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차이나타운’의 '어벤져스2'와의 공존법
- 입력 2015. 05.06. 10:21:58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6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은 어린이날인 5일 71만2384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굳게 지키는 가운데 833만2662명의 누적관객수로 1000만 돌파는 물론 ‘명량’의 역대 흥행 1위인 1761만 관객동원을 노리고 있다.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주 관객인 애니메이션 ‘다이노 타임’과 ‘노아의 방주’가 부진한 것은 역시 어린이들이 선호할 만한 ‘어벤져스2’의 흥행세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한 이유가 작용한 것과 동시에 어른도 흥미를 느낄 만한 재미거리가 풍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날인 1일부터 어린이날인 5일까지 5일간의 황금연휴는 반드시 어린이만을 위한 일정은 아니어서 한국영화 ‘위험한 상견례2’가 약세를 보인 점은 올해 계속되는 한국영화의 흥행부진의 연장선상으로 보여 업계의 시름을 유발한다.
그래서 ‘어벤져스2’의 어마어마한 물량공세 속에서 독야청청 선전하고 있는 ‘차이나타운’(한준희 감독, 폴룩스픽쳐스 제작)의 은근한 끈기가 단연 돋보인다.
‘차이나타운’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날 13만478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함으로써 누적 관객 수 85만9567명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인 124만 관객 돌파가 쉽게 점쳐지므로 제작사 배급사 감독 배우 모두 ‘윈-윈’하는 결과가 가시권이다.
단수비교만으론 ‘차이나타운’이 감히 ‘어벤져스2’와 동일선상에서 거론될 수 없다. 지난 연휴 기준 ‘어벤져스2’의 스크린수는 1613개고 ‘차이나타운’의 그것은 고작 532개다. ‘어벤져스2’가 국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제작비는 더욱 비교불가다. ‘어벤져스2’는 북미개봉 기준 2억5000만 달러(약 2714억 원)고, ‘차이나타운’은 순수 제작비 25억 원이다. ‘어벤져스2’의 한국 프로모션 비용까지 합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 ‘약장수’가 ‘어벤져스2’와 같은 날 개봉돼 곧바로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은 것과 달리 ‘차이나타운’은 한국영화와 외화 전체를 아울러 유일하게 ‘어벤져스2’에 굴하지 않고 나름대로 선전 중이다.
그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벤져스2’의 ‘어마무시’한 위력에 있다. 아무리 이 영화에 대한 흠집을 내려 해도 재미있고, 전작보다 더 흥미진진하며 그 와중에도 ‘철학’이 담겨져 있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오토봇의 수장 옵티머스 프라임은 디셉티콘의 지구침공에 맞서 싸우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명분이 부족하다. 로봇 생명체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멘토를 저지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벤져스’ 시리즈의 영웅들은 각자 트라우마도 있고 그래서 갈등하기도 하며 서로 반목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악당에 맞서 싸워야 하는 타당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어벤져스2’는 전편과 달리 시작부터 어벤져스들이 한데 모여 히드라의 본거지를 치는 활약상이 스피디하게 펼쳐지며 눈을 호강시킨다. 그리고 스칼렛 위치의 염력에 심리의 근간이 흔들리는 영웅들의 핸디캡과 트라우마는 꽤 진지한 철학을 던져준다.
새로운 인류의 적이 된 울트론은 전편의 로키보다 더 강력하고 그에 대적시키기 위해 토니 스타크가 창조해낸 새 영웅 비전 역시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각 어벤져스에게 골고루 분배된 활약상이 잠시라도 한눈을 팔 틈을 주지 않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편당 3시간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영화라는 게 다음날 학교나 회사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다양한 화젯거리로 공감 혹은 토론을 하는 데 유용하기에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독서마냥 챙겨봐야 하는 수준에 오르면 그 영화의 흥행성공은 보장된다. 대다수의 블록버스터가 그렇고 ‘어벤져스2’는 그런 요소가 최강이다.
하지만 찬양의 반대편에서 ‘재미없다’는 반응도 상당수다. 그 이유는 단순한 ‘트랜스포머’와 달리 심오한 마블시리즈 특유의 연계성과 철학 때문이다. ‘어벤져스2’는 ‘헐크’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 마블시리즈를 모두 통달해야 전체는 물론 화면 곳곳에 녹아있는 세세한 재미까지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언맨’ 시리즈는 모두 챙겨봤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놓쳤다면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갸우뚱할 것이다. 물론 전자보다 재미도 덜 느낄 것이고.
