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김혜수 김고은, 왜 서로 죽이려 할까? [시네 프리뷰]
입력 2015. 04.21. 10:54:53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테이 가넷 감독의 1946년 동명영화를 1981년 보브 라펠슨 감독이 리메이크한 잭 니컬슨, 제시카 랭 주연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현대 하드보일드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의 경제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프랭크(잭 니콜슨)가 유부녀 코라(제시카 랭)에게 반해 그녀를 강간하려는 순간 코라가 칼을 들지만 그 칼로 프랭크를 찌르는 게 아니라 내던진 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의 불륜이 전개되는 내용이다.

희곡의 정설은 ‘총이 등장하면 발사해야 한다’고 했지만 여기서 칼은 상대방을 해치는 게 아니라 무장해제로 인한 욕망의 분출이 된다.

국가와 사회의 기능을 잃어버린 대공황기의 통제불능의 사람들이 갖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욕망이고, 미국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끎으로써 전 세계의 패권을 움켜쥐고 경제위기를 타개한다. 하지만 결국 프랭크는 코라를 죽인다. 감독은 미국이 자국의 군인의 피는 물론 세계인의 고혈을 짜 막강한 경제대국 군사대국으로 성장했음을 드러내놓고 조롱한다.

프랭크와 코라가 합심해 코라의 남편을 죽이고 마음껏 탐욕을 분출하지만 그 결과는 하드보일드였다.

김혜수와 김고은의 여자 투톱을 내세운 하드보일드 혹은 누아르의 ‘차이나타운’은 인천 차이나타운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피와 천박한 자본주의의 욕망의 극점이 난무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와 닮았고, 밑바닥 거친 여자들의 얘기라는 점에선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를 연상케 하며, 사랑 때문에 ‘식구’를 배신하는 플롯은 ‘달콤한 인생’이 비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인간의 추악한 탐욕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나 혹은 과감한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며, 폭력을 앞세운 어둠의 세계를 통해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 더 작게는 패권주의에 대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식의 통렬한 은유마저 느껴지지 않음은 물론 ‘달콤한 인생’ 식의 비장미가 전혀 엿보이지 않는 것은 시나리오와 연출이라는 양축의 총체적 난국 탓이다.

인트로는 결론의 바로 앞에서 펼쳐진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마가흥업의 두목 ‘엄마’ 마우희(김혜수)가 피묻은 칼을 들고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서 쓰러진 일영(김고은)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타임슬립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졌기에 일영이라 불리는 한 갓난아이가 노숙자들의 손을 거쳐 차이나타운에 팔려오고 그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엄마는 ‘이제 밥값을 하라’며 범죄현장에 투입한다. 그 과정에서 일영은 죽어가는 유기견을 측은하게 바라보지만 엄마는 ‘왜 도와주지 않느냐’며 삽으로 내려쳐 개의 고통을 줄여준다. 이 장면은 중간에 엄마가 마가흥업의 ‘넘버 투’ 우곤(엄태구)에게 ‘우리가 식구냐?’라고 묻는 장면과 함께 이 영화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주제다.

그리고 그 어둠속에서 다시 시간이 점프해 현재의 일영의 모습이 드러난 후 마가흥업의 일상들이 전개된다. 엄마 밑의 마가흥업의 ‘핏줄’은 ‘넘버 투’를 다투는 우곤과 일영을 비롯해 마약중독으로 말썽만 피우는 쏭(이수경)과 지적장애인 홍주(조현철)다.

이들의 식사는 짜장면 아니면 탕수육이고 엄마는 고량주와 담배를 입과 손에 달고 산다.

일영은 여자라는 핸디캡을 딛고 우곤을 제칠 정도로 마가흥업의 사업을 훌륭하게 완수해낸다. 마가흥업의 주요사업은 고리대금업과 장기밀매다.

엄마는 필리핀으로 도망친 한 악덕채무자의 유일한 혈육인 그의 아들 석현(박보검)에게 이자를 받아내고 동시에 그가 도망 못 가도록 감시하라는 명령을 일영에게 내린다. 그런데 이 남자, 지금까지 일영이 봐왔고 겪어온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방인이다. 누가 봐도 조폭 같은 채권자인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스파게티까지 대접한다.

