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진짜 사나이’와 ‘룸메이트’의 외국인 사용법
- 입력 2015. 04.08. 10:06:48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해 5월 시작된 SBS ‘룸메이트’가 다음 주 방송을 끝으로 사실상 폐지되는 모양새다. ‘시즌1’이 시작되자마자 러브라인 연출 혹은 조작에 아무런 생산적 메시지가 없는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신변잡기 식 관찰예능토크로 갈팡질팡하며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했던 게 이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욕심이 낳은 게스트의 남발과 변화 없는 식상한 진행 등은 역시 이 프로그램의 기획 자체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고 결국 시청률 하락으로 폐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MBC ‘일밤-진짜 사나이’는 좀 다르다. 파트너인 ‘아빠! 어디 가?’와 ‘애니멀즈’가 차례로 무너져도 ‘진짜 사나이’는 제목처럼 꿋꿋하다. ‘시즌1’ 후기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여군특집이란 긴급처방전으로 정상적인 맥박수를 회복한 후 ‘시즌2’로 역동하는 혈액순환의 건강을 되찾았다.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한시적 신병’들 거의 모두 화제가 됐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되거나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 중에서도 특혜자를 손꼽자면 단연 호주인 샘 해밍턴, 캐나다인 헨리, 그리고 미국인 엠버라고 볼 수 있다.
군대를 경험할 기회도, 입대할 이유도 없는 그들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의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한국군에 입대해 벌이는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가 코미디고 그래서 재미였다.
알려졌다시피 해밍턴은 대표적인 ‘구멍병사’로 인기가 높아지며 포기하기 직전이었던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단숨에 이뤘다. 또한 슈퍼주니어-M에서 제일 존재감이 없었던 헨리는 선임병사에게 ‘파인애플 같다’고 버릇없는 폭탄발언을 해 해당 병사의 분노를 유발함으로써 단숨에 시청자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엠버도 마찬가지. 예쁘고 섹시한 소녀들이 넘쳐나는 게 걸그룹이지만 그녀는 f(x)의 설리와는 달리 보이시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화제는 됐을망정 남자팬들의 사랑을 받는 덴 실패했던 보기 드문 걸그룹 멤버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진짜사나이-여군특집’으로 단숨에 예능대세로 떠올랐다. 그리고 설리가 주춤한 사이 그녀는 멤버 중 가장 바쁘다. 그녀의 명언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하늘 같은 교관에게 감히 옛 말투로 던진 ‘잊으시오’.
조선시대에나 썼을 법한 이 말투는 주로 양반 사이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명령조로 하는 말이다. 그 반대일 경우엔 ‘잊어주시옵소서’ 정도다.
이에 대해 엠버는 ‘룸메이트2’에서 “‘잊으세요’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해 ‘잊으십시오’라고 하고 싶었던 게 잘못 나온 말”이라고 해명하며 “한국어는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국어가 어렵다는 것은 한국인들도 인정할 정도니 외국인에게 얼마나 어려울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더구나 여기에 많이 다른 문화적 차이까지 겹쳐지면 한국에서 한국인의 외모와 비슷한 외국인, 그것도 연예인으로 살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 제작진은 이를 절묘하게 이용했다. 이미 군생활을 경험한 중년의 서경석이나, 군복무를 면제받은 더 나이 많은 김수로를 신병으로 입대시키는 무모한 기획을 감행한 연출력은 결국 샘 해밍턴과 더불어 진짜로 입대해야 할 박형식이란 존재의 재발견을 통해 오히려 빛을 발했다.
사실 ‘여군특집’은 약간의 반칙이다. 왜냐면 ‘진짜 사나이’니까. 이 프로그램의 외견은 그동안 군사독재정권 하에서의 신성시되고 신비화된 군대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그 속에서 유명 연예인이 진짜 군인처럼 생활하도록 ‘방사’함으로써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적 예능을 만들겠다는 의도인데 사실은 제목처럼 연예인으로 살면서 다소 유약해졌을 법한 남자들을 군기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한국군에 풀어놓고 강하게 거듭나도록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강한 게 숨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군특집’은 이 프로그램이 식상해질 즈음 훌륭한 영양보충제와 활력소가 됐다. 그게 헨리에서 엠버로 이어지는 관리불가의 ‘엉뚱한 캐릭터’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룸메이트’는 이제야 그 메카니즘을 제대로 이해한 듯하다. 폐지를 앞둔 지난 7일 방송을 잭슨의 초대로 모인 세계 각국의 남자들이 그들 나라의 프러포즈 얘기로 꾸미면서 시청자들에게 ‘꿀재미’를 안겨줬다. 물론 이는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 등의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써먹은 아이템이긴 하지만 캐릭터가 다르기에 가능한 우려먹기였다.
잭슨 료헤이 박준형을 비롯해 이 자리에 모인 엠버 헨리 뱀뱀(태국) 등의 외국인들은 가식 없는 말투와 상황극으로 쉐어하우스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몰아갔고, 잭슨 헨리 뱀뱀 등의 허영지를 중심으로 한 ‘우리 결혼했어요’ 버전은 현실감을 떠나 알콩달콩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룸메이트’가 ‘시즌1’ 때 억지로 연인만들기의 분위기를 몰아가려 하지 않고 시청자의 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게끔 이렇게 풍향대로 배를 띠웠더라면 조금 더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작진이 더 잘 알겠지만 예능은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다. 그 트렌드를 앞서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단 트렌드 안에서 변별성을 갖추는 게 더 쉽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SBS 화면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