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에로와 멜로의 미로를 헤매는 잔혹정치극 [시네프리뷰]
입력 2015. 05.12. 10:17:56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민규동 감독은 ‘여고괴담2’ ‘무서운 이야기’ 등의 공포물이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오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의 멜로물로 대표된다.

특히 그는 멜로에서의 실력발휘가 두드러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은 평단의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바 있다. 그래서 그가 연산군으로 눈을 돌린 ‘간신’에 관계자들이나 관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작들에 비해 스케일이 꽤 커진 ‘간신’은 의외로 감독의 과한 욕심에서 비롯된 장황한 주제의식과 메시지들이 뒤엉키다보니 민규동 식 브랜드에 익숙한 관객들은 다소 혼란스러울 법하다.

민 감독은 미리 “이 영화가 에로틱 사극으로 마케팅이 펼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왕 간신 민초 등이 얽히고설킨 정치권력의 문제에 주목해줄 것을 언급한 바 있지만 오히려 그런 진지함이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영화를 이끄는 주요 인물은 조선시대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된 연산군(김강우)과 그에게 아첨하며 권력을 쥔 임사홍(천호진) 숭재(주지훈) 부자다. 연산군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숱하게 다뤄져온 인물이라 감독과 제작진은 숭재를 첫째 주인공으로 앞세우는 승부수를 띠웠다.

역사는 연산군이 ‘조’나 ‘종’의 묘호를 얻지 못한 채 ‘군’으로 기록된 배경의 첫 번째 책임자로 부족한 인성과 자질의 연산군에게 돌리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간신’은 그 공동책임자로 사홍-숭재 부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간신’과 ‘충신’의 이분법적 질문을 던지며 이 영화의 겉으로 드러난 엄청난 수위의 베드신과 노출의 부각을 자제하려 노력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굵은 키워드는 연산의 광기다. 이미 널리 알려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콤플렉스를 유흥과 색욕으로 해결하려는 연산의 곁에는 채홍사 사홍-숭재 부자가 있다. 그리고 사홍과 숭재는 전국의 그 어떤 여인일지라도 ‘패’ 하나로 잡아들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그 직위를 바탕으로 왕의 최측근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지만 그들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으니 희대의 요부 장녹수(차지연)다. 죽마고우로 같이 자란 친구이기도 한 숭재 앞에서 끓어오르는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인 연산의 앙팡가테를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진정제’는 녹수의 가슴이다.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연산은 녹수의 가슴을 물고 흥분을 가라않히고 차분해짐으로써 잠들 수 있다. 하지만 녹수는 늙어간다. 그리고 숭재가 데려오는 1만 명의 여자들은 젊고 아름답고 신선하다.

그래서 녹수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는 조선 최고의 기생 설중매(이유영)다. 기방에서 배우고 익힌 각종 방중술로 연산의 혼을 쏙 빼놓는 중매와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짓는 녹수를 이겨내기 위해 숭재는 백정 출신이지만 신비한 매력을 지닌 단희(임지연)를 조련시켜 맞대결을 펼친다.

만약 이 영화가 단순한 에로 사극이라면 완성도와 거기서 비롯된 재미는 1만 원이 아깝지 않다. 특히 후반부에 연산이 목숨을 내건 대결로 요구하는 단희와 중매의 동성애 신은 그 전까지 어색하게 펼쳐진 임지연과 이유영의 어설픈 연기를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끈적끈적하고 흥건하며 마른침을 유발한다. 수위 면에서 지금까지의 한국영화 중 단연 압권이고 그만큼 연출과 연기가 뛰어나다.

‘에로 사극’이란 기준 하에 바라볼 때 영화는 지나치게 잔혹하다. 칼과 화살이 피바람을 몰아오고 실질적으로 그랬을 폭정의 시대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한다. 자신의 왕권 강화와 그것을 오로지 원초적 욕망으로 활용한 폭군의 시대에 당연히 있었을 법한 민초들의 비극과 더불어 간신과 충신의 정체성 그리고 오로지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진땀나게 그려낸다.

하지만 사홍과 숭재의 갈등은 비현실적이어서 완성도의 균열을 유발한다. 영화의 중심축이 돼줘야 할 중견배우 천호진과 송영창의 연기가 의외로 평범한 수준이고 간신과 충신 사이를 방황하며 인간적인 고뇌까지 갖춘 복합적 인물 숭재를 연기하는 주지훈은 2% 이상 부족하다. 다만 치열한 정치세력 다툼에 지칠 대로 지친 데다 태생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연산의 광기를 표현해내는 김강우는 믿고 볼 만하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연산의 몰락 신을 소화하는 김강우의 연기는 지금까지의 열연 중 단연 최고다.

영화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다. 재미도 쏠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뉠 것이 자명하다. 그냥 감독의 전매특허대로 사랑에 관한 아름답고 서글픈 메시지를 앞세우든가, 아니면 에로틱한 소스로 그쪽 취향의 관객을 저격하든가 했다면 그걸로 미덕은 충분했다. 하지만 어설픈 정치풍자부터 충신과 간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들먹임으로써 객석의 의자가 그리 편하지 않게 만든 것은 지난 성공에 고무된 과욕이 빚은 패착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131분의 러닝타임은 확실히 길다. 21일 개봉.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사진='간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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