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후아유’, ‘학교’는 없고 ‘앵그리 맘’만 있는
- 입력 2015. 04.29. 09:51:30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KBS2의 간판 청춘드라마 ‘학교’ 시리즈의 최신판 ‘후아유-학교 2015’(이하 ‘후아유’)는 과연 정통을 잇고 새로운 청춘스타를 배출해낼 수 있을까? 하지원 조인성부터 최근의 이종석 김우빈까지 뜨겁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새 청춘스타를 속속 탄생시킨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청소년 시청자나 관계자들의 시선은 각별하다. 지상파 방송 3사 중 유일한 정통 학원 청춘물이란 정체성이 주는 상징성이고, 또 내일의 새별을 미리 보고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간대 1위인 SBS ‘풍문으로 들었소’가 11.1%에서 12.2%로, MBC ‘화정’이 9.9%에서 10.9%로 각각 1%포인트 정도 상승한 결과에서 보듯 화요일 저녁 전체적인 시청자의 숫자가 는 것이지 특별히 ‘후아유’를 찾은 시청자만 유독 불어난 것이 아니었다.
1999년 초 시작된 ‘학교’ 시리즈는 분명히 나름의 미덕을 지닌 청소년 성장 학원물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어른과 아이의 중간에 놓인 10대 중후반 청소년들의 갈등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소재로 학교 내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짚어가는 가운데 서구사회의 고교생활과는 사뭇 다른 질풍노도의 3년을 거쳐야 하는 국내 고교생의 파도와 폭풍우가 내리치는 시기를 그려냄으로써 10%대의 시청률 속에 숱한 스타를 조련해냈다.
그래서 ‘후아유’는 최소한의 ‘혈통’을 유지해야 함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따른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숙제를 안고 있지만 천편일률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설정과 스토리 전개, 그리고 스피디한 속도감과는 다른 불친절한 제작진의 일방통행식 진행과 엇박자의 편집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녹아들어가지 못하도록 갈지 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똑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경남 통영 누리여고 2학년 이은비(김소현)와 서울 세강고등학교 2학년 고은별(김소현)의 학교생활로 드라마는 시작했다.
은비는 학교에서 왕따 등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자신을 지켜가는 착하면서도 강단 있는 캐릭터고, 은별은 그 반대의 얼굴이지만 성적은 1등이다.
그런데 은별은 감추는 것이 많은 비밀로 똘똘 뭉친 캐릭터고 친구 이시진(이초희)이 그녀를 수상한 눈빛으로 훔쳐본다. 갑작스럽게 은별이 실종되고 딸을 애타게 찾던 송미경(전미선)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은별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녀가 은비일 것이란 암시가 복선으로 흐른다.
다행히 빨리 회복된 은별은 다시 평소의 학교생활로 돌아가고 학교에선 교사의 학생 체벌부터 왕따와 폭력 그리고 금품갈취 등 고색창연한 교내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별로 새롭지 않게 그려진다. 게다가 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단란주점에 모여 음주가무를 벌인 뒤 120만 원의 술값을 못내는 상황에서 미성년자를 출입시킨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주인을 위협하다가 오히려 주인의 신고로 경찰서에 연행된다.
2회는 김보라(서영은)의 엄마가 도우미 아줌마가 패물을 훔쳐간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정작 금은방의 CCTV에 찍힌 건 보라였고 은별의 교내 사물함에선 보라 엄마의 값비싼 패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딱 제 나이의 역할을 부여받은 김소현의 1인2역 연기는 봐줄 만하다.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이초희, 껄렁하고 야한 차송주 역의 김희정, 이사장 아버지에게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럭비공같은 존재 공태광 역의 육성재 등의 연기 역시 서로서로 부드럽게 녹아든다.
하지만 2학년 3반 담임선생 김준석 역의 이필모, 학생주임선생 역의 신정근, 교감선생 역의 이희도 등의 연기는 결코 10~20대 어린 주연배우들의 연기를 리드하거나 조력하지 못한다. 특히 전작 ‘피노키오’에서 훌륭한 조연연기를 펼쳤던 신정근과 이필모의 불꽃 튀었던 존재감은 대본과 연출의 허술함 때문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학생들 술값 120만 원을 할부로 해달라고 혼잣말을 뇌까리는 이필모의 ‘허당’ 캐릭터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가 하면 무작정 인상만 쓰는 학생주임의 전형적인 모습만 부각하려는 신정근의 안일함이 고작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등학교는 매우 특수한 공간이다. 미국 등 서구사회는 고교 졸업파티 때 ‘총각, 처녀 파티’를 벌일 정도로 고교시절에 놀 것 다 논 뒤 정작 대학에선 학구열을 불태우지만 대학입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의 청소년에게 고교는 욕망과 정열을 억누르다 옆으로 삐져나온 그 열정의 덩어리를 기껏 일탈에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과한 귀걸이를 하고 애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짱’ 권기태(박두식)가 오히려 귀여울 정도로 나약하게 그려지거나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한이한(남주혁)과는 밥을 먹자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 학교 이사장인 아버지 공재호(전노민)과 대립각을 세우는 태광의 설정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이미 시청자와 관객은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두사부일체’ 등을 통해 고교가 얼마나 살벌하고 잔혹하며 비인간적인 대우와 불법이 판을 치는지 충분히 봐왔다. 사회적 불법 탈법 행위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부도덕과 범죄와 편법과 헤게모니 다툼이 만연된 학교를 단지 은별과 은비를 둘러싼 미스터리 코드를 앞세워 풀어가려는 제작진의 기획의도는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게 화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아무리 드라마라 영화에 비해 편집시간이 짧다고 하더라도 각 커트가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못하고 어긋나는 편집이 속도감이라면 세상 모든 드라마는 시청자의 이해를 방해하는 게 맞다. 애초부터 대본과 연출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의혹을 부풀린다.
공교롭게도 MBC는 자체제작으로 ‘앵그리 맘’을 수목드라마로 내고 있다. 한때 주먹으로 날렸지만 이제 억척주부가 된 30대 후반 안팎의 조강자(김희선)가 딸 아란(김유정)을 학교폭력과 왕따 등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여고생이 돼 아란의 학교로 잠입(?)한다는 설정부터 사학비리 등을 다루는 점 등은 ‘두사부일체’의 플롯과 많이 닮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호평 일색인 것은 교내 각종 비리와 학생들 사이의 문제점 그리고 여기에 얽히고설킨 어른들의 추악한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 덕이다.
하지만 ‘후아유’에는 어떻게든 자식을 고급과외 서클에 진입시키려는 추악한 욕심만 앞세우는 ‘앵그리 맘’은 있지만 정작 ‘학교’의 문제점에 대한 진지하고 사실적인 고뇌는 없다. 그저 나약하거나 화낼 줄만 아는 선생이나 학교의 이미지를 포장해 돈을 벌겠다는 이사장과 교감은 있지만 아버지의 청탁으로 교사가 된 사실에 괴로워하는, 정작 올바른 교사가 되고 싶었던 ‘앵그리 맘’의 박노아(지현우)같은 올바른 교사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위생적이어야 할 병원이나 식당 중 일부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뉴스를 가끔 접하곤 한다. 청소년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나야 할 고교시절과 그 중심이 되는 학교가 과연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어른이 어떻게 청소년을 이끌고 가르치며 성장의 동력이 돼줘야 할지에 대한 기초적 청사진도, 기본적 고뇌도 없는 청소년 학원물은 그냥 돈벌이 수단일 뿐 양질의 한류문화 콘텐츠가 될 수 없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