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표절이냐, 트렌드냐, 파리가 새냐?
입력 2015. 03.25. 10:01:45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요즘 ‘개나 소나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연예인에 대한 과잉충성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표절불감증이 깃들 만도 하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거나 그가 부르는 노래라면 남의 것을 따라했건, 부도덕하게 베꼈건 그건 별 문제가 안 되는 분위기다.

기획사 모든 사람이 소속 연예인을 ‘아티스트’라고 프리미엄급 호칭으로 부르고, 이런 과한 떠받들기에 대중이 둔감해진 현 시대가 진짜 크리에이티브가 생명이고 자존심인 아티스트의 존재마저 무색한 세상이기 때문일까?

흔히 가수는 싱어라고 한다. 밴드에서 보컬 담당은 보컬리스트다. 자신이 직접 곡을 써서 부르는 가수는 싱어 송라이터고 연주까지 잘 한다면 뮤지션이다. 단순 연주자는 세션맨이고 그 실력이 뛰어나다면 뮤지션이다. 여기에 상업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에 빠져 남들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른다면 그는 아티스트라 불러도 무방하다.

예술성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독창성에 기인한 개성의 창작이다. 이건 역대 미술사와 음악사에서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며, 앞으로도 계속된다. 피카소의 그림이 위대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독창성 덕이다.

일제시대 엔카와 서양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뒤 한국전쟁 후 한꺼번에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서양 대중음악을 받아들인 한국 가요계는 ‘표절’이 아닌 ‘모방’으로 팝과 록을 한국 가요계에 접목하는 과정을 착실하게 진행해갔지만 1980년대 폭풍 같은 표절의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특히 당시 공식 유통이 금지된 일본의 J팝은 아주 좋은 표절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수많은 창작자들이 베끼기에 양심을 팔아치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곡도 표절판정을 받은 바 없다. 표절에 관한 법률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피해가기 쉬웠고 무엇보다 원작자들이 파이가 작은 한국 시장에 별로 욕심을 안 냈기에 이런 비양심적인 도둑질이 가능했다.

하지만 1995년 룰라의 ‘천상유애’가 일본 오마쓰리 닌자의 ‘오마쓰리 닌자’를 표절했다는 방송사의 판단에 의해 방송금지곡이 되면서 표절에 대한 대중의 시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법보다 대중이 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가요계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가요에 대한 대중과 법의 관심이 식고 표절판정법마저 유명무실해짐으로 인해 이제 표절은 법이 아닌, 대중에게 철퇴의 손잡이가 넘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기 대중은 더 이상 연예인을 ‘광대’로 안 보고 ‘아티스트’나 ‘아이돌(우상)’로 보는 시각이 바뀌어 ‘감히’ 표절을 운운하지 못한다. 아니, 그 자체가 의미가 없다. 단지 그들을 우러러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2010년 씨엔블루는 ‘외톨이야’로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인디밴드 와이낫이 자신들이 ‘파랑새’를 표절했다며 소송을 낸 것. 이때 생존 중이던 싱어 송라이터 신해철이 ‘그 곡이 표절이 아니라면 파리가 새’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결국 재판부는 씨엔블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누리꾼은 제이슨 므라즈 등 다른 뮤지션의 곡을 예로 들며 표절시비를 쉽사리 잠재우려 하지 않았다. 표절여부를 떠나 눈치 빠른 음악애호가들은 안다. 이 곡의 멜로디 리듬 편곡 등이 일본의 J팝에서 많이 들어본 분위기라는 정도는 알 수 있다. 이건 법적인 표절 판정 여부를 떠나 도덕적인 시각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이효리의 경우 굳이 양심선언을 안 해도 될 법 했지만 스스로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고 활동을 중단한 뒤 지금까지 가수로선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

요즘 방송가의 효자 겸 뜨거운 감자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회당 제작비가 3~4억 원(물론 방송사는 1~2억 원밖에 지원하지 않는다)은 족히 드는 드라마에 잘못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보다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에 수익은 훨씬 안정적인 예능에 힘을 쏟는 게 방송사 입장에선 굉장히 효율적이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중국에서 베낀다고 불평불만을 해대면서도 정작 지상파TV 3사는 스스로 양심에 비껴가는 이율배반적 제작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그게 자체 제작이든, 외주 제작이든.

SBS야 돈 벌기 위해 방송한다고 드러내놓고 상업방송을 표방하니 케이블TV랑 동일선상에 놓고 봐도 무방하지만 공영방송사인 MBC와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기간방송사인 KBS가 그러는 것은 차마 눈뜨고 봐주기 힘들다.

MBC는 앞서 케이블TV Mnet ‘슈퍼스타K’를 베낀 ‘위대한 탄생’을 내놨다 실속도 못 챙기고 망신만 당한 뒤에는 비교적 ‘따라하기’를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KBS는 아예 드러내놓고 흉내 내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며 당당하게 표절이 아니라고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다. 그리고 그 행태는 어제도 오늘도 계속된다.

물론 가요나 영화도 표절을 가리기 쉽지 않은 대중컨텐츠 환경에서 유행이 강하게 개입되는 예능 프로그램에 표절이란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수신료를 강제징수당하면서까지 KBS에 생존의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시청자 입장에선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2006년 MBC ‘무한도전’이 인기를 끌자 이듬해 KBS는 ‘1박2일’로 응수했다. 물론 이는 3년 뒤 SBS가 ‘런닝맨’으로 맞불작전을 펼친 것에 비교하면 비교적 양심적이었다.

하지만 MBC ‘나는 가수다’가 가요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인기를 끌자 잽싸게 ‘불후의 명곡’을 론칭한 것은 누가 봐도 국가기간방송으로서 체면 깎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MBC ‘아빠 어디가’의 무대와 연령층만 살짝 바꾼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매우 큰 재미를 본 뒤 연말 연예대상에서 상을 주면서 ‘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이쯤 되면 브릿지마다 ‘국가 기간방송’ ‘국가 대표 재난방송’ 등을 외치며 ‘공영방송으로서 어쩌고 저쩌고’라며 한껏 공명정대한 언론으로서의 사명감과 투철한 애국관을 외치는 KBS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주장은 공허하게 들릴 따름이다.

이번에는 여배우들이 액션 연기 훈련을 통해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다루는 새 파일럿 예능 ‘레이디 액션’을 기획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누가 봐도 MBC ‘무한도전’의 ‘나는 액션배우다’와 ‘일밤-진짜사나이’의 여군 특집을 참고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요즘 방송가의 예능프로그램 제작방향의 트렌드 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작진의 솔직함이다. ‘사실 요즘 트렌드를 따르다보니 참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양심선언의 한 마디만으로도 표절 운운하는 누리꾼의 비웃음 섞인 비난과 언론의 강한 비판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어차피 시청자는 예능에서 감동이나 교훈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참고했건 순수한 창작이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레이디 액션'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는 '시청자의 입맛과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기획단계에서 남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살짝 레퍼런스했다'는 정도의 국가기간방송다운 매너를 바라는 시청자와 언론의 KBS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때문이다.

워낙 방송 콘텐츠를 내보내는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각 플랫폼간의 시청률의 격차가 무너지다보니 지상파TV 3사의 위기감, 특히 두 개 채널을 가진 ‘공룡’ KBS의 조바심이 혀를 바짝 타게 만든다는 절체절명의 불안감은 납득할 수 있지만 비양심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충수는 ‘개그콘서트-왕입니다요’의 왕(이문재)의 단골코멘트처럼 ‘불편하구나’.

파리도 새고, 모기도 새인, 생물분류 체계 ‘계문강목과속종’의 혁명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제공=티브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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