컨디션이었고, 그런 스트레스와 설움의 파편이 엉뚱하게 예원에게 튄 것으로 분석된다. 간신히 주연을 따낸 SBS 주말극 ‘내 마음 반짝반짝’마저 신통치 않은 시청률로 시청자에게 외면당하자 낭패감이 큰 상태였다고.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 중인 여성래퍼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디스전이 화제로 떠오른 가운데 랩의 수위와 욕의 강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원색적이라는 시청자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5일 방송된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예전부터 꾸준히 서로를 비난하며 ‘디스랩’을 구사해왔던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고민 끝에 마이크를 잡은 타이미는 “사람 아닌 돼지랑은 못 놀겠네”라는 강도 높은 비난을 욕으로 이어갔다. 그러자 제작진은 ‘삐’라는 기계음으로 욕을 지웠지만 방송 후 “FUCK” “니 쌍판이 코미디” “BITCH도 못생긴 X는 못해” “너 같은 건 평생 구경도 못해 모텔” “더 깝치면 X돼, 이 X돼지야”라는 내용이 그대로 담긴 무삭제판 영상을 올려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졸리브이 역시 “메가폰 잡고 가슴 흔들며 말하겠지, Shake it. 그리고 물어봐야지 ‘오빠 나 해도 돼?’”라며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충격적인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이는 과거 타이미가 이비아라는 예명으로 활동할 당시를 비아냥거린 것. 예전에 타이미는 ‘오빠 나 해도 돼?’라는 적나라한 내용을 담은 19금 랩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졸리브이는 “X같은 STUFF” “FUCKING TINY”등의 욕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시청률은 1.3%로 ‘띠과외’의 1.7%에 비교하면 다소 낮지만 케이블TV라는 플랫폼을 기준으로 할 때 아주 나쁘진 않다. 시청자들 역시 불편하고 심하다며 욕을 하지만 그러면서 본다. 사람들이 구경하기 좋아하는 것은 단풍보다 화재와 싸움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하지만 이를 교묘하게 시청률로 연결시키려는 케이블TV나 앞날이 창창한 두 여자 연예인이 욕설논란 때문에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프로그램의 최종책임자로서 모른척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욕을 한 당사자인 이태임 타이미 졸리브이 등에게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태임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녀가 아무런 죄 없는 예원에게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화풀이를 할 근거나 타당성은 전무하다. 게다가 그녀의 인내심이 폭발한 것 역시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녀가 배우의 길로 접어든 것은 누가 강요한 이유도, 그러지 않으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울며 겨자 먹기도, 남에게 속아서 잘못 선택한 과오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전망 그리고 적성과 가능성으로 결정한 일이다.

10년이나 활동했음에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뛰어난 매니저(기획사)를 못 만났거나,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이 부족했거나, 그것도 아님 운이 없어서다.

하지만 생계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그 전달 기준으로 취업을 하고 싶고 일을 할 능력을 지녔지만 워낙 어려워 구직을 단념한 사람이 무려 45만5000명이었다.

한 누리꾼은 배달을 하며 먹고 사는데 그 일이 자랑스럽진 않지만 연간 3000만 원의 수익이 발생하니 만족한다는 내용을 댓글로 달았다.

적어도 이태임은 그 배달부처럼 남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한겨울 제주도 바닷가에서 촬영하고 입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체로 배우는 블루컬러 노동자보다 쉽게 돈을 번다.

뿐만 아니라 이태임처럼 10년 이상 배우생활을 해왔음에도 아직도 무명에서 허덕거리는 생계곤란자는 수두룩하다. 그나마 이태임은 무슨 복인지 주연을 꿰차지 않았는가?

그녀가 힘들게 ‘띠과외’ 촬영에 합류한 것은 어떻게든 뜨겠다는 목적이다. 그 정도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건 SBS ‘정글의 법칙’ 출연자들 앞에선 결례다.

그럼에도 결국 모든 책임은 MBC로 귀결된다. 무슨 이유로 시청률에 별 도움이 안 될 이태임을 사전에 심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캐스팅해 논란을 야기했는지에 대한 시시비비는 MBC 몫이다. 더불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체감온도를 못 느끼고 수수방관하거나 아니면 살짝 피해있는 듯한 모양새는 거대한 공룡 덩치의 지상파 방송사가 할 체면치레가 아니다.

그건 재벌그룹 CJ의 계열사인 엠넷도 마찬가지. ‘언프리티 랩스타’의 기획단계부터 이런 욕설과 성희롱을 염두에 뒀다면 방송위원회와 시청자들로부터 강도 높은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고,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런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을 즐기거나 최소한 방관한 데 대해 사과와 자체정화의 노력이 필수다.

제작진은 타이미와 졸리브이가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고 발뺌할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마저 염두에 두지 못한 무성의와 혹은 알고서도 그걸 교묘하게 시청률 상승으로 오용한 의뭉스러움에 대해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10여 년 전 첨예하게 대결하던 이스트힙합 뮤지션과 웨스트힙합 뮤지션의 갈등이 극에 달해 총격 사망사건이 발생해 세계적인 주목을 끈 바 있다. 제작진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만약 몰랐다면 래퍼를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 자격이 미달이다.

플랫폼의 차별화가 붕괴된 이후로 각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이 그야말로 무기와 유혈 없는 전쟁인 것은 이해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자를 이겨야 하니까.

하지만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겨우 소수점 이하의 시청률에 목맨다면 결국 그 시청률은 목을 옥죄는 올가미로 다가올 것이다. 소수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 사진=이미화 기자, Mnet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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