두 사람은 며칠 뒤 데이트를 했고 일영은 석현을 아주 빨리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쏭과 함께 재래시장에서 쇼핑하며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원피스에 눈길이 가 결국 구매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일영에게 엄마가 칼을 주며 그 악덕채무자가 잠적했으니 석현의 장기를 ‘작업’하자고 명령을 내린다. 이때부터 갑자기 일영은 엄마를 배신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엄마의 수하들과 목숨을 건 추격전을 펼친다. 도대체 일영은 두세 번 만남으로 엄마 등의 식구를 배신할 만큼 왜, 무엇 때문에 석현을 사랑하게 됐는지 이유와 개연성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 각자 다르지만 히트하는 대중문화 컨텐츠에는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대중의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그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관객은 무슨 근거로 영화를 선택할까? 말할 것도 없이 재미다. 평소 TV 등 대중매체에서 보기 드문 신비주의 톱스타가 나온다거나, 흠모하던 여배우가 노출한다거나, 아니면 존경하는 감독의 영화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남녀노소 만국 공통의 기준은 ‘재미’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잔인했던 ‘악마를 보았다’는 그 원인 모를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최민식의 연기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수익을 발생했고, 조폭 두목의 연인의 보디가드 역을 맡은 이병헌이 역할에 걸맞지 않은 여린 감수성과 지적인 이미지였음에도 ‘달콤한 인생’에 관객이 몰린 이유는 작품 전체에 흐르는 비장미가 주는 재미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의 낭자한 유혈과 이를 유발하는 칼부림은 도대체 당위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친구’의 동수(장동건)가 준석(유오성)의 사주를 받은 킬러의 칼에 여러 번 찔려도 그게 타당해보인 이유는 ‘고마 해라, 마이 뭇따 아이가’라는 대사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의 양자 대결구도를 이루는 엄마와 일영 사이의 아주 중요한 미장센인 치도(고경표)가 제거되는 장면의 난자한 칼싸움은 그의 과장된 연기가 주는 어색함과 궤를 같이 하고 이런 기조는 영화 전편에 걸쳐 흐른다.

그리고 그 칼질은 일영에게서도 계속된다. ‘악마를 보았다’보다 덜 잔인하지만 더 불편한 이유다.

인트로와 아우트로의 주요 장면을 장식하는 무시무시한 킬러 탁(조복래)의 죽음 역시 설득력이 한참 떨어진다. 미리 짜놓은 기승전결을 무리하게 꿰기 위한 바느질이 엇박자를 거듭 연출한다.

김고은의 연기는 ‘몬스터’ 때완 사뭇 다른 게 그나마 이 영화에서 건질 만한 수확이다. 김혜수는 딱 자신의 위치만큼의 연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김혜수만 같아라’의 수준이다. 오히려 지적장애인 홍주를 연기하는 조현철이 숨은 보석의 발견이다.

영화의 보도자료는 엄마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일영을 상징하는 초록색과의 보색관계를 이들의 갈등과 대결 혹은 대물림이라는 상징성과 연결시키려 애쓰지만 후반 일영의 뒷모습을 핸드헬드로 줌아웃해나가는 장면에서의 미세한 흔들림만큼 상징적이거나 인상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두 주인공의 마지막 투샷 신에서 감독은 클로즈업으로 그들의 비극적이지만 일상적인 삶과 운명을 곧잘 표현해내다가 뜬금없이 풀샷으로 앵글을 뒤로 빼는 우를 범한다. 누아르 특유의 비장미와 하드보일드의 피칠갑이 현실감을 잃고 만다. 29일 개봉.

사족: 마우희는 ‘말이나 소처럼 짐승 같은 여자’의 은유적 해석이 가능하다. 일영을 죽이려는 줄 알았던 그녀가 치도에게 ‘손끝 하나 건들지 말라’고 지시한 점이나 10번 보관함 안에 일영을 입양한 증명서를 넣어놓은 데서 그녀가 미친 말처럼 질주하지만 사실 소처럼 우직하고 따뜻한 면이 있다는 의미. 그런데 마일영은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중간계투용 투수다. 김고은이 전도연 이후 기근을 보이는 한국 여배우계보의 중간계투라는 뜻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흡연욕구 유발용 영화라는 점.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록스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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