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차이나타운’ 봐야 하는 이유 셋
입력 2015. 04.27. 08:40:35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오는 29일 여자를 앞세운 한국의 필름누아르 중 가장 잔인하고 제일 진지한 ‘차이나타운’이 개봉된다. 지난 주 개봉돼 이미 1000만 관객 동원이 가시권에 들 정도로 폭발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독주에 제동장치가 될지, 아니면 희생양에 불과할지 관심을 끈다.

‘차이나타운’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조직 마가흥업의 보스 ‘엄마’ 마우희(김혜수)가 자신을 많이 닮은 고아 일영(김고은)을 거둬 마치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 뒤 살아남은 강한 놈만 키우듯 그렇게 차이나타운의 체질에 맞는 것을 확인한 뒤 심복으로 성장시킨 다음 펼쳐지는 핏빛 누아르다.

마가흥업의 사무실 겸 집은 낡은 사진관이다. 이 곳에서 사는 식구는 엄마와 일영을 비롯해 엄마의 오른팔인 우곤(엄태구), 일영과 가장 잘 통하지만 마약에 찌든 쏭(이수경), ‘밥 먹고 약 먹으면 열심히 일하는’ 데 충실한 정신지체자 홍주(조현철) 등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엄마는 일영에게 운전을 시킨다. 그리고 부둣가에서 고량주를 따르며 자신의 엄마였던 고인에게 제를 올린다. 그리곤 일영에게 “내가 죽였어, 여기서”라고 말한 뒤 “그만 들어가, 나 혼자 있게”라고 말한다.

엄마는 필리핀으로 떠난 한 골칫거리 채무자의 유일한 혈육인 박석현(박보겸) 이자도 받고 그가 도망 못 가게 감시도 하라고 일영을 보낸다. 그런데 석현은 일영에게 거부감이나 두려움 없이 아주 친절하게 대하며 심지어 ‘이자는 드릴 테니 일단 식사부터 하라’고 스파게티를 내준다.

포크가 아닌 젓갈로 스파게티를 먹는 일영을 바라보던 석현은 그녀의 눈 밑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약을 발라주는 친절을 베풀지만 이에 화난 일영은 스파게티 그릇을 내팽개치며 화를 낸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분노가 아니라 20년 동안 살벌한 차이나타운에서 자라온 그녀로선 따뜻한 인간미와 정을 단숨에 받아들일 수 없는 생경함에서 비롯된 공포다. 그렇게 일영은 단숨에 석현에게 빠져든다. 숨을 헐떡거리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린 일영 앞에서 삽으로 개의 목숨을 단박에 끊으며 “넌 왜 도와주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냐”며 “너도 필요 없으면 죽일 것”이라고 짧게 내뱉었던 엄마를 보며 그런 엄마를 만든 차이나타운의 체질을 몸에 밴 채 살아온 일영으로선 “에이, 우리 아버지는 나를 버리고 도망가는 그런 사람 아녜요”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석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지만 한 번도 못 본 파라다이스의 천사였던 것이다.

또 비가 오는 날 엄마는 일영에게 운전을 시키며 칼자루를 쥐어준다. 석현의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잠적했으니 석현의 장기를 작업하자는 것이었다.

아연실색한 일영은 석현을 향해 칼을 들고 다가서며 “밥 먹고 약 먹었으니 일해야 돼”라고 뇌까리는 홍주로부터 석현을 구하지만 이를 예상한 엄마가 부른 부하들에게 잡힌다.

엄마는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해봐”라고 일영을 압박하고 천신만고 끝에 도망치는데 성공한 일영과 엄마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드보일드가 그렇듯 잔인하다. 각종 칼이 난무하고 거기서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누아르의 공식대로 시종일관 어두운 조명 아래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상류층도 보통사람도 아닌, 밑바닥 인생들의 오로지 살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 속의 번뇌를 그리며 부패한 세상을 드러내놓고 조롱한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걸작 누아르 ‘블랙 레인’은 제목처럼 시종일관 스크린을 빗물이 적신다. ‘차이나타운’에서도 초반에는 사진이, 그 이후론 비가 굉장히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사진은 추억이고 기록이다. 마우희의 엄마와 마우희, 마우희와 일영 그들의 관계는 사진이고 윤회고 곧 그게 인생이다.

