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용감한 가족’의 불편한 진실
- 입력 2015. 04.01. 10:05:51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1월 23일 시작된 KBS2 금요일 심야 예능 프로그램 ‘용감한 가족’의 속살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시청자들의 강력한 폐지요구가 빗발치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오버랩 된다.
이 프로그램은 심혜진과 이문식을 부부로, 씨엔블루 강민혁과 AOA 설현을 아들과 딸로, 그리고 박명수를 심혜진의 남동생으로 각각 설정해놓고, 이 가족이 아시아 오지에서 현지인들과 살을 부대끼고 살아가는 가운데 심하게 불편한 일상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생활 밀착 가족형 리얼리티 방송을 표방한다.
지난 27일 방송에서 이문식 박명수 강민혁 등 세 남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염전으로 향했다. 이들을 향해 여자들은 조금 이따 아침으로 닭죽을 끓여 가겠다고 다정하게 말했다. 참으로 보기 좋은 평온하고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사단은 더위였다. 집 앞 구멍가게에 들른 세 여자는 슬러시에 푹 빠져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느라 아침시간을 다 허비했다. 화덕의 화력이 약해 죽이 끓을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잊은 지 이미 오래,
그 시간동안 남자들은 가족을 일용할 양식을 구할 돈을 벌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역시 문제는 라오스의 높은 기온. 배도 고팠지만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갈증이었다. 그런데 아침시간이 훌쩍 지나 이미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각임에도 여자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결국 분통이 터진 남자들은 쌀국수집에 가서 끼니를 때우는데 여기서도 눈물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돈을 아끼기 위해 두 그릇만 시켜 셋이 나눠먹은 것. 그리고 분노의 표현방식으로 남은 돈을 절반으로 나눠 강민혁을 시켜 여자들에게 전달하곤 그들은 가출하기로 합의했다.
그 시각 심혜진과 박주미는 남자들을 달래기 위해 바나나를 맛있게 조리해 염전을 향했다. 신혼인 박명수는 박주미의 애교에 금세 넘어갔지만 이문식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집에선 강민혁이 설현에게 크게 호통을 쳤고 당황한 그녀는 변명하기에 급급하다가 결국은 울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른 가족은 그날 저녁 외식하러 시내로 나갔고 신혼인 박명수와 박주미는 라면과 생수로 야릇한 분위기의 저녁식사를 단둘이 오붓하게 즐겼다.
이 즈음에서 ‘용감한 가족’의 정체성은 뭣이고, 뭐가 용감하단 것이며, 가족의 의미는 뭣인가 자꾸 의문이 발생한다.
이들이 사는 곳이 한국의 중심도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의 기준으로 봤을 때 굉장한 오지인 것은 맞다. 오물이 뒤섞인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사방이 뻥 뚫린 재래식 화장실에서 용변을 봐야 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사는 게 SBS ‘정글의 법칙’보다 용감하진 않다.
‘가족’은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가상의 설정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의 리얼리티를 가장한 가상극이 식상했고 몰입할 수 없다는 시청자들의 분통에서 보듯 이 이문식네 가족은 시청자들에게 ‘가족’이란 착각을 주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베테랑 배우인 심혜진과 이문식의 부부 연기가 매우 어색하며 강민혁의 연기력은 바닥이다. 천방지축 철부지인 설현은 자신의 평소 모습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를 살리려 나름대로 고군분투하지만 이날 방송의 뜬금없는 눈물처럼 과장된 연기력이 리얼리티를 완전히 희석시킨다. 게다가 매번 보여주는 ‘하의실종’ 패션은 그 의도를 심하게 의심케 만든다.
출연진 중 유일한 희극인이자 예능인인 박명수는 가장이 아닌, 외삼촌이란 어정쩡한 보직 탓인지 중심을 잡기 보단 ‘민폐’ 캐릭터에서 맴돈다. MBC ‘무한도전’에서 후배인 유재석에게 업혀가다 못해 ‘바보’ 정준하보다 더 어리바리한 캐릭터로 내내 당하기만 하면서도 형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까칠하게 화를 내는 ‘만년 2인자’의 이미지를 굳혀온 그로선 시작부터 선배 이문식과 심혜진의 기에 눌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당한 그는 방송 내내 2인자도 아닌, 5인자 꼴찌에 머물며 캐릭터를 만들지도, 프로그램 안에 녹아들어가지도 못하고 겉돌고 있다.
오히려 민폐캐릭터 색깔이 역력했던 최정원을 하차시키고 새로 투입한 박주미만 튀고 있다. 예능에 처음 도전하는 배우답지 않게 프로그램의 성격과 연출자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한 그녀는 연기와 실제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리얼리티 예능의 본질을 잘 파악한 모습으로 프로그램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되살린다.
화난 박명수를 달래는 모습이나, 그와 단둘이 저녁식사를 즐긴 뒤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연출능력은 압권이었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보고 배울 점이지만 이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출연자가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없다.
여기서 박명수의 외유는 계속된다. 적당히 박주미에게 추임새를 줘서 함께 상황극에 녹아들어도 부족할 판에 그는 자신의 진짜 아내만 찾으며 ‘집에 가면 죽었다’를 외쳤다. 이건 프로그램을 살리자는 게 아니라 죽이자는 것이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1박2일’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게 상황극이 아니라 90% 리얼리티기 때문이다. 연출자의 의도는 있지만 흐름만 그 의도에 부응할 뿐 각 캐릭터들의 언행과 상황은 좌충우돌이다. 그래서 시청자가 재밌게 즐기는 것이다.
그건 SBS ‘아빠를 부탁해’나 케이블TV tvN ‘삼시세끼’ 역시 마찬가지다.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의 딸이 연기로 아빠와 서먹서먹한 척 하는 것은 아니다. ‘삼시세끼’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이 티격태격 하는 것은 연기지만 섬에서의 생활과 ‘먹방’은 실제상황이다.
그래서 ‘용감한 가족’은 ‘우리 결혼했어요’와 다를 바 없으면서도 ‘우리 결혼했어요’가 주는 일시적인 핑크빛 착각마저도 주지 못한 채 그 가족의 생활 속으로 시청자가 빨려 들어가는 걸 방해하고 있다.
이건 ‘체험 삶의 현장’보다 덜 유익하고, ‘우리 결혼했어요’만큼의 ‘꿀재미’도 없으며, ‘삼시세끼’보다 ‘먹방’의 신선함이 떨어진다. 케이블TV의 각종 동남아시아 탐방 다큐멘터리보다 덜 신기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 자주 나오는 동물들의 특식 방송보다 덜 궁금하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KB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