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악!’ 크레용팝, ‘유레카!’ 최민수
입력 2015. 04.09. 15:19:15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오랜만에 최민수가 입을 열었다. 최근 라이브바에서 신곡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한 매체와 만난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쏟아냈다. 한때 폭행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엉뚱한 ‘어록’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온 그지만 이번에 토로하는 말은 차원이 달랐다. 아, 최민수가 이렇게 멋진 남자였다니.

“세월 호 사건은 세월 호만의 사건이 아녜요. 우리 미래와 꿈에 대한 수장식을 한 겁니다, 사실은. 우리의 미래가 끊어졌어요.”

세월 호 사건이 세월 호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유족에 국한된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즉 대한민국과 내일의 대한민국을 짊어져야 할 청소년들의 죽은 미래와 꿈을 물속에 가라앉힌 수장식이었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해 딱 하나 기억하는 건, (아이들이) ‘여기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어른의 말을 신뢰했다는 거예요. 우리(어른들)를 믿었잖아요. (그런데) 우리한테 체면이, 입장이라는 게 어디 있나요?”

그렇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배 안에 머물라고 해놓고 자신들은 탈출했다. 이건 적지 않은 사회지도층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애드벌룬만 실컷 띠워놓고 자신들의 주머니만 불릴 줄 알지 정작 국민들의 삶의 질의 향상에는 노력을 기울지 않음으로써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어른 중 일부 계층이 자신들의 현재를 살찌우기 위해 청소년의 미래를 소멸시킨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최민수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겨울이 지나면 싹은 피죠. 우리는 항상 힘들더라도 그 희망을 기대하고, 싹이 움트기를 기대하고 비릿한 세상에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썩은 땅에서는 싹이 자라지 않아요. 이건 우발적으로 나온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방치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모습입니다. 문제는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믿었다는 거죠. 어린 아이들이….”

그나마 썩은 땅은 땅이라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난히 싱크홀이 많이 생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품평’을 하기 좋아하는 ‘참새’들은 예외 없이 최민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평가‘질’을 해왔다. 물론 그 중에는 맞는 비난도 있을 것이고, 최민수도 사람이다 보니 인격적으로 부족하거나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인터뷰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는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양심을 갖춘 ‘어른’이었다.

대한민국에, 그리고 대한민국 연예계에 그런 양심적인 어른이 필요한 것은 요즘 젊거나 어린 연예인들이 잘못 배워 옳음과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9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윤완주 선수가 올랐다. 최근 SNS에 ‘노무노무 일동 차렷’이라는 댓글을 작성한 게 알려져 누리꾼의 집중포화를 받은 그가 이날 사과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노무노무’란 단어는 ‘일베’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윤완주가 소속된 타이거즈는 광주를 연고지로 하고 있다.

정황상 1989년생인 윤 선수가 1980년의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지는 물론 ‘노무노무’가 뭔 뜻인지 알고 썼을 가능성은 적지만, 국어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만큼은 확실하고, 그게 온전히 그들 세대만의 탓은 아니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보다 더 청소년들에게 영향력이 큰 아이돌까지 그런다는 사실은 어른들이 후배들에게 얼마나 역사인식과 국가관 교육을 잘못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걸그룹 크레용팝은 예전에 공식트위터에 ‘오늘 여러분 노무노무 멋졌던 거 알죠’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에 이들의 소속사 대표의 일베 경력이 논란을 야기했고, 비난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모처럼 쌓아올린 크레용팝의 명성은 사상누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소속사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크레용팝은 안 해도 될 말을 하면서 오히려 논란의 불바다에 기름을 부었다. 트위터에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요’라고 멤버 중 웨이의 입을 빌어 해명도 변명도 아닌, 대중을 가르치려 든 것.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뜻으로 조선 건국 직후 어느 날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나눈 의미심장한 농적 대화에서 비롯된 가르침이다. 과연 20대 중반의 웨이가 국사에 이렇게 조예가 깊었을까?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노무노무’가 뭔 뜻인 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자신들을 일베로 보는 대중이 일베고, 그 대중에게 너그럽게 가르치려는 그들이 바로 부처라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데서 그들이 대중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와 부의 규모 그리고 대중의 선망도 등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연예스타는 공인이고 사회지도층이다. 인기스타를 향한 대중의 지지도와 믿음은 웬만한 정치 지도자를 향한 그것의 뺨을 친다.

직업적 특성상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를 갖출 필요는 없다. 연예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 혹은 업무는 대중을 즐겁게 해주거나 위무해주는 것이므로.

하지만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란 경제적 덕목과 견줘 대중의 성원으로 스타가 된 연예인이라면 국민을 위한 일에는 기부와 사회적 환기(喚起)에 돈과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도 웃고 갈 어이없는 맥거핀을 구사하는 크레용팝에게 최소한의 교육을 시키려면 최민수 같은 선배 연예인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 씨엔블루를 향해 ‘파리가 새’라고 외쳤던 고 신해철 같은.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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