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김혜수Vs이혜영, 여성누아르의 한계와 극복
- 입력 2015. 04.24. 10:06:25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23일 개봉되자마자 6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과 맞장을 뜨겠다고 공언한 한국의 여성 누아르 ‘차이나타운’은 과연 그 큰소리만큼의 근거가 있을까, 아니면 허언일까? 그 키는 당연히 두 주역인 김혜수와 김고은이 쥐고 있고 거기서도 단연 선배인 김혜수의 몫이 더 크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1930년을 전후한 미국의 대공황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사실주의 수법 하드보일드, 여기에서 파생돼 10년 뒤 할리우드와 프랑스를 강타한 뒤 걸작 ‘대부’를 탄생케 하고 1980년대 저우룬파(주윤발)와 장궈룽(장국영)으로 대표되는 홍콩 누아르로 발전해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은 누아르. 그런데 할리우드조차 여성 누아르는 다소 생소하다. 굳이 뽑자면 리들리 스캇의 대표적인 버디 로드무비 ‘델마와 루이스’가 있는데 비록 두 여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행각을 벌이다 결국 자살로 끝냄에도 불구하고 비장 냉혹 음산 잔인 등의 하드보일드와 누아르의 기운 대신 유쾌함이 넘쳐난다. 그만큼 여성 누아르가 힘들단 의미다.
다수의 누아르가 그렇듯 한국 누아르에서 그린 여자는 ‘게임의 법칙’이나 ‘넘버3’에서 보듯 대부분 건달의 ‘여자’고 ‘밑바닥’ 여자다. 그리고 그들은 주역이 아닌 조연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2002년 개봉된 ‘피도 눈물도 없이’는 달랐다. 금고털이 전문가였지만 이제 손을 씻고 택시운전을 하며 유일한 희망인 딸과의 재회를 그리며 살아가는 ‘가죽잠바’ 경선(이혜영)과 과거에 라운드걸로 일하며 가수를 꿈꿨던 ‘선글라스’ 수진(전도연)을 투톱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화법으로 조심스레 여성 누아르의 경지를 개척해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차이나타운’은 고리대금업 장기밀매 등을 주업으로 하며 인천 차이나타운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엄마’ 마우희(김혜수)와 그녀가 거둬 키운 고아 출신의 일영(김고은)이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여정을 담았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는 많이 닮았다. 깡패가 아니지만 깡패 같은 네 여자, 경선은 처음 만난 수진이 자신과 많이 닮았음을 느끼고 금세 동질감을 품으며 일영 역시 엄마에게 반항하지만 어느새 또 다른 엄마가 돼 간다.
경선과 수진이 척박한 삶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찾은 투견장은 바로 엄마와 일영이 살아가는 차이나타운과 닮았다. 한물 간 깡패와 각종 양아치들이 넘쳐나는 이 곳에서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야욕과 생계를 위해 물고 뜯는다. 똑같다.
하지만 이혜영-전도연과 김혜수-김고은은 많이 다르다. 똑같이 담배를 피워대는 네 여배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색깔부터 차이가 난다. 그건 연출력의 차이고 시나리오의 다른 점이며 각 배우들의 연기의 깊이가 높고 낮음이다.
류승완 감독은 일찍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액션 누아르 신동임을 입증한 뒤 장편 상업영화계로 뛰어들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같은 실패작도 있었지만 ‘짝패’에서 보여준 그의 액션과 누아르에 대한 철학만큼은 단연 두드러졌다.
‘짝패’는 누가 봐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1부를 베꼈다. 석환(류승완)과 태수(정두홍)가 필호(이범수) 일당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는 요정을 치는 장면은 ‘킬 빌’에서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일본 야쿠자 두목 오렌(루시 리우)을 치기 위해 그녀의 조직원들이 파티를 벌이는 이자카야를 초토화시키는 모습과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적당한 레퍼런스와 흉내는 의도와 기술에 따라 발전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류승완과 정두홍의 형편없는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짝패’가 한국 액션 누아르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런 류승완은 존경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서 벗어난 ‘피도 눈물도 없이’를 아주 한국적으로 잘 그려냈다. 이 영화에서 프랑스도 할리우드도 홍콩도 찾아볼 수 없다. 그건 류승완의 각색과 연출력의 쾌거이지만 이혜영과 전도연이란 걸출한 여배우가 없었다면 화룡점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나타운’은 하드보일드의 피가 난무하고 누아르의 어두운 조명은 충만하지만 정작 엄마와 일영의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말 한마디 없이 일영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우곤이나 ‘밥 먹고 약 먹기 위해’ 사는 정신지체자 홍주의 존재감과 그를 표현한 엄태구와 조현철의 연기력이 두드러진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한준희 감독은 이 데뷔작의 준비단계부터 엄마는 오로지 김혜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반 토막 나서 좁은 한반도일지라도 전도연 고현정 심혜진 김희애까지 또래의 여배우는 많다. 그건 배우가 없는 게 아니라 감독의 시야가 편협하거나 크레딧 때문일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가죽잠바와 선글라스의 필수품목이 드링크제와 담배 한 개피라면 ‘차이나타운’의 엄마와 일영의 그것은 자장면과 고량주와 역시 담배 한 개피다. 담배를 피워 문 이혜영과 김혜수는 많이 닮았다. 그런데 거기까지인 게 문제다.
이혜영은 굳이 뒷골목의 여자인 척 티내지 않고 나름대로 바람머리에 패셔너블한 빈티지 의상으로 꾸몄음에도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인순이를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에 보형물로 과대포장한 김혜수에게선 자꾸 ‘신라의 달밤’의 귀여운 푼수 민주란과 ‘타짜’의 ‘이대 나온 여자’가 오버랩된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기묘한 이야기’의 유행어처럼 ‘참 기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아니타운’은 ‘어벤져스2’처럼 황당하거나 어이없진 않다. 오로지 미국사람이거나 혹은 영어를 쓰는 ‘신’만이 지구를 구한다는 ‘어벤져스2’ 속의 서울의 중심부나 경찰이 낙후되게 그려지는 것에 비교하면 ‘차이나타운’의 차이나타운은 매우 현실적이고 작품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
인천 경찰의 요직 간부를 가차 없이 죽일 정도로 엄마가 큰 힘을 가졌는지, 왜 엄마는 쉴 새 없이 사람을 죽이고도 경찰의 의심 한 번 안 받는지 불친절하게도 설명이 없지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엄마와 마가흥업 식구들의 삶과 인생이 살 떨리게도 피부와 와 닿아 소름이 돋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어벤져스2’보다 ‘차이나타운’을 봐야할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단, 잔인한 게 눈에 거슬리고 심각한 게 불편하며 단순한 게 좋다면 반대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폴룩스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