겉으론 한없이 냉정하고 잔인하며 철저하게 계산적인 엄마지만 결국 엄마도 사람이다. 그러나 엄마는 안 울고 하늘을 대신 울게 한다. 이건 초반에 엄마가 어린 일영과 또래의 고아들을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던지고 살아 돌아오는 아이들만 거두는 생존의 방식과 연결된다. 엄마는 사자를 키우고 싶은 것이지 길고양이를 거두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녀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오늘날 남을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마음속으로 일영을 사랑하며 굳이 인간미를 숨기려 하지 않는 우곤이 “우린 식구잖아”라고 말하는 데 반발해 “우리가 식구니?”라고 되묻는 엄마다. 엄마는 주류 세상에서 버려져 차이나타운으로까지 흘러들어온 밑바닥 인생들이 이 세상의 끝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정성이나 어설픈 인간미나 동정심 따윈 버려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사이코메트리’의 각본으로 장편상업영화에 첫발을 내디딘 후 ‘차이나타운’의 각본을 쓰고 직접 메가폰을 잡은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인 ‘차이나타운’은 신예감독의 첫 영화답지 않게 묵직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볼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첫째 차이나타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의 행위는 잔인하지만 그 내막은 우리네 서민의 삶과 닮았다는 데서 이 영화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객의 가슴에 축축하게 비를 내릴 것이다. 차이나타운 지하철 역사 내 물품보관함에 버려진 일영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품을 수 있는 ‘개똥철학’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주도적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부모의 의지와 행위에 의해 태어난다. 하지만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차이나타운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이 고리대금 장기밀매 마약판매 등의 각종 악질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악질기질이 없는 탓에 차이나타운에서 어묵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삼촌(정석용)의 생존방식과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그건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아등바등 살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잘 안다. 이 영화의 무게감이 만만치 않은 이유다.

두 번째는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여자 버디 누아르란 장르다. ‘말타의 매’에서 시작돼 ‘상하이에서 온 여인’ ‘차이나타운’(로만 폴란스키 감독) ‘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칼리토’ ‘LA컨피덴셜’ ‘영웅본색’ 등의 수많은 걸작들로 이어져 온 필름 누아르는 으레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여자 버디 무비 하면 페미니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리들리 스캇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 정도지, 누아르는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미 13년 전 류승완 감독이 이혜영과 전도연 투톱을 내세운 ‘피도 눈물도 없이’로 선구자의 길을 걸은 바 있고 이제 한준희 감독이 그 재기발랄한 류 감독의 뒤를 잇고자 한다.

얼마 전 개그맨 장동민이 극도의 여성비하 발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서 보듯 아직도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남존여비 혹은 여성비하 사상이 잔재해 있는 게 사실이고 인도 발 뉴스에서 보듯 거리낌 없이 여성을 단지 성의 노리개로 하찮게 여기는 인식도 남아있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의 주역은 여자다. 영화 초반 일영은 마작 판으로 채무자를 찾아가는데 정작 껄렁한 남자 채무자는 그녀를 우습게보고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자 일영은 휴대전화를 켜고 채무자의 아내를 볼모로 잡아두고 있음을 알리고 채무자는 금세 순한 양이 돼 일영에게 손발이 닳도록 빈다. 그리고 일영은 재떨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친다.

감독은 남자들에게 ‘여자를 하찮게 여기면 당신의 아내 딸 여동생이 다칠 수 있다’는 경고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는 두 여자가 제작 기획 프로듀싱을 주도했다. 세상을 향한 여성의 주체적 외침이 일영을 통해 울려 퍼진다.

마지막은 주조연 배우들의 발견이다. 김고은은 ‘은교’로 화려한 스타탄생을 알렸지만 두 번째 작품 ‘몬스터’를 통해 관계자들도 팬들도 모두 실망시켰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의 일영은 김고은이 부활했고, 내일의 전도연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는 희소식을 전해준다.

더불어 돋보이는 래퍼 매드클라운의 친동생으로 알려진 감독 겸 배우 조현철의 발견이다. 아직 연출자로서의 능력은 입증된 바 없으나 최소한 배우로서의 조현철의 존재감은 기존 연기파들에겐 경고등이다. ‘말아톤’의 조승우가 무색한 그의 지체장애인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수준이다.

영화는 홍보의 논리상 김혜수를 앞세운다. 하지만 30년 경력의 김혜수의 역할은 딱 그만큼이다. 오히려 극장 문을 뒤로 하고 나설 때쯤 관객들의 머릿속엔 김고은과 조현철이 맴돌 것이다. 아니면 박보검의 신선한 마스크가 자꾸 떠오르든가.

‘어벤져스2’에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이 보스가 아니고 ‘알바’일 뿐이며 진짜 보스는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라고 못 박는다. 정말 캡틴 아메리카가 눈부신 맹활약을 펼치는가 하면 영어에 능통한 북유럽 출신의 천둥의 신 토르가 어벤져스 중 제일 강하게 마블코믹스에서 그려지는 미국의 제국주의의 ‘불편한 진실’보단 ‘차이나타운’의 피 튀기는 얘기가 두고두고 가슴 속에 남는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폴룩스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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