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2’ 아성이 무너졌다
- 입력 2015. 05.15. 09:28:36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마블의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의 독주 속에 한국영화 중 ‘차이나타운’이 유일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 극장가의 판도가 흥미로운 구도를 형성할 조짐이다.
올 상반기는 유독 한국영화가 약세다. 그 와중에 ‘어벤져스2’가 지난달 23일 개봉된 이후 파죽지세로 1000만 관객 돌파를 향해 내달리며 외화강세의 흐름을 이어갔지만 ‘악의 연대기’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 맥스’)가 개봉된 14일 흥행판도가 확 바뀌었다.
21일 개봉되는 한국영화 ‘간신’의 수위 높은 베드신과 그 매력의 선두에 선 임지연의 티켓파워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같은 날 개봉되는 외화 ‘스파이’가 의외의 변수로 평가되는 가운데 27일 개봉되는 ‘무뢰한’ 역시 전도연 김남길의 지명도와 연기력에 더해 오승욱 감독의 뛰어난 연출세계와 작품이 주는 무게감까지 높게 평가되고 있어 박스오피스가 혼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관건은 ‘어벤져스2’에 맞서는 액션 ‘매드 맥스’와 외화 코미디 ‘스파이’의 외화대결이다. ‘어벤져스2’는 ‘매드 맥스’가 개봉된 14일 현저하게 관객이 줄었다. 물론 ‘악의 연대기’의 영향도 있긴 하지만 액션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어벤져스2’와 ‘매드 맥스’의 관계는 라이벌이 맞다.
‘매드 맥스’는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후 엄청난 호평을 얻고 있다. 보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하면 국내 언론은 일단 거부감부터 보이기 마련이지만 유독 ‘매드 맥스’에 대해선 찬사 일색이다. 그건 CG를 거의 배제한 실사 액션으로 만들어낸 화면의 스케일이 엄청나고 액션의 강도가 극대치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찍다 누가 죽었단 뉴스가 없었던 게 이상할 정도로 감독의 무모한 연출을 그대로 배우들이 몸으로 때워낸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마블 시리즈를 일일이 챙겨보는 마블 마니아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어벤져스2’에 비해 ‘매드 맥스’의 주제는 비교적 쉽다. 핵전쟁으로 문명과 자원이 사라진 디스토피아의 사막지대에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과 그들과 달리 제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용은 현실과 별 다를 바 없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무엇보다 압권은 2시간 내내 한눈팔 틈을 안 주고 휘몰아치는 자동차 액션이다. 사막을 쉴 새 없이 달리는 150여 대의 특수 제작된 차량과 그 차를 옮겨 다니거나 차에 매달린 배우들이 창조해낸 액션은 ‘모두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게 만든다. 하늘을 날고 레이저 광선을 쏘는 ‘어벤져스2’의 비현실적 액션이 ‘아동용 판타지의 세계’라면 ‘매드 맥스’의 갈색 모래먼지가 휘날리는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위의 아날로그 액션은 ‘어른용 세기말적 판타지’의 카오스다.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의 차이다.
여기에 ‘스파이’는 복병 중의 복병이다. 이 영화엔 ‘007 시리즈’의 두뇌게임이나 깔끔한 액션이 있는 것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세련미가 넘치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웃긴다. 그리고 그 웃음은 억지스러운 강요나 과장된 포장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자연스럽게 관객을 흡입한다.
‘어벤져스2’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트랜스포머’처럼 단순한 오락물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각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트라우마를 심어줌으로써 나름대로 슈퍼히어로도 고민이 있다는 철학을 담고자 한 진중함과 더불어 기존의 마블시리즈와의 연결고리 탓이다. 마블의 마니아들은 ‘깨알’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마블시리즈를 일일이 챙겨보지 않은 관객들은 불편하다.
하지만 ‘스파이’는 다르다. 깊은 사고와 통찰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화면이 흐르는 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나름의 풍자와 철학이 배경에 살짝 흐르긴 하지만 그건 생각할 필요도, 알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탄탄한 시나리오, 그리고 오로지 재미만 추구하는 연출의 궁합이 ‘찰떡’이기 때문이다.
‘3포세대’와 ‘최악의 전세난’으로 축약해 표현할 수 있는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 하에서 다수의 관객들은 당연히 1만 원에 아무 생각 없이 2시간동안 웃으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스파이’가 다크호스인 가장 강력한 이유다.
한국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대결이다.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긴 ‘차이나타운’이 ‘어벤져스2’의 현저한 관객감소현상과 달리 뒷심을 발휘 중이지만 ‘간신’에 ‘무뢰한’까지 더한 힘겨운 한판승부가 불가피하다. 특히 같은 누아르의 장르라는 점에서 ‘무뢰한’은 ‘차이나타운’의 롱런에 가장 큰 변수다.
‘무뢰한’은 이전에 ‘킬리만자로’ 딱 한 편을 연출한 오승욱 감독의 15년만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런데 오 감독은 충성도가 꽤 높은 마니아층을 거느린 누아르 전문 연출자다. 개봉 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이 작품은 거친 질감과 어두운 색감, 그리고 최대한 기교를 배제한 카메라 연출 편집 등에도 불구하고 세련미 넘치는 완성도로 찬사를 받고 있다. ‘차이나타운’이 언론시사회 후 ‘국내에서 보기 드문 탄탄한 여성 버디 누아르의 탄생’이란 평가를 받았던 것보다 더 뜨겁다.
‘무뢰한’ 공개 전까지만 해도 KBS2 드라마 ‘상어’에서의 어설픈 트라우마 연기가 작품의 심각함을 희석하고,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의 코믹연기 정도가 연기수준의 한계로 평가받았던 김남길과 ‘칸의 여왕’ 전도연과의 연기조합은 안 어울릴 것이란 예상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제 생애 최고의 작품’이란 시사 소감이 무리가 아닐 만큼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연기패턴으로 캐릭터에 녹아들어가 전도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남길이다.
전도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차이나타운’의 김혜수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차이나타운’엔 ‘남자’가 없고 김혜수와 김고은이 전방에 배치된 반면, ‘무뢰한’에는 전도연을 제외하면 전부 진한 짐승 냄새가 나는 남자들이란 점도 흥행의 변수다. 기존엔 작품선택의 키를 여자가 쥐고 있었기에 그런 점에선 ‘무뢰한’이 유리하지만 영화의 내용 자체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의 취향에 적격이기에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요즘 추세라면 여자들은 차라리 페미니즘이 앞서는 ‘차이나타운’이나 ‘매드 맥스’가 딱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사진=‘매드 맥스’ ‘무뢰한’ ‘스파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