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 30년 기다림에 보답하는 액션미학의 절정[시네프리뷰]
입력 2015. 05.13. 12:44:48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호주의 조지 밀러는 1971년 멜버른 의대 재학 시절 영화 특강을 통해 한 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뒤 의사로 근무하지만 영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주체하지 못해 ‘알바’로 제작비를 충당하며 어렵사리 장편 상업영화 한 편을 만들어 1979년 내놓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본고장 미국부터 전 세계의 관객들을 열광시킨 뒤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되고 고작 21달러의 출연료로 시작한 멜 깁슨을 월드스타로 우뚝 세운다. 바로 ‘매드 맥스’다.

‘매드 맥스’ 마니아들은 3편에서 팝스타 티나 터너와 함께 희망이 없는 척박한 미래세계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던 멜 깁슨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 혈기왕성하던 멜 깁슨을 기대하는 것도, 가죽점퍼를 걸친 멜 깁슨을 상상하는 것도 비현실이다. 그런데 만 70살의 노장 조지 밀러는 신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예전보다 훨씬 젊어진 감각으로 절정의 연출솜씨를 뽐낸다. 지난 3편의 시리즈에서 맥스가 미쳤다면 이번엔 밀러가 제대로 미쳤다. 액션의 교과서, 최고의 진화한 액션, 진정한 액션의 끝을 밀러는 보여준다.

‘로렌조 오일’같은 따뜻한 휴먼드라마부터 ‘꼬마 돼지 베이브’나 ‘해피 피트’같은 따뜻한 동화를 연출한 감독이 그 나이에 이렇게 황홀한 실사 액션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경이다. 뉴질랜드의 피터 잭슨이 B급 호러로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듯 B급 액션으로 할리우드에 선전포고한 밀러는 ‘반지의 제왕’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블록버스터 감독이 된 피터 잭슨에게 보란 듯이 특A급 액션을 창조해냈다.

배경과 설정은 전작들과 비슷하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돼 물 식량 연료 등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이 부족한 22세기의 사막지대를 지배하는 지도자는 거짓과 위선 등의 혹세무민으로 정권을 쥔 독재자 임모탄(휴 키스-번)이다.

물과 기름을 독차지하고 있는 임모탄은 남자는 노예 혹은 전사로 부려먹고 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낳는 노동력 생산자 겸 모유 제공자로 써먹을 뿐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한다. 여기에 맥스(톰 하디)가 전사들의 피를 제공하는 수혈자 노예로 잡혀오고 여자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임모탄의 다섯 여자를 데리고 녹색의 땅을 향한 탈주극을 시작한다.

임모탄은 전 병력을 동원해 퓨리오사를 쫓고 그 과정에서 임모탄의 병사의 차 중의 한 곳에 묶여있던 맥스가 탈출에 성공한 뒤 퓨리오사 일행에 합류해 임모탄과 싸운다.

전작들이 악당에 가족을 희생당한 뒤 복수심에 불타는 맥스와 복수 후 희망이 사라진 미래세계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죽고 죽이는 카오스적 세계관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감독은 미래의 희망은 여자라고 웅변한다. 그래서 제목과 달리 이 영화의 중심에는 퓨리오사가 있고 그녀를 도와 임모탄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조력자로 아마조네스같은 퓨리오사의 동족 할머니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분노의 질주’나 ‘어벤져스’ 시리즈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특수제작된 150여대의 자동차들이다. 더불어 장대높이뛰기에서 영감을 얻었을 법한 달리는 자동차에 매달린 장대 위에서 벌이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고공액션이다.

퓨리오사는 왼팔꿈치 아래 절반을 잃어 여기에 의수를 달았고 눈에서 이마까지 오래된 엔진오일을 발라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풍기며 머리는 삭발에 가깝게 잘랐다. 아마도 감독은 퓨리오사의 한쪽 팔을 자른 설정으로 남자들이 파괴한 여성상을, 그리고 그 곳에 대신 매달린 의수로 여성들을 구하고 임모탄을 무찌르는 결과로 미래세계에서의 페미니즘의 완성을 그리는 듯하다.

스토리는 이렇게 간단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맥스가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서 폼을 잡는 인트로를 제외하면 스크린은 시종일관 눈을 못 떼게 만드는 ‘어마무시’한 액션이 숨 가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TV라는 게 있었지’라는 한 여자의 대사나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여성들에게 제시한 유토피아인 녹색의 세계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속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올 오어 나씽’이었다. 임모탄을 제거하고 모두 차지하든가, 아니면 장렬히 전사하든가.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이 핀다는 암묵적 메시지는 단순한 스토리와는 별개다.

그건 감독의 단순명쾌한 연출세계와 일맥상통한다. 군말 필요 없이 궁극의 액션으로 극대치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게 ‘장땡’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할리우드 메이저스튜디오에서 지원한 이 영화는 스튜디오의 ‘니즈’를 최대치로 만족시킨다.

퓨리오사 일행을 잡겠다고 나섰다가 그들의 편에 서는 녹스(니콜라스 홀트)는 감독의 종교관을 반영한다. 그는 임모탄이 주입한 종교에 세뇌돼 그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굳건한 신념에 따라 살지만 결국 여자들을 위해 죽는 게 진정한 명예라고 생각이 바뀐다.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촉발시킨 데니스 호퍼의 1969년 작품 ‘이지 라이더’에는 당시 반문화의 기수인 스테픈 울프,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등의 음악이 네 번째(잭 니콜슨, 데니스 호퍼, 피터 폰다의 뒤를 잇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고스트 라이더’는 미국의 서던록밴드 아우트로즈가 가장 히트시킨 컨트리록의 고전 ‘(Ghost) Riders In The Sky’를 주제곡으로 사용했고, 아예 그 곡이 수록된 아우트로즈의 네 번째 앨범 제목 ‘Ghost Riders’를 제목으로 썼다.

이렇듯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강렬한 헤비메틀 음악이 시종일관 강렬하게 관객의 귀를 때리고 특수차량 앞에 매달린 기타리스트는 마치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흔들거리며 광란의 연주를 표현한다. 일렉트릭 기타의 네크 끝에서 화염이 발사되는 게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그만큼 음악과 화면의 앙상블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만큼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예외다. 그건 ‘매드 맥스’가 공개된 1979년(한국개봉 1980년)으로부터 무려 30여년이 흘렀지만 영화의 그 기간의 엄청난 진화만큼 우리 살림이 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1만 원짜리 한 장이 주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체감 열기는 그야말로 용광로다. 15세 이상 관람, 14일 개봉.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사진=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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