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2’ 한국 최초 개봉의 의미
- 입력 2015. 03.10. 15:02:44
- [유진모의 테마토크] 외화 직접배급사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측은 언론과의 접촉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을 북미보다 앞서 국내에서 먼저 개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달 중순에 LA에서 월드프리미어 행사를 치른 후 월드 투어로 대대적인 홍보를 할 계획이라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한국에서 개봉시킬 예정이고, 그에 발맞춰 일부 주연배우의 내한 홍보행사도 갖겠다는 것.
이 영화는 서울 곳곳에서 촬영된 사실만으로도 이미 국내 관객들에게는 관심과 호감의 대상이다. 과연 할리우드에서 서울의 풍광을 어떻게 담고 어떤 이미지로 배우들이 소화해낼지 당연히 호기심이 갈 것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에서 그렇게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까?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국의 감독 배우 영화 등의 위상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병헌 비 최민식 등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김지운과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메거폰을 잡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들이 외국에서 리메이크되고 한국영화계의 각종 콘텐츠가 외국영화와 협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인 일본에는 와도 한국은 쳐다보지도 않던 할리우드가 달라졌다. 일본에 온 김에 마지못해 한국에 들르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한국 관객을 겨냥하고 내한일정을 짜는 게 당연하게 됐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블록버스터들이 북미보다 앞서는 것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처음 개봉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개봉요일은 법으로 정해져있는 게 아니다. 배급사와 극장 간의 계산기에 의해 정해진다.
일찍부터 주 5일제를 시행한 미국의 경우 보통 금요일에 개봉하지만 전부 따르는 것은 아니고 적지 않은 영화들이 요일에 상관없이 개봉된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엔 토요일에 개봉됐다. 그런데 2001년 직접배급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진주만’이 금기를 깨고 금요일 개봉을 시작하자 ‘미이라2’와 ‘툼 레이더’ ‘물랑 루즈’ 등의 수입 블록버스터들이 이를 따랐고, ‘엽기적인 그녀’를 시작으로 ‘봄날은 간다’ ‘조폭마누라’ 등이 금요일로 개봉을 앞당기면서 자연스레 금요일 개봉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로 금요일 오후에 ‘유료시사회’라는 변칙 개봉이 생겨났는데 이게 금요일의 정식 개봉을 부추겼다.
금요일 개봉은 다시 목요일 오후의 ‘유료시사회’라는 풍토를 낳았고 2005년부턴 ‘밀리언 달러 베이비’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등의 외국 영화들과 ‘말아톤’ ‘공공의 적’ 등의 한국영화들이 정식으로 목요일에 개봉되면서 오늘날의 목요일 개봉이 관행으로 굳어지게 됐다. 물론 수요일 저녁의 ‘유료시사회’ 역시 부록으로 따라붙은 것은 당연하다.
이미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된 지 오래 됐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주 5일 근무가 다수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게 우리 경제활동 내역이다. 그래서 금요일도 아닌 목요일 개봉은 사실 현실적으로 무리수다. 그럼에도 이런 흐름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영화의 성장과 그만큼 마케팅의 단수가 승단했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지난 주말의 박스오피스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 내용은 그 주의 흥행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토요일 개봉보다는 금요일이, 금요일 개봉보다는 목요일이 누적관객수에서 유리하기 마련이고 목요일과 금요일의 흥행이 주말 흥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목요일 개봉이 자연스럽게 굳어진 것이다.
이에 근거하면 미국보다 시각이 앞서는 우리나라에서 금요일도 아닌 목요일에 개봉된다면 이는 미국으로 치면 수요일에 해당하므로 전 세계 최초 개봉은 당연하다. 특혜나 시장의 중요성에 근거했다고만 보기 어렵다.
또 하나의 속사정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터넷 선진국이다. 짝퉁이야 중국이 우리보다 선진국이지만 IT기술이 앞선 우리나라가 개봉도 안 된 영화의 불법복제판을 내놓을 가능성은 더 높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선개봉에 선심 쓰듯 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영국의 합작물인 이 블록버스터는 지난달 11일 국내 개봉됐지만 중국은 오는 27일 개봉이다. 우리보다 최소한 20배나 인구가 많은 중국보다 무려 한 달 보름 앞서 개봉된 것.
이는 한국 시장 자체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고 아시아에서 영화산업의 첨단주자인 우리나라 시장을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본 것이다. 그래서 배급사는 우리나라 개봉 때는 배우의 홍보 프로모션을 갖지 않았지만 중국 개봉 때는 대규모로 여는 것이다.
‘어벤져스2’의 경우는 더욱 특별하다. 서울의 곳곳을 화면 안에 담았다. 한국 관객들이 열광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한국에서 먼저 개봉시켜 바람몰이를 한 뒤 그 흐름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으로 퍼뜨리면 또 다른 한류열풍의 편승이다.
눈에 보이는 상투적인 상술에 지나치게 특혜를 받은 양 들뜰 필요 없다.
워쇼스키 남매는 2012년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그린 미래세계의 중심도시를 서울로 설정했다. 이는 로마제국 때부터 있어온 동양에 대한 환상의 연장선상에서 배두나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금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환상의 대상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옛날엔 일본을 ‘세상의 끝’이란 뜻의 지팡고라 부르며 환상을 꿈꿨고 그 단어가 재팬의 뿌리가 됐지만 지금은 ‘기무치’가 아닌 ‘김치’의 종주국 한국이다.
리들리 스캇 감독은 이미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린 미래의 도시의 네온사인이 난무하는 상점 간판을 일본어와 중국어로 채운 바 있다. 이제 그 자리를 한국이 대신하는 것인데 그들의 관심은 고작 5000만 명인 한국의 인구가 아니라 그 적은 숫자가 가진 아시아에서의 엄청난 파급효과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어벤져스2’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