본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게 관객들로 하여금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 수준에서 눈의 풍요를 주는 게 미덕이다. ‘그랑 블루’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주의 감독 뤽 베송조차 할리우드의 다국적 자본을 받은 이후 ‘레옹’이나 ‘제5원소’같은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뒤 ‘택시’ 시리즈같은 전형적인 흥행작에 몰두해오고 있는 게 좋은 예다.
그래서 ‘어벤져스2’의 블록버스터적 외형만 믿고 편하게 즐기자고 푹신한 극장 의자에 앉았다가 극장 문을 나설 땐 ‘내가 좀 모자란가?’란 자괴감이 동반되는 의문 때문에 이 영화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관객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차이나타운’ 역시 썩 편안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다른 점은 ‘청소년 관람 불가’고 김혜수가 섹시함을 버리고 그 나이와 경력에 걸맞은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의 몰입으로 승부수를 띄웠으며 그녀에 비해 새파란 김고은이 ‘몬스터’ 때완 다른 기대감과 매력으로 김혜수에 뒤지지 않는 연기를 펼친다는 입소문이 애초에 관객의 기대심리를 영화의 내용에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이다.
게다가 희한하게도 한국관객은 대체로 누아르에 너그러운 편이다. ‘대부’ 마니아들이 득시글대는가 하면 우위썬 감독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등에 열광했고 1994년 개봉된 사실상 국내 최초의 누아르 ‘게임의 법칙’은 단관개봉으로 4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다.
그후 ‘친구’ ‘아저씨’ 등으로 그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1992년 국내 최초의 여성 누아르였던 ‘피도 눈물도 없이’의 계보를 잇는 첫 작품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류승완 감독의 화법과는 다소 다르게 비장미가 더욱 짙다는 점에선 확실하게 잔인하다. 그런데 그건 13년 전과 현재의 관객의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오리지널부터 리메이크까지 봐왔고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시리즈가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현재의 관객에게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의 작가적 시각을 보다 더 쉽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폭력성의 극대화가 나름의 설득력과 개연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약장수’는 확실히 미덕이 풍부한 영화다.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못해 이제 신용불량자가 된 한 중년의 가장이 사기꾼에게 속아 약장수로 노인들의 꾸깃꾸깃한 마지막 생활비를 등친다는 설정은 아주 생생한 현실이고 서민들의 얘기다. 게다가 노인들이 사기인 줄 알면서도 자식과 사회에서 소외된 자신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약장수에게 속아 넘어간다는 ‘속살’은 정말 이 시대의 처절하고 비참한 현실의 반영이자 거울이기에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한 영화였다.
그런데 관객은 그 처절한 잔혹동화보다 아주 잔인하되 살아야 할 명분이 있음을 입증하는 ‘차이나타운’을 선택했다. 그건 차이나타운이라는 특별한 세상을 살아가는 두목 ‘엄마’와 그 ‘엄머’를 닮아가는 일영의 죽거나 혹은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우리네 삶의 치부면서 그게 사실이기에 관객들이 감독의 작가주의에 동감의 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뛰어나다. 별로 낯익지 않은 신인들조차 김혜수의 기에 주눅들지 않는다. 배우 스스로 감독의 연출의 의도 속에 충분히 녹아들어갔기 때문이고 그것은 그만큼 배우의 기초와 자질이 뛰어나다는 증거이며 이를 캐스팅해 조련한 감독의 혜안이 뛰어났다는 입증이다.
특히 미술감독은 차이나타운이란 세계의 음울함을 매우 섬세하고 사실감 있게 채색했다. ‘어벤져스2’를 보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관객이라면 ‘차이나타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게 또한 ‘차이나타운’의 미덕이다.
‘어벤져스2’ 속 서울의 하늘은 황사 탓인지 매연 탓인지 뿌옇고, 도시는 시간을 수십 년은 거슬러 올라간 듯 옹색하기 그지없다. 기대가 실망을 넘어서 분노로 바뀌는 이유다. 게다가 ‘마블 덕후’가 아닌 관객에겐 매우 불친절한 디테일에 자신이 문화인의 수준에 미달인 듯 낯 뜨거워진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의 불편함은 그냥 공장에서 공산품 찍어내듯 아무렇지 않게 산 사람을 죽여 장기를 적출하고, 배신과 불신이 난무하며 그게 생존의 이유라는 메시지는 불편하지만 현실이기에 가슴이 아리고 시선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은 오는 13일 개막되는 제54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됐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폴루스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