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칸의 감독 박찬욱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우려
입력 2015. 03.11. 10:39:43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나치당을 선전하기 위해 유명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PR의 고전인 ‘프로파간다’의 저자 에드워드 버네이스(오스트리아)를 영입하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그는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리펜슈탈을 내세워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를 찍어 이를 홍보의 전면에 내세워 원하던 바를 이룬다.

1934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 전당대회의 4일간의 기록을 담은 이 영화에 대한 영화적 평가는 나치선전이라는 핵심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리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렇게 여론형성에 큰 몫을 하는가 하면 영화 자체가 문화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세계 3대 영화제는 독일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이탈리아의 베니스국제영화제, 그리고 프랑스의 칸국제영화제다. 우리나라 영화는 1956년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제7회 베를린에 출품된 이후 1961년 제11회 베를린에서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은곰상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3대 영화제 수상이 시작됐다.

임권택 감독은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에서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후 2002년 칸에서 드디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한다. 박찬욱 감독은 2004년 칸에서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 2008년에 또 칸에서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거머쥔다.

이렇게 한국 영화의 신구세대를 대표하는 두 감독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해 한 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에 대해 격하게 반발하고 전 국민적 지지를 호소했다. 결론은 표현의 자유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사수하거나 아니면 외면이었다.

1996년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는 급성장세를 보여 이제 ‘아시아의 칸’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를 자랑하는, 실질적인 세계 4번째 영화제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측에 ‘다이빙 벨’의 상영금지를 요청했고 집행위원회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하는 등 영화인들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압박이 지난해 ‘다이빙 벨’ 상영 이후부터 시작됐다”며 “정치성을 부여하는 쪽은 영화제 측이 아니라 부산시 쪽이며 이 사태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 “한국 사회가 온통 엉망진창이 돼 가는 상황에서 그나마 그럴 듯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가 부산국제영화제라 평소 생각했는데 이곳마저 이렇게 되면 이 나라가 대체 어떻게 되려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통탄스럽다”고 개탄했다.

그는 “해외 영화제를 많이 다녀봤지만 (외부 권력이) 어떤 영화는 상영해선 안 된다고 간섭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런 영화제라는 평판이 난다면 누가 거길 가려 하겠느냐. 나 같으면 절대로 안 가겠다”고 지난해의 ‘사태’를 강하게 비꼬았다.

임권택 감독은 “(외부 권력이) 영화제에 간섭해 이로 인해 잘 커온 영화제가 구정물을 쓴 영화제로 전락한다면 나라, 부산, 영화인들의 수치일 것”이라고 격한 분노를 드러냈다.

민병록 교수는 “도쿄국제영화제도 도쿄시가 영화제에 개입하면서 후퇴했다”며 “표현의 자유 규제는 엇박자”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 자리를 함께한 프랑스 대사관 및 문화원 관계자는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주 좋은 협력관계 유지해왔기에 기관을 대표해 영화제에 강한 지지를 표명한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제를 위한 가장 좋은 쇄신안은 독립성, 자율성, 좋은 영화,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부산시에 일침을 가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소학교 혹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바른생활 책에는 괴뢰군이란 표현과 함께 늑대에 북한군복을 입힌 그림이 흔했다. 그리고 그 늑대만도 못한 괴뢰군은 이승복이란 애국청년의 입을 찢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런 시대착오적 ‘쇄국정책’은 북한 혹은 김일성에 대한 신비감을 자극하는 폐단을 낳아 일부 급진주의자들을 주체사상에 빠지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금강산을 오가는 지금 대학가에 돌과 최루탄이 사라진 지 오래고, 집회의 이슈는 이데올로기의 자유나 독재타도가 아니라 민생이 됐다.

‘다이빙 벨’이 정권이나 공무원의 입맛에 안 맞는다고 그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볼 권리를 박탈할 순 없다. 이게 독일 국민에게 억지로 ‘의지의 승리’를 관람케 해 세뇌하는 것과 다를 바가 뭔가?

이 영화는 ‘구조하지 않는 해경, 책임지지 않는 정부, 거짓을 퍼뜨리는 언론’ 등을 파헤치겠다며 세월호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다. 북한이 좋다는 김기종을 옹호한 것도 아니고, 정권을 무너뜨려 독재를 타도하잔 것도 아니다. 해직기자가 ‘공무원과 정부를 감시하고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제 기능을 못 한다’며 메가폰을 잡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챙겨주겠다는 영화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사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영화’다. 영화는 관객이 일부러 극장을 찾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보는 만큼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되는 대중문화 콘텐츠다. 이 영화가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외면당할 것이고, 그러면 극장이 알아서 내린다. 더구나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진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다.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인생과 사랑의 고찰 같은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감독의 주제의식을 앞세운다.

많은 관객이 이상호 감독의 취향을 따른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영화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아니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으니 국민에게 봉사하면 되고, 정치인 역시 국민의 지지로 소득과 명예를 얻으니 국가를 위해 봉사하면 된다. 대중의 위안거리인 영화나 가요나 예능 프로그램에 '감 놔라, 배 빼라' 간섭할 시간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개인주의가 낳은 폐단인 제노비스 신드롬은 사건 사고를 기준으로 할 땐 미필적 고의의 범죄지만 이런 문화에 근거할 땐 자율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를 유도하고 지도층은 그런 민심을 잘 읽어 리더십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홍보의 대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후에 담배회사와 결탁해 여성의 흡연율을 높였다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프로파간다로 혹세무민한 결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제공했고, 세계적 위상의 상승에 엄청난 봉사를 보탰다. 부산시 역시 그동안 한국영화의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 군사독재시절의 ‘구도(球都)’에서 영화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자율적인 기여를 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은 물론 부산을 즐기고자 하는 외지인들이 몰려오고, 전 세계의 유력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계와 협업하기 위해 날아온다.

그건 영화제가 갖는 권위 덕이다. 만약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반쪽짜리 영화제로 만든다면 그건 시의 국지적 행사일 뿐 권위와는 차원이 달라진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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