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빵빵’ 터지는, 루저들을 위한 찬가[시네프리뷰]
입력 2015. 05.08. 14:57:30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폴 페이그는 배우로 활동하다가 연출자로 돌아선 조금 드문 케이스다. 주로 드라마를 연출하던 그는 2011년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으로 비로소 영화감독으로 인정받은 뒤 2년 후 ‘히트’로 코미디에 뛰어난 감각과 실력을 지닌 작가 겸 연출자로 우뚝 선다.

그의 범죄액션 코미디 분야의 감각은 오는 21일 개봉되는 영화 ‘스파이’에서 본격적으로 불을 뿜는다. ‘히트’가 재미있었다면 ‘스파이’는 ‘킹왕짱’이다.

주드 로의 섹시함을 기대하거나, 제이슨 스타뎀의 현란한 격투장면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비추’다. 크레딧의 전면을 장식한 두 사람의 이름에 현혹되면 낭패를 본다. 하지만 2시간 마음껏 웃겠다고 작정했다면 ‘강추’다.

현장에 투입된 요원들의 임무 수행을 돕는 CIA의 내근직 사원 수잔 쿠퍼(멜리사 매카시)는 뛰어난 외모에 임무 수행 능력마저 완벽한 최고의 현장 요원 브래들리 파인(주드 로)의 파트너다.

그녀는 특수장비를 이용해 무선으로 파인과 교신하며 그로 하여금 매끄럽게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가 하면 그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주기도 한다.

파인은 핵무기 밀거래를 추진하는 마피아 두목을 찾아내는데 성공한 뒤 핵무기의 은신처를 묻던 중 미처 알레르기 약을 먹지 못한 탓에 재채기를 하다 총을 발사하는 실수를 저질러 두목을 죽게 만든다.

이에 두목의 딸에게 접근하지만 그녀의 덫에 걸려 그만 사망한다. 이런 상황을 특수 카메라와 무선 수신기를 통해 생생하게 보고 들은 쿠퍼는 슬픔에 잠긴다. 평소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후 CIA 현장 요원들의 신분이 모두 노출되는 위기가 발생하고 부국장은 임무를 맡길 요원이 없음에 진퇴양난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쿠퍼가 현장투입을 자원한다. 교사로 사는 것보다 CIA에 들어가면 더 익사이팅한 삶을 살 줄 알았으나 박쥐가 난무하는 지하실 사무실에서 무선 수신기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일상이 따분했던 쿠퍼는 꼭 현장에 나가 파인의 복수를 통쾌하게 하고 싶다.

그런데 우연히 쿠퍼의 훈련 영상을 입수한 부국장은 깜짝 놀란다. 뚱뚱하고 촌스러우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쿠퍼가 의외로 명사수고 격투능력도 뛰어나 남자 서넛쯤은 우습게 때려눕히는 것이었다.

이에 부국장은 쿠퍼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지만 현장경험이 없는 쿠퍼를 우습게 아는 요원 릭 포드(제이슨 스타뎀)는 이에 반발해 CIA를 그만두겠다고 사무실을 뛰쳐나간 뒤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프랑스로 날아간 쿠퍼는 부국장의 ‘미행, 감시, 보고’만 하란 명령을 무시하고 마피아 딸에게 접근해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환심과 믿음을 사는데 성공해 보디가드 임무를 맡게 된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정보를 빼내 부국장에게 보고해 나가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섹시한 주드 로도, 과묵한 액션의 제이슨 스타뎀도 아닌, 외모적으로 봐줄 게 하나도 없는 멜리사 매카시다. 게다가 주드 로는 잘난 척하지만 약간 지질해 보이고, 제이슨 스타뎀은 ‘허당기’로 똘똘 뭉친 사고뭉치 허풍쟁이일 따름이다.

물론 멜리사 매카시의 역할 역시 빛나는 스파이 영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믿는 것은 우직한 성격과 체격에서 우러나오는 완력이 전부일 뿐 샤프하고 똑똑하며 전투능력이 뛰어난 일급요원과는 격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애초부터 드러내놓고 ‘영화는 재미있으면 그만’이란 철저한 상업적 철학에 근거해 펼쳐진다. ‘빵빵’ 터지는 촌철살인의 말장난은 없지만 상황적 대사가 포복절도를 유발하고 구닥다리 슬랩스틱 액션마저 촌스럽지 않고 설득력이 넘쳐 거부감 없는 웃음을 던져준다.

스파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초기 단계다. 그래서 스파이 영화의 주인공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주인공들처럼 하나같이 냉철하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전투능력이 최대치인데다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쿠퍼는 그런 것과는 애초부터 담을 쌓고 있다. 그건 감독이 원하는 코미디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설정이자 캐스팅이지만 이 영화는 그냥 가벼운 코미디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나름의 철학과 미학이 담겨 있다.

영화는 선과 악, 적과 우방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현실을 비틀고 있다. 더불어 외모지상주의의 편견에 대한 조롱마저 수시로 일삼는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헷갈리는 세상의 정서, 어느 게 옳은 일이고 그른 일인지의 복잡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에 대한 유머와 페미니즘마저 내포한 중무장으로 모처럼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라고 으쓱댄다. 우쭐해도 괜찮다. 그만큼 값어치가 충분하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마블의 언저리에 있는 관객이나, ‘차이나타운’의 피비린내와 빗속의 우중충함이 불편하다는 고민 많은 관객이라면 ‘딱’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멜리사 매카시를 보고 ‘뭐 저런 여자가 영화의 여주인공이야’라고 투덜대는 남자일지라도 극장 문을 나설 즈음 은근히 그녀가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자신이 뚱뚱하다고 다이어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여성이라면 관람 후 마음 놓고 삼겹살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의 취향은 다양하지만 대다수는 싼값에 2시간동안 모든 시름과 고민을 잊고 영화 속에 푹 빠져 즐기는 것을 원한다. 그리곤 관람 후 동반자와 함께 값싼 안주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별다른 이데올로기의 토론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화를 되새김질하며 하루를 마감하고자 한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사진=21세기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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