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이태임 예원, 기억 조작이 가능하다면
- 입력 2015. 04.03. 10:56:14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녹화 중 발생한 이태임과 예원의 욕 사건으로 인해 요즘 ‘분노조절 장애’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평소 오랫동안 잘 풀리지 않는 데 대한 불안감과 조바심이 있었던 이태임으로선 같은 시기 출연 중이던 드라마마저 잘 안 되는데다 어떻게든 자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라 한겨울임에도 바다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와 이를 조롱하는 듯한 예원의 태도에 그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림으로써 그동안의 노력마저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사건이 회자되는 동안 예원의 거짓말 혹은 미필적 고의의 의한 조작의 의혹이 대두됐고, 이를 한 파파라치 매체와 작가까지 앞장서 도운 정황이 포착됨으로써 여러 명이 싸잡혀 대중의 모진 질타를 받았다.
이태임이든 예원이든 그들의 직업은 연예인이다. 그들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녹화과정에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함으로써 대중에게 실망감을 줬을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이다. 이 시간의 흐름이 대중의 분노를 삭이거나 사건을 망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왜냐면 이태임과 예원은 최소한 마약이나 도박 혹은 섹스스캔들을 일으킨 게 아니니까 복귀해야 한다.
복귀 후의 그들은 지난 과오를 자각함으로써 당연히 분노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과 대중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해당 사건의 망각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미래의 가상공간에서 육체를 이탈한 정신이 생존의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아바타’ 역시 비슷한 환경을 그린다. ‘인셉션’의 배경인 미래사회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타인의 꿈과 접속해 생각을 빼낼 수도 있고 조작된 기억을 심을 수도 있다.
이들 영화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이터널 선샤인’은 본격적으로 기억을 다룬다. 이 영화가 얘기하는 결론은 ‘기억은 삭제돼도 마음은 남는다’ ‘추억은 지워져도 그리움은 영원하다’ 정도다.
평범하고 착한 남자 조엘(짐 캐리)과 화려하고 따듯한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서로 다른 성격에 이끌려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이내 연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매우 다른 그 성격의 차이 때문에 점점 지쳐간다. 심한 말다툼을 한 후 클레멘타인은 원하는 기억의 부분만 지워주는 라쿠나 회사를 찾아가 조엘의 기억을 지운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대해 괴로워하던 조엘 역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쿠나를 찾아가 그녀의 기억을 지우는 치료를 받지만 치료 도중 그는 본능적으로 그 기억을 지우지 않으려 기계와 사투를 벌이며 몸서리친다.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조차 그녀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웠기에.
일본 도야마 대학 생화학과 이노구치 가오루 교수 팀은 쥐의 뇌를 자극해 두려운 기억을 심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셀리포트 2일 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둥근 방에, 또 다른 그룹은 네모난 방에 가뒀다. 잠시 후 연구진은 두 그룹을 모두 네모난 방에 모으고 다리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렇게 하자 둥근 방에 머물던 쥐는 네모난 방을 두려워했다. 둥근 방은 안전한 곳, 네모난 방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둥근 방을 돌아다닐 때 쥐의 뇌의 해마 부위가 활발히 움직였고 다리에 전기충격을 가했을 때 편도체 부위가 반응했다. 연구진이 이 두 곳을 동시에 자극하자 쥐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둥근 방에서도 공포심을 나타냈다. 둥근 방이 안전하다는 기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네모난 방의 두려운 기억이 삽입된 것.
이노구치 교수는 “이 실험결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에게서 나쁜 기억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치료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쥐의 기억의 조작기간이 4개월밖에 안 돼 이를 PTSD 환자에게 적용한다면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는 단점도 동시에 알렸다.
조엘은 라쿠나에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도중 이 치료를 거부한다. 이전까지 이 영화가 보여준 이론 상 이는 불가능하지만 조엘의 반발력은 굉장히 거대하다.
이는 단순현상의 비교만으로 볼 때 이노구치 교수의 ‘4개월의 유통기한’의 한계와 맞아떨어진다. 아무리 과학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기억을 조작해도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이 잊고 싶을 정도로 나쁜 기억일지라도 본능적으로 그 추억에 대한 집착 혹은 그리움이 있다는 정서적 논거가 가능하다.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꿈’은 그저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예고편임을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잘 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스마트폰의 꿈만 같던 기능을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활용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터널 선샤인’이 국내 개봉된 해는 2005년. 이 기획과 시나리오는 그보다 수 년 앞섰단 얘기다. 그 기억의 조작이 10여 년 만에 현실화되고 있다.
이태임과 예원에게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사건은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심리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조엘은 억지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려다 스스로 거부한다. 대중은 조엘 같은 심리일 것이다. 좋든 싫든 기억은 마음속에 존재한다. 억지로 기억을 지우더라도 마음은 남는다.
공인의 위치로 격상된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그래서 쉽지 않다. 단순히 어린 시절의 환상과 착각 때문에 연예인으로서의 화려한 삶을 꿈꾸고 어쭙잖은 실력과 외모 하나만 믿고 뛰어들었다면 그 연예계는 꿈의 궁전이 아니라 불구덩이다. 연예인은 불나방이 아니라 화려한 나비가 돼 대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 이노구치 교수의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한반도 상공에 기억을 지우는 약품을 뿌려 전 국민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 전까진.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 티브이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