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복면가왕’ 이어 ‘복면검사’ 나오는 이유
- 입력 2015. 05.19. 10:09:49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오는 20일부터 KBS2 새 수목드라마 ‘복면검사’(최진원 극본, 전산 김용수 연출)가 방송된다. 현재 MBC 가요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이 절찬리에 방송 중이어서 안방극장에서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복면이 종횡무진 활약할 예정이다.
‘복면검사’가 기존의 ‘복면가왕’의 아성에 도전하는 모양새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요소가 다분하다. ‘복면검사’의 방송시점을 놓고 지난 설 특집방송에서 파일럿으로 방송됐다 정규편성을 따낸 ‘복면가왕’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가운데 갑자기 안방극장에 복면이 넘실대는 데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고 있다.
하대철(주상욱)은 남들이 보기엔 능청맞고 유들유들한 성격의 전형적인 출세지향적 검사지만 복면을 썼을 땐 이성보다 주먹이 앞서는 캐릭터로 양면성을 그려내며 사회의 치부 혹은 환부를 통렬하게 풍자할 예정이다.
또한 전 PD는 정작 이 드라마가 기획된 게 2년 전이라고 소개하며 차라리 차태현 주연의 영화 ‘복면달호’의 영향이 약간 있었음을 암시했다. 그리고 사실 결정적인 모티브는 최진원 작가가 지난 2000년 개봉된 영화 ‘반칙왕’에서 얻었다고 고백했다.
왜 복면일까?
‘반칙왕’은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 임대호(송강호)가 주인공이다. 그는 밥 먹듯 지각하는가 하면 형편없는 실적으로 매일 부지점장(송영창)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특히 부지점장은 어엿한 30대인 그의 자존심 따윈 배려하지도 않고 시시때때로 헤드락으로 고문을 한다.
그런 대호가 어느 날 우연히 찾아간 체육관에서 반칙왕 레슬러 울트라 타이거마스크의 사진을 보고 자극받아 장 관장(장항선)에게 레슬링을 배워 프로 무대에 오른다. 트레이닝은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모질고 고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가슴 속 깊이 감춰 뒀던 강한 에너지와 열정을 느끼게 되고 그걸 링 위에서 불태우며 새로운 삶의 목적 혹은 생동감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링 위에서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왕”이라고.
대호는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을 그래도 반복해야 하는 이 시대 한국의 샐러리맨들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일 수 있다. 부지점장의 헤드락은 권력과 자본의 횡포고 그걸 풀 수 있는 양극의 방법을 알면서도 괴로운 척하거나 혹은 진짜 괴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게 서민들의 현실이다.
그리고 대호의 가면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의도된 억눌림과 반대되는 자아의 표출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이 가면을 쓴 채 정체성의 혼란에 괴로워하는 것과 양상은 같지만 그 내용은 정반대다.
그리고 여기서 얘기하는 ‘반칙’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법과 질서와 도덕을 덕목으로 하는 사회지만 정작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반칙을 저질러야만 한다. 그 반칙은 헤드락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헤드락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다.
‘복면가왕’의 미덕은 사회적 편견에 대한 통렬한 ‘한방’이고 그것은 반전이란 즐거움을 시청자들에게 선물로 내준다. 한국사람이 한국말 중 가장 많이 틀리는 말이 ‘너무’와 ‘틀리다’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점에 대해 ‘틀리다’고 감히 말한다. 눈이 한 개거나 팔이 한 개 없으면 쳐다본다. 출퇴근이 한창인 시각 즈음에 말끔한 정장을 안 입어도 흘끔흘끔 쳐다본다. 적어도 그들의 눈엔 그 사람들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해도 너무한다.
‘복면가왕’은 그래서 재미있다. 홍석천이 설마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리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지레짐작 혹은 무시는 편견이 근원이다. ‘위 아래’를 외치던 섹시한 이미지의 걸그룹 멤버가 1등을 하는 반전에 놀라는 것은 대중이 걸그룹을 어떤 내용으로 소비하고자 하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답이다.
‘복면검사’는 그런 맥락에서 뜻있는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높이는 드라마다. 최근 30년 만에 리메이크돼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원작인 ‘매드 맥스’ 1편을 보면 평범한 경찰이었던 맥스는 악당들에게 아내와 자식을 잃은 뒤 ‘미친 맥스’가 돼 법이 아닌, 자신의 광기로 그들을 심판한다. 이건 할리우드 영화에서 적지 않게 나오는 ‘진정한’ 복수의 화법이다.
최근 1~2억 원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치인들 대부분이 집행유예 형을 선고 받는가 하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례도 매우 드물어 같은 액수라도 직무관련성, 대가성 등을 따지는 뇌물이나 알선수재 혐의에 비해 아주 가벼운 처벌을 받는 셈이라며 여론이 들끓고 있다. ‘복면검사’는 평소엔 그럴 수밖에 없고 현실에선 그래야만 하는 출세지향적 검사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복면을 쓰면 매드 맥스가 된다. 그건 어쩌면 법의 판결에 불만을 품을 법한 서민들이 최종적으로 바라는 진정한 ‘심판’인지도 모른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오래 전 유행된 바 있다. 지금은 그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주먹을 앞지른 법은 매번 전 국민에게 만족스러운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1년이 넘은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사회의 핫이슈고, 배용준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인터넷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죽은 유병언과 정부의 유착이 거론되는 게 그 증거다.
그래서 ‘복면검사’에 대한 일각의 기대 속엔 진짜 이 사회에서 정의를 세워야 하는 마지막 보루인 검사를 향한 전 국민적 염원과 현실적이되 추상같은 법의 잣대를 원하는 갈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아님 방송되는 2달여 간 그냥 대리만족이라도 하든가.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