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앵그리맘’, ‘설국열차’ 축소판?
- 입력 2015. 03.27. 15:48:56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의 조명은 시종일관 어둡다. 공교롭게도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영화조명처럼 기존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조도와 명도에서 내용만큼이나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여고시절 칼을 휘두르던 일진 출신 조강자(김희선)가 자라서 싱글맘이 돼 여고생인 딸 오아란(김유정)이 학교폭력에 희생되자 다시 여고생이 돼 딸의 책상에 앉아 통쾌한 복수극을 펼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으나 회가 거듭될수록 심각한 사회문제의 속살을 파헤치고 있다.
수천억 원대 사학재벌로 명성재단 주인인 홍상복(박영규)은 자신을 대신해 편지를 읽던 주애연(오윤아)에게 갑자기 포크를 던지며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고 포크에 맞은 애연은 피를 철철 흘렸다. 그럼에도 상복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노래를 불렀고, 애연은 그 노래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샤워하는 애연의 몸은 온통 멍투성이였다. 상습적으로 폭력에 시달려왔음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명성고 법인기획실장으로 홍상복의 심복이자 대권을 꿈꾸는 교육부장관 강수찬(박근형)의 숨겨진 아들인 도정우(김태훈)는 악마를 방불케 하는 악의 축. 교내 이경(윤예주)과 원조교제를 해오고 있었는데 그녀가 걸림돌이 되자 동철의 수하 복동(지수)에게 지시해 자살로 위장하고 이경을 죽인다. 부검 결과 이경은 임신 3개월이었다.
이건 학교가 아니라 돈에 눈이 먼 재벌과 출세욕에 불타는 무시무시한 악마, 그리고 마냥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물불 안 가리는 정치인이 얽히고설켜 서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며 목적을 위해선 악(범죄)과 손쉽게 손을 잡는 이 사회의 축소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새 빙하기를 맞아 거의 모든 생명이 멸종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태운 채 취지 않고 달리는 열차 안이 무대다.
열차의 심장인 엔진은 재벌 윌포드산업의 회장 윌포드(에드 해리스)가 맨 앞 칸에서 보호하고 있고 그 아래 칸으로는 상류사회 사람들이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맨 마지막 꼬리 칸에는 빈민들이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식량을 먹으며 짐승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빈민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설계사 남궁민수(송강호)의 도움을 받아 오랜 세월 준비해 온 폭동을 시작해 한 칸 한 칸 앞으로 전진해 나아간다.
이 영화가 결코 쉬운 상업적 상품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안다. 윌포드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혹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국가다. 2인자인 총리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자본주의로 풍요로워져 세계의 중심에서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의 야욕을 펼치는 1등 국가의 사주를 받은 그 하위 계급의 유럽 국가 혹은 그 외 지역의 국가나 정치인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반란계급의 정신적 지주였던 길리엄(존 허트) 노인 역시 윌포드의 조력자였다. 폭력으로 빈민을 지배하는 윌포드와 그 추종세력에 맞서는 커티스 역시 대항의 수단은 폭력이다.
커티스는 앞에서 두 번째 칸 앞에 서서 남궁민수에게 빨리 선두 칸의 문을 열라고 하지만 정작 남궁민수는 옆문을 열고 빙하기의 날씨인 밖으로 나가겠다고 버틴다.
이건 진정한 유토피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다. 만약 커티스가 윌포드를 죽이고 민중의 국가를 세운다고 한들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행복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특정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공동체가 답이 아니라는 감독의 은유다.
그래서 남궁민수가 원하는 옆문을 열고 나갈 설국이 오히려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행복의 땅이 될 수 있다. 결국 설국열차는 탈선 후 전복돼 모든 사람이 죽고 남궁민수의 17살 된 딸 요나(고아성)와 그녀보다 10살 이상 어려보이는 흑인 소년 한 명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눈 덮인 땅을 처음으로 밟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두 소년 소녀의 시야에 잡힌 것은 하얀 털로 뒤덮인 북극곰이다.
땅 위의 최상위 포식자인 백곰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해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자연’이다. 그런데 설국열차 안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땅 위에 그 백곰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이게 과연 희망일까?
우선 요나와 흑인 소년의 유일한 생존은 로마시대 이후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했고 지배하려 하고 있는 백인에 대한 ‘한 방’이다. 이것은 백인 우월주의의 인종차별과 백인들이 지배권을 획득하는 과정과 결과를 통해 전 세계의 이데올로기로 우뚝 세운 자본주의, 두 가지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리고 빙하기로 전 생명이 멸종한 지구 상에 백곰 한 마리를 세워놓고 남궁민수의 말에 근거해 새 생명이 나고 자랄 수 있게끔 온난화가 서서히 진행된다는 증거를 보탠다.
하지만 빙하기를 이겨내고 새 생명이 나고 자라 백곰 같은 진화된 생명체를 만들려면 설국열차가 달린 18년의 1 억 배는 세월이 흘러야 한다. 이는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앵그리맘’이 그리는 학원은 어둡기만 하다. 과거 그 폭력으로 학생들을 괴롭혔던 강자는 어른이 돼서야 그 폭력의 잘못을 깨닫고 폭력으로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이것은 철저한 모순이지만 그녀의 과거를 보면 왜 그녀가 폭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는지 시청자를 이해시킨다.
가난한 사람은 끝까지 가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폭력성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게 이 사회였기 때문임을 그녀는 웅변한다. 그리고 그 폭력이 낳은 폭력이 자신의 딸을 피해자로 만드는 악순환을 계속해서 회전시키고 있으며 그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서민들이 자성해야 하는 게 아니라 홍상복과 강수찬 같은 지도층의 협력관계나, 홍상복과 도정우 같은 상류층의 상명하복 관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암시한다.
과연 ‘앵그리맘’의 희망은 있을까? ‘설국열차’의 북극곰이 유이하게 생존한 황인종과 흑인종이 보는 신기루의 판타지가 아닌, 실질적인 희망이 되기 위해선 ‘앵그리맘’에 실제 고교생이거나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붙이는 댓글에 뜻 있는 기성세대가 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드라마 속의 내용이 과장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게 현실임에 놀란다면 그나마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어른이고 개의치 않는다면 현재의 체재가 만족스러운 기득권층이다.
모처럼 MBC에서 ‘괴물’같은 드라마 한 편이 탄생했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