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상회’ 뿌리 깊은 나무 같은 노년의 사랑 [시네프리뷰]
- 입력 2015. 03.27. 14:20:01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젊은 세대의 사랑은 불꽃같고 한창 만개한 꽃 같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향기가 난다. 노년의 사랑은 어떨까. 주름진 손을 맞잡고 노을이 지는 길을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후에 그 같은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생을 서로를 위하며 살아온 부부의 모습은 주름진 얼굴마저 아름다워 보이게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깊이 뿌리박은, 배우자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과 신뢰는 그 어떤 나무보다도 튼튼해 보인다.
다음 달 9일 개봉되는 ‘장수상회’는 70살 연애초보 성칠(박근형)과 그의 마음을 뒤흔든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의 가슴 따뜻한 러브스토리를 다룬다. 까칠한 성칠과 소녀 감성의 꽃집 여인 금님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여는 모습은 젊은 세대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순간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기에 더 특별하고 설레며 행복하다. 여기에 두 사람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고 지원하는 동네 사람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재미를 더한다.
강제규 감독은 왜 멜로를 택했을까. 지난 1996년 판타지 멜로 ‘은행나무 침대’로 청룡 영화상과 대종상 영화제의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이후 최초의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 ‘쉬리’와 전쟁 대작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각각 620만, 1174만 관객을 달성했다. 지난 2011년 전쟁영화 ‘마이웨이’의 성적이 시원치 못해 주춤하고 있는 그가 ‘로맨스’, 그것도 ‘첫 사랑 이야기’로 방향을 돌렸다.
한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어느 순간 여든을 넘긴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 자신의 아이들과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바로 ‘장수상회’라고 했다. 세대 간의 소통의 절실함을 느낀 그는 결국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랑과 인생의 가치를 전하고자 했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무려 112분이다. 2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나이 지긋한 두 남녀의 사랑을 보고 있으려면 좀이 쑤시고 졸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서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지듯 반전이 일어난다. 윤여정이 말 한대로다.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그녀는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오그라들었지만 반전이 좋아 작품을 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명백히 했다.
해병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넘치는 성칠은 앞집에 이사 온 고운 외모의 금님이 환한 미소로 친절히 다가오자 당혹스러워 한다. 무심한 척하지만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성칠은 결국 온 동네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설레는 첫 데이트를 하게 되고 이후 금님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영화를 이끄는 중심축은 성칠과 금님의 늙었지만 주책맞지 않고 젊은이들의 그것과 다름없는 풋풋한 사랑이다. 스킨십 하나 없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며 성칠의 '나한테 왜 이래요?'라는 항의에는 웃다가 막상 내려와선 화장실에 앉아 토악질을 해대더니 성칠에게 노래를 불러달라는 금님의 복잡한 심리상태가 이들의 사랑이 젊은이들의 사랑만큼이나 설레고 가슴 절절하단 걸 웅변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대한민국 중심도시 서울 중에서도 서울답지 않은 수유동을 무대로 펼쳐진다. 화려한 강남이나 4대문 안의 발전된 서울의 대표적인 얼굴에서 살짝 비껴간 수유동의 서민들의 삶은 현재의 모습이지만 곧 과거이기도 하다. 그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들이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일상은 성칠과 금님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메말라가는 이 시대가 원하는 인간과 인간의 부대낌의 의미를 묻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성칠은 금님과의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고 뒤늦게 약속 장소에서 금님을 애타게 찾다가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느지막이 찾아온 봄 같은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손수건이나 티슈를 챙겨가길. 내달 9일 개봉.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