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손’, 시작부터 결말을 암시하는 친절한 스릴러 [시네프리뷰]
입력 2015. 04.13. 09:22:13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문학이나 영화나 음악 모두엔 기승전결의 전개방식 혹은 나름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논술이나 창작물의 얘기를 전개할 때도 점층법이나 점강법으로 강조의 강도를 달리하거나, 연역법으로 대전제로부터 소전제를 매개로 대전제의 개념 속에 포함돼 있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이끌어 내거나, 귀납법을 통해 많은 사실들을 관찰함으로써 보편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기도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의 경우 대개 이런 기승전결이 규칙이다.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하거나 ‘썸’을 타다가 어떤 매개체 혹은 계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랑의 깊이를 쌓아가게 된다. 그렇게 핑크빛이 나날이 짙어질 즈음 두 사람의 간격을 벌어지게 할 ‘사건’이 발생하고 이 갈등요소로 인해 그들은 이별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한 사람이 공항을 향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런 그를 그냥 떠나보내려다가 극적으로 재회함으로써 해피엔딩을 맺는다.

공포영화는 더욱 그렇다. 특히 사운드와 조명은 기본 중에도 아주 기본이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이 화면에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촬영을 고수하면서도 공포영화의 교과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사운드와 관객의 심리를 파고드는 화법과 그 농도를 잘 표현한 조명에 있었다.

더구나 그는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데 명수였다. 그는 공포는 다른 특별한 곳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풀어간다. 저 유명한 ‘싸이코’의 목욕탕 살인사건이나 우리가 길에서 흔히 보는 친근한 새의 습격을 다룬 ‘새’ 등이 그렇다.

몽타주기법은 물론 롱테이크와 클로즈업의 다양한 카메라워크, 그리고 플롯 보다는 인간의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를 파고드는 타고난 얘기꾼의 덕목을 갖춘 그가 보여줬고 또 들려줄 ‘강의’는 워낙 무궁무진해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고 16일 개봉되는 올 첫 한국 스릴러 ‘검은손’(박대식 감독)으로 가본다.

그런데 ‘검은손’에는 이 적절한 사운드와 배치와 높낮이, 그리고 조명의 활용이 태부족하다. 스릴러 콘텐츠를 단골로 방송하는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전반부 주차장 안에서의 여주인공이 느끼는 공포의 이유가 과장됐고, 그래서 없지만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카메라워크와 사운드의 과한 진폭은 시작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지우게 만든다.

꽤 큰 종합병원 제일병원 오너(신정선)의 남편인 정우(김성수)는 세계 최초의 생체공학연구 개발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다. 출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그가 정작 사랑하는 여자는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성형외과 전문의 유경(한고은).

아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고 정우의 속셈 역시 파악하고 있지만 그와 헤어질 수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우울증 혹은 조울증세는 더욱 악화되고 이는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지만 같은 희귀 혈액형을 가진 유경의 극적인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다.

힘든 병원생활과 괴로운 가정생활의 중간에서도 정우는 줄기세포에 관한 파격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지만 언론의 집중타를 맞고 그럴수록 연구에 더욱 집착한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유경에게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라고 위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경은 택배로 한 상자를 선물받는다. 평소 정우의 선물을 통한 고백에 익숙해진 그녀는 이번에도 정우의 선물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달뜬 마음으로 손을 넣었다가 절단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유경에게 가족이라곤 시력을 잃은 여동생 유미(배그린)가 유일하다. 이 급박한 사건 속에서 유미는 정우를 부르고 정우의 재빠른 판단과 기지로 손접합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얼마간의 재활기간을 거쳐 유경은 다시 메스를 손에 잡게 된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들을 둘러싼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사건들이 계속된다. 그 와중에 정우가 개처럼 부리던 원무과 직원이 그를 배신하면서 협박하고 여기에 정우의 동료인 줄 알았던 원내 원로의사 한 명이 그 직원과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렇게 낮에는 깔끔하지만 밤에는 음산한 병원 안에서 온갖 추하고 더러운 인간의 욕심이 꿈틀거린다.

이 영화는 비교적 공포영화의 교과서적인 규칙에 충실하다. 자본주의 조직 안에서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의 각자 다른 욕망과 꿈이 충돌하거나 타협하는 가운데 오로지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기주의와 세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전인수식 개념이 앞선다는 것을 감독과 작가는 비꼬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런 창작과 연출의 의도는 이 2시간에 가까운 장편 스릴러를 이끌어나가기에는 작품의 기획과 플롯 그리고 대사 등이 많이 약했다. 더구나 영화를 4등분했을 때 ‘기’가 끝나기도 전에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이 영화가 뭣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치려 하는지 이미 감이 잡히면서 작품의 엔진이 식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은 공포영화의 치명적 핸디캡이다.

적은 돈으로 엄청난 수입을 거둔 ‘쏘우’ 1편은 시작부터 끝까지 밀폐된 한 공간 속에 갇힌 주인공들의 피할 수 없는 죽음과 그들의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공포를 주다가 시작부터 내내 그들 옆에 피를 흘린 채 꼼짝 않던 시체가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며 바로 범인이었음을 알릴 때 온 관객의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들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루할 만큼 막판뒤집기를 아껴가며 공포영화의 기본적인 교과서적 내러티브를 따라가다가도 마지막에 ‘귀신이 사람이었고, 사람이 귀신이었대’라는 ‘디 아더스’나 ‘식스 센스’ 정도의 해머링은 있어야 관객이 표를 산다.

이 영화가 더욱 헛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나름대로 감독이 막판의 방점 혹은 한번 더 관객의 소름을 돋게 할 양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시도한 판타지적 반전이다. 이것은 이미 1980년대부터 숱하게 봐온 기법이다. 카메라가 풀샷에서 롱테이크로 클로즈업돼갈 때 이미 관객은 어느 부위가 어떻게 움직일지 안다.

한국의 공포영화 중 수작으로 손꼽히는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리 없는 '장화홍련전'을 베이스로 했지만, 작가만의 탁월한 크리에이티브를 주입해 원작과 상관없는 멋진 반전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검은손'은 '병원에 귀신이 있다더라'는 병원을 소재로 한 흔한 스릴러의 뻔한 스토리보다 긴장감이 덜하다.

이 영화의 총체적 난관은 40대의 주연배우 김성수와 한고은의 세월을 잊는 연기의 일관성에서 방점을 찍는다. 히든카드인 배그린의 복합적 심리묘사가 멍한 눈에 실려 어느 정도 빛을 발하긴 하지만 캐릭터의 작은 존재감이 제동을 건다.

사족: 이 영화에도 알프레드 히치콕의 전유물인 맥거핀이 등장한다. 히치콕이 이 맥거핀을 매번 관객의 지적인 자긍심을 뒤통수 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이 영화는 능력의 한계로 입증할 따름이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검은손’ 포스터]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