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강호동은 이제 투명인간인가?
- 입력 2015. 03.25. 17:24:42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KBS2 ‘우리동네 예체능’이 100회를 기념해 25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형돈은 ‘강호동 위기론’이 자주 거론되는 데 대해 ‘그것조차 강호동의 힘’이라고 강호동이 변함없이 정상급 예능MC임을 주장했다.
최근 2~3년 새 강호동이 이제 한물 간 게 아니냐는 위기론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정형돈은 이를 의식해 선배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평소 그답게 유쾌하고 긍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경남 진주를 대표하는 씨름선수로서 천하장사에 등극할 만큼 뛰어난 씨름실력을 과시했던 강호동은 1993년 돌연 공채 개그맨으로 MBC를 통해 데뷔한다. 당시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던 ‘소나기’에서 방송에서 핸디캡일 수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오히려 앞세워 호동이 캐릭터로 빠르게 성장해갔다.
2002년 7월 SBS ‘뷰티풀 선데이’의 메인MC 자리를 꿰차더니 3개월 뒤에는 ‘친정’ MBC에서 아예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호동의 천생연분’의 전면에 나서며 그는 예능MC로서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후 10년간 그는 유재석과 함께 쌍두마차 체제로 예능계를 휩쓸며 불꽃같은 연예인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매끈한 고속도로에도 이물질이 날아들기 마련. 2011년 9월 세금과소납부로 수억 원의 추징금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루아침에 그는 탈세연예인이 됐고 곧바로 대국민 사과로 고개를 조아린 뒤 1 년 반 정도 자숙했다.
그리고 2013년 많은 사람들의 성원 속에 컴백했지만 상황은 많이 달랐다. ‘강호동의, 강호동에 의한, 강호동을 위한’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했던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는 강호동의 활동중단으로 폐지됐다가 그의 컴백으로 재편성됐지만 얼마 못가 영구폐기 됐다.
이때부터 강호동 위기론은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근거는 상당했다. 예전의 ‘무릎팍도사’는 거침없는 강호동의 정면돌파 식 돌직구가 게스트의 허를 찔렀고 게스트가 당황하거나 곤혹스러워할수록 시청자의 재미는 더 커졌다. ‘라디오스타’의 깐족거림이 주는 사소한 재미와 ‘무릎팍도사’의 저돌성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자숙기간을 거치고 돌아온 강호동에게서 그런 야생성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1박2일’에서 호령하고 식탐에 눈이 멀어 후배들을 무차별 공격하던 ‘돼랑이’ 강호동은 얌전한 집고양이로 변해있었다.
게다가 ‘무릎팍도사’의 포맷은 더 이상 게스트들을 끌어 모으지 못할 만큼 동력을 잃은 상태였기에 게스트 섭외의 실패는 강호동의 어깨의 기운을 더욱 뺐다. 어찌 보면 한 차례 커다란 사건의 회오리 속을 헤매다 빠져나와 지친 강호동에게 예전의 패기와 치기를 기대한 제작진의 기획의도 자체가 무리였다.
그 정도로 강호동 위기론을 말하긴 일렀다. 2013년 초부터 강호동의 본격적인 흑역사가 시작됐다. 강호동을 믿고 시작된 KBS2 ‘달빛 프린스’가 2 개월도 채 안 돼 문을 닫았고, 이듬해 MBC ‘별바라기’가 딱 3 달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최근 KBS2 ‘투명인간’이 론칭 2 달여 만에 폐지로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이제 강호동은 확실하게 전성기를 지난 것일까?
강호동이 최대 간판이었던 ‘1박2일’에서 하차한다고 했을 때 KBS는 물론 많은 시청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누가 뭐래도 이 프로그램은 강호동을 맨 앞에 내세워 그의 힘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됐고 실상 그가 선봉장이 돼 프로그램의 재미를 주도해나갔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남다른 힘을 이용해 동생들을 괴롭히고 볼썽사나운 식탐을 시도 때도 없이 티내는 그가 밉상이었지만 은근히 그것을 즐겼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는 그가 미련하다기 보다는 털털해서 친근했다.
‘달빛프린스’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른 느낌을 들어보는’ 포맷이었다. 그 시각에 예능을 보는 시청자는 수면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재미를 추구하는데 따분하게 예능인들이 책 얘기 하는 것을 즐길 리 만무하다. 게다가 강호동은 씨름선수 이미지를 소비하는 피지컬적 예능인이지 지성파가 아니다.
‘별바라기’는 다양한 계층의 팬들의 입을 통해 스타를 얘기하는 토크쇼다. 이미 체험예능이 일반화됐고 관찰예능이 대세가 된 지난해 이런 구닥다리 토크쇼로 시청자들의 졸음을 물리치겠다는 의도 역시 시대착오였다. 강호동은 스튜디오 용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연예인을 직장에 투입한 ‘투명인간’은 어느 정도 ‘강호동 사용 설명서’를 숙지한 듯했지만 ‘개그콘서트’의 ‘렛 잇 비’가 주는 해학도, ‘체험 삶의 현장’이 주는 감동도 없어 예능도 교양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의 소비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작진은 분명 직장인일 텐데 왜 직장인들의 애환을 몰랐을까? 대기업의 안정된 정규직이면서 프리랜서로서의 성공가능성이 열린 지상파방송사 예능국 사람들이 보통직장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게다가 강호동을 비롯한 고정 출연자들은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2013년 고작 7 개월 만에 막을 내린 SBS ‘일요일이 좋다-맨발의 친구들’은 강호동의 활용도를 알긴 했지만 식상한 포맷으로 ‘재탕’의 꼼수를 부린 게 패착이었다. 몇 회 내보내다 안 되니까 연예인의 집밥 맛탐방이란 어이없는 포맷의 변화로 더욱 심한 잔재주를 펼쳤지만 강호동을 연예인 집에 보내 먹방으로 어필하겠단 구시대적 발상은 시청자의 수준의 진화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이에 비교해 강호동이 하차할 무렵의 ‘1박2일’은 그 자체가 이미 브랜드화된 상태였다. 이승기가 이끌어도 시청률이 전혀 변화하지 않은 게 그 증거다. 그후 나영석 PD부터 이승기 등 대다수의 주역들이 빠져나가고 지금의 ‘시즌3’로 일대변신했을 때 역시 안팎의 걱정과 우려가 컸지만 현재 KBS 예능의 절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강호동이 직접 말한 진심이 묻어나는 소회에 진정한 강호동 사용 설명서의 매뉴얼이 있었음을 제작진은 행간 하나까지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방송을 해 오면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을 때도 있었고, 과대평가를 받을 때도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참여를 했음에도 외면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방송인으로서 제일 중요한 도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획이 시류를 못 읽거나 시청자의 욕구를 외면하면 연출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청자를 끌어 모으기 힘든 게 예능인데 모든 책임을 메인MC에게 뒤집어씌울 순 없다.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부족한데 최민식이나 송강호가 이제 한물갔다고 한다면 관객이 화난다.
'우리 동네 예체능'이 강호동의 유일한 컴백 성공작인 게 오롯이 강호동의 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운동선수 출신 강호동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할 순 없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제공=티브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