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장국영, ‘아비정전’ 같은 발 없는 새의 삶
입력 2015. 04.01. 16:00:50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홍콩 영화계의 스타 고 장궈룽(장국영)은 지난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홍콩의 한 호텔 24층에서 뛰어내려 47세의 한창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장궈룽의 죽음과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고, 양성애자인 그의 동성 애인이었던 탕허더(당학덕)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살해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렸다. 탕은 그 후 장의 재산 460억 원을 상속받았다.

장의 자살과 관련해 주목 받은 또 다른 인물은 여배우 마오슌쥔(모순균)이다.

장은 마오의 아버지에게 담배와 술을 선물하는 등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녀는 그의 청혼을 끝내 거절했다.

시간이 흘러 마오가 진행하는 한 토크쇼에 출연한 장은 “만약 당신이 내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자살했다. 그가 죽음을 결심한 배경은 이성과 동성 애인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고 전해진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그의 짧은 인생과 처절한 마지막은 어쩐지 그가 ‘아비정전’에서 맡았던 아비와 닮아있다.

홍콩영화계에 누아르 등 액션물이 주류이던 1990년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은 당시 톱스타인 장궈룽 류더화(유덕화) 장완위(장만옥) 류자링(유가령) 량차오웨이(양조위) 장쉐유(장학우) 등의 호화캐스팅으로 ‘아비정전’을 내놓는다. 얼핏 보면 누아르 액션 영화같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관람권을 구매한 관객 중 적지 않은 사람이 관람 후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애초 속편을 기획했지만 이 작품은 흥행참패로 그대로 홍콩의 영화역사의 뒤안길로 파묻히는 듯했지만 마니아들에 의해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아 홍콩영화계의 걸작 중의 한 편으로 남게 됐고 왕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대표작으로 선정되고 있다.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 끝없이 생모를 그리워하는 아비(장궈룽)는 자신을 ‘하늘을 나는 발 없는 새’에 비유한다.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죽기 전에는 결코 땅으로 내려올 수 없는 이 새의 운명을 바로 자신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가볍게 여자들을 만나며 자유분방하게 살지만 사실 속으로는 항상 어머니의 정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 모성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결혼을 요구하는 수리진(장완위)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미미(류자링)의 간절함에 냉정한 이별로 답을 할 따름이다.

그에게 여자는 사랑이 아니라 모성애의 결핍에 대한 대리 해방구일 따름이다.

요크(장쉐유)는 미미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향한 애달픈 사랑에 이끌려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바람 같은 인생을 산다.

아비 때문에 괴로워하던 수리진과 밤길을 걷던 경찰(류더화)은 밤마다 공중전화 앞에서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지만 끝내 전화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선원이 돼 떠나고 수리진은 어렴풋이 생각난 듯 전화를 걸어보지만 공중전화 박스 안에는 아무도 없다.

수리진과의 잠깐의 인연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바다 위를 부유하는 경찰은 저마다 간직한 사랑의 상처 속에서 아파하고 떠도는 새 같은 영혼들에게 “상처받은 척, 불쌍한 척하지 말라”고 주먹질을 해대지만 사실 선원으로 떠도는 그 역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방황하는 외로운 방랑자일 따름이다.

생모를 찾아 필리핀으로 간 아비는 어릴 때 자신을 버렸듯 지금도 만나주지 않는 엄마에게 분노하고 절망해 세상과의 모든 소통의 공간을 닫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경찰과 수리진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죽어간다.

왕자웨이 특유의 거친 입자의 필름과 몽환적이고 비탄적인 색채감을 바탕으로 한 빠른 몽타주 기법과 특이한 클로즈업으로 펼쳐지는 ‘아비정전’은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과 홍콩인들의 무기력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과 경계에서 방황하는 삶과 이데올로기의 카오스를 그려낸다.

아비는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그리곤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하지만 그 새는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면 처음부터 새는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인민혁명으로 공산주의가 된 중국도, 그 공산주의에 반대해 따로 민주주의를 택한 대만도 아닌, 영국의 식민지이면서 또 다른 중국인 홍콩과 그곳에서 사는 홍콩인들의 정체성을 잃은 혼돈의 삶과 암울한 미래였다.

그건 곧 동성도 사랑하고 이성도 사랑하며 그 어느 한쪽을 쉽게 선택할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장궈룽의 삶과 죽음이기도 했다. 어느 한 쪽에도 정착할 수 없었던 그가 바로 발 없는 새였던 것이다.

그가 남긴 걸작 중 하나인 왕자웨이 감독의 ‘동사서독’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것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아비의 생모에 버림받은 기억은 그의 방탕과 허무 그리고 희망의 이유였지만 결국 아비는 희망은 절망일 따름이었음을 확인하곤 죽어간다. ‘동사서독’ 속의 주인공들 역시 사랑의 상처가 남긴 아픈 기억이 삶의 발목을 잡는다. 사랑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장궈룽처럼. 장은 참으로 영화처럼 살다간 영화배우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아비정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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