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블루스를 되살리고 죽은 ‘킹’ 비 비 킹
- 입력 2015. 05.15. 17:02:23
-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루씰 풀밭같은 너의 소리는/ 때론 아픔으로 때론 평화의 강으로/ 그의 마음속에 숨은 정열들을 깨워주는 아침/ 알고 있나 루씰 그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네/ 루씰 꿈속같은 너의 노래는/ 때론 땅 위에서 때론 하늘 저 끝에서/ 그의 영혼 속에 가리워진 빛을 찾게 하는 믿음/ 알 있나 루씰 그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네/ 루씰 수줍은 듯 너의 모습은/ 때론 토라지듯 때론 다소곳하여/ 그의 차가운 손짓에도 온몸을 떠는 바다 속의 고요/ 알고 있나 루씰 나도 너처럼 소리를 갖고 싶어’
그 킹이 90살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14일(현지 시각) AP통신은 킹의 전담 변호사였던 브렌트 브라이슨을 통해 “이날 밤 9시40분쯤 킹이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자택에서 잠자던 중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 10년 전부터 제2형 당뇨병을 앓았던 킹은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해왔고 최근에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1925년 미국 미시시피 주 인디애놀라에서 태어난 라일리 킹은 1946년 멤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하던 중 ‘블루스 보이(Blues Boy)’라는 뜻의 ‘비 비’라는 별명을 얻은 뒤 1949년 가스펠에 영향을 받은 블루스 싱글 ‘미스 마서 킹(Miss Martha King)’을 발표하고 가수로 데뷔했다.
1952년 싱글 ‘쓰리 어클락 블루스(Three O'Clock Blues)’를 빌보드 리듬앤블루스 차트 1위에 올린 뒤 ‘유 업셋 미 베이비(You Upset Me Baby)’로 1954년 1위에 올랐으며 이듬해 ‘스윗 식스틴(Sweet Sixteen)’으로 2위를 차지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나갔다.
‘록 미 베이비(Rock Me Baby)’(1964년 싱글차트 34위), ‘더 스릴 이즈 곤(The Thrill Is Gone)’(1969년 15위) 등의 히트로 백인들마저 열광시키면서 미국 주류 음악계에서 인정받은 그는 네 가지 측면에서 블루스계의 ‘킹’으로 인정받는다.
첫째 19세기 아프리카 원주민의 북아메리카 대륙으로의 강제이주(사실상 사냥)로 생긴 흑인노예제도 아래 탄생한 블루스 음악과 이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여기에 유럽식 악기편성을 도입해 리듬앤블루스를 만들어낸 백인과 흑인의 컬래버레이션은 재즈로 변주되고 로큰롤로 발전하며 대중음악계의 눈부신 발전을 주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통블루스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블루스의 주인인 흑인조차도 노예해방 이후 자본주의에 젖어들며 돈이 되는 음악만 연주하려는 경향으로 변해가며 백인의 입맛에 길들여져 갔기 때문이다.
그런 1960년대에 비 비 킹이 정통 블루스를 부활시킨 것이다. 물론 일렉트릭 기타가 대중화된 마당에 초기 블루스로의 회귀는 불가능했지만 최소한의 정통성은 되찾아왔다.
둘째 그는 깁슨의 대명사로 활약했고 지금도 남아있으며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세계적인 일렉트릭 기타 메이커는 깁슨과 펜더가 양분한다. 깁슨의 역사가 펜더보다 조금 앞서긴 했지만 록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하위 장르의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하드록과 헤비메틀이 주류가 되면서 범용성에서 깁슨에 앞서는 펜더가 스트라토캐스터와 텔레캐스터로 시장을 주도해갔다.
하지만 전통과 소리의 묵직함에 있어선 펜더가 깁슨을 따라잡기 힘들다. 저 유명한 영국의 하드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가 깁슨의 대표주자인 레스 폴(바디의 네크 쪽 양분된 머리 부분 중 아래 쪽만 파인 스타일)을 고집했다면 킹은 루씰로 유명한 커스텀(양 쪽이 파인 것)으로 유명하다.
셋째 더불어 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과 특유의 비브라토 밴딩 초킹 트릴 그리고 절묘한 강약조절의 연주법이 후배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에릭 클랩튼,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기타리스트 마크 노플로 등이 그 주인공이다.
넷째 진정한 블루스계의 왕이다. 블루스계엔 비 비 킹과 더불어 이른바 쓰리 킹이 존재했으니 앨버트 킹과 프레디 킹이 그들이다. 특히 앨버트 킹은 깁슨의 플라잉 모델을 왼손으로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왼손연주 흑인 기타리스트로는 후에 록의 3대 기타리스트에 오른 지미 헨드릭스가 있고, 깁슨 플라잉을 전매특허로 연주한 로커는 랜디 로즈, 잭 와일드, 마이클 쉥커, 레니 크라비츠, 로건 메이더 등이 있다.
세 명의 기타 실력과 음악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최소한 인기와 후대에 대한 영향력에선 단연 비 비가 ‘킹’이었다.
또 한 명의 블루스계의 ‘킹’ 벤 E. 킹은 공교롭게도 지난달 말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 한국에선 ‘알앤비’라고 해서 ‘소몰이 창법’이란 우회적 창법으로 블루스의 본질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는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생긴 흑인음악(소울)의 백인화와 더불어 조 카커와 마이클 볼튼이 주도한 블루아이드소울의 혼합으로 인해 생겨난 크로스오버 현상 속에서 지나치게 한국적인 블루스 음악으로 나아감으로써 본질과 멀어진 탓이다.
크로스오버와 퓨전이 일상화된 요즘 대중음악계에서 ‘블루스의 기본은 세 마디의 블루노트 음계가 콜 앤 리스펀스, 그리고 결론의 3단계로 이뤄진다’는 교과서적 형식을 고집할 순 없지만 최소한 비 비 킹이 주도한 가스펠을 기초로 한 정통 리듬앤블루스는 듣고 ‘알앤비’를 하겠다고 나서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