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이영돈 PD와 ‘피노키오’
- 입력 2015. 04.02. 17:09:47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이영돈 PD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KBS2 ‘추적 60분’, 종합편성채널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을 통해 탐사보도 전문 PD로 유명세를 탄 스타 방송인이다.
이 PD는 지난해 9월 종합편성채널 JT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그동안 축적한 식품 관련 정보력을 활용한 ‘에브리바디’로 활동을 재개해 명불허전의 인기를 이어갔으며 이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영돈PD가 간다’를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여는 듯했다.
JTBC는 프리랜서인 이 PD의 프로그램을 폐지해 사실상 그를 ‘해고’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했고, 이 PD는 언론에 “CF 출연료를 희사하고 자숙하겠다”는 반성의 뜻을 전함으로써 역시 들끓는 여론에 고개 숙이는 모양새를 갖췄다.
PD지만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연출자가 아닌, 교양과 탐사보도의 기능을 앞세워 활동해온 그는 웬만한 기자 못지않은 언론인으로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줘 왔다. 그가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아직 고액의 프리랜서 계약으로 스카웃돼 취재 일선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가 남다른 실력과 시각을 지닌 언론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은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그 어떤 상황에도 적용된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던 이 PD의 과욕이 자만과 착각을 낳았고, 그것은 베테랑인 그의 사리 분별과 판단 능력을 잠시 흐트러뜨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그렇게 훌륭한 탐사보도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그가 자신이 고발하고자 했던 요거트의 유명 브랜드 광고에 출연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말 방송돼 기자를 본격적으로 앞세워 성공한 최초의 드라마로 기록된 ‘피오키오’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적지 않은 대중이 기자를 ‘기레기’로 보고, 실제 깜냥과 자세가 덜 된 기자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기자를 해본 적도 없는 작가는 풍부하고 성실한 취재를 통해 기자의 세계를 잘 그리고 진정한 언론의 자세를 깊은 울림으로 들려줬다.
MSC 보도국 사회부 시경캡 김공주(김광규)는 빙판길 낙상사고 취재를 보낸 최인하(박신혜)가 취재는커녕 연탄재를 뿌려 시민을 구하고 허탕치고 귀사하자 “기자는 지켜보는 게 공익이야. 그걸로 뉴스를 만드는 게 공익이고. 그 뉴스를 구청직원이 보게 만들고, 대통령이 보게 만들고, 온 세상이 보게 만드는 게 그게 기자의 공익이다. 니들이 연탄 두세 개 깨는 동안에 빙판길 문제로 뉴스로 만들었으면 그걸 보고 구청직원은 거기에 재설함을 설치했을 것 아냐. 사람들은 집 앞의 눈을 치웠을 거고, 춥다고 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넘어지면 다치겠다 싶어 손을 빼고 다녔을 거다. 니들이 연탄재 몇 장 깨서 몇 명 구하겠다고 뻘 짓 하는 동안에 수백, 수천 명을 구할 기회를 놓친 거야”라고 호통을 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1993년 내전 중인 아프리카 수단의 한 마을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죽은 시체를 먹는 콘도르가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한 어린 소녀의 곁에서 그녀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는 뉴욕타임즈를 통해 공개됐다. 이 사진은 수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알려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1년 뒤 카터는 사진기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대중은 상에 눈이 멀어 죽어가는 소녀를 살리지 않고 촬영에만 몰두한 카터에게 비난을 쏟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언론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한 소녀의 죽음을 보도해 수단 전체의 비극을 알려 더 많은 사람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눈앞의 한 생명부터 살리고 볼 것인가?
이 PD에게는 이런 고민이 많이 부족했나 보다.
또한 ‘피노키오’에서 YGN 보도국과 MSC 보도국이 공교롭게도 한 식당에서 회식을 할 때 명대사가 나온다. 황교동(이필모) YGN 보도국 사회부 시경캡은 이영탁(강신일) 보도국장에게 ‘봐야 할 뉴스와 보고 싶은 뉴스’ 중 우선순위가 뭐냐고 묻자 이 국장은 ‘보고 싶은 뉴스’라고 답한다.
그러자 최달포(이종석)가 1진 선배 장현규(민성욱)를 상대로 좋은 뉴스(걸그룹 콘서트 티켓)와 나쁜 뉴스(췌장암) 중 어떤 뉴스를 듣겠냐고 묻는 상황극을 연출하며 이 국장에게 일침을 가한다. 당시 번번이 MSC에게 시청률에서 뒤지던 YGN이었기에 의문의 화재현장보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동계올림픽이 중요하다며 올림픽 취재에 무게중심을 두라고 지시한 이 국장에게 한방 먹인 것이다.
결국 이 국장은 모든 취재력을 화재사건으로 돌리고 여기서 놀랄 만한 특종이 발굴된다.
이 PD는 그릭요거트 취재 당시 욕심이 과해 본질에서 살짝 어긋나는 잘못된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기업도 아닌,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자 하는 서민 한 사람 혹은 그 밑의 몇 명의 종업원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
만약 해당 요거트가 바로 이 PD가 출연한 CF의 대기업이 만드는 제품이었다면 그런 식의 접근과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대기업을 상대로 이 PD가 그런 용감한 도전을 했더라면 그 결과가 다소 실망스러웠더라도 그 용기의 가상함만큼은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 하나 정도는 대규모 언론이 상대할 게 아니라 동네 주민의 자율적 소비가 해결해야 한다.
건강에 나쁜 식품이 마치 건강에 좋은 양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언론인은 ‘무관의 제왕’이라고 했다. 노숙자와 어울릴 수도 있고 대통령을 인터뷰할 수도 있다. 삼성의 총수에게 마이크를 들이댈 수 있는 게 기자고, 재래시장에서 좌판을 벌린 추레한 할머니와 국밥을 먹으며 인생사를 들어보는 르포기사도 쓸 수 있는 게 기자다.
그동안 PD로서 기자 뺨칠 만큼 탐사보도와 특종발굴에 힘써온 이 PD는 ‘보고 싶은 뉴스’를 만들고자 노력했을까, ‘봐야 할 뉴스’를 만들고자 발로 뛰었을까? 그리고 과연 그는 ‘지켜보는 공익’의 노선을 택한 걸까, ‘남들이 지켜보게끔 만드는 프로그램’의 길을 좇은 것일까?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JT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