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가면’과 수애의 내홍이 끼칠 영향
- 입력 2015. 05.19. 12:17:57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27일 첫 방송을 앞둔 SBS 새 수목드라마 ‘가면’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내홍을 겪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수애가 퍼블리시티권을 근거로 다른 출연자 홍보와 관련해 자신의 이름을 허락 없이 인용하지 말라고 제작진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수의 매체를 통해 이 보도가 다소 과장됐다고 수정의 의견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배우가 드라마 제작진에게 ‘퍼블리시티(publicity)권’을 주장한 첫 사례라는 해석이 가능해 향후 추세에 관심이 간다.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의 초상 성명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권리로 수애는 2013년 이를 침해했다며 한 치과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긴 바 있다.
배우 김선아도 부산의 한 성형외과가 홍보용 블로그에 그녀의 사진과 서명을 게재한 것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손해배상 소송을 내 재판부로부터 “유명인이 획득한 명성, 사회적 평가, 지명도 등에서 생기는 경제적 이익 또는 가치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해당 성형외과는 김선아에게 1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걸그룹 애프터스쿨 멤버 유이는 자신의 사진을 광고용으로 쓴 한 한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해당 한의원은 블로그를 개설해 “00한의원과 부분 비만 프로젝트 후 멋진 유이의 꿀벅지로 거듭나세요”라는 제목으로 유이의 사진 4장을 올렸고 유이는 한의원이 허락 없이 자신의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도 있다.
이렇듯 최근 연예스타나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들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법원 판결은 제각각이다. 심지어 한 지법 내에서도 판결이 엇갈려 국정감사에서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일관성 있는 판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대법원이 해외사례 연구에 착수한 상황이다. 국내 현행 법규상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수애의 퍼블리시티권리에 대한 주장은 법에 호소한 게 아니라 제작사를 향한 협조요청 차원이긴 하지만 이는 해외사례에 비춰 향후 드라마 영화 등 연예인을 둘러싼 모든 콘텐츠에 적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연예계는 이른바 한류열풍의 연장선상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내달리고 있지만 국지적인 영역은 선진국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데 각종 계약서가 특히 그렇다. 미국이나 일본 등과는 달리 수시로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전속계약 분쟁이 발생하는 게 전형적인 예다. 그리고 앞으론 이 퍼블리시티권 분쟁이 그 뒤를 이을 모양새다.
할리우드의 경우 톱스타의 계약서는 책 한 권 분량이다. 우리나라의 A4 용지 10장 안팎으로 그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 계약서 안에는 촬영기간은 당연하고 촬영시간부터 숙소의 등급, 음료수의 정확한 종류까지 기재돼 있기 마련이다.
홍보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가야할 지역, 만나야 할 매체, 홍보기간, 인터뷰의 수위 등이 상세하게 적시돼 있다. 수애의 경우처럼 홍보와 관련된 퍼블리시티권의 보호 역시 당연하다.
수애의 소속사 스타제이 측은 이와 관련된 한 매체의 취재에 “제작진과 소통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제작사 측에 드라마 홍보 보도자료와 관련해 사전에 협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일 뿐”이라고 한 발짝 물러선 해명을 하긴 했지만 그건 여론을 의식한 제스처로 보일 뿐 그녀의 퍼블리시티권 관련 소송에 기준할 때 그녀가 이 권리에 강력한 주권을 행사할 집착을 갖고 있는 것은 쉽사리 짐작이 간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전례에 비춰 다른 유명스타들도 향후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뀜으로 인해 이와 관련된 권리주장과 소송 등이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이번 해프닝을 바라보는 누리꾼의 시각이 본질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각양각색의 반응은 ‘가면’이 시작 전부터 내부의 균열로 삐걱대는 모습에 근거할 때 드라마를 실은 배가 바다가 아닌 산으로 갈 것을 전망하는 결론으로 응집되는 모양새다.
요즘 드라마의 수준이나 사이즈로 볼 때 예전에 KBS와 MBC의 양대산맥 시절 방송사 스튜디오 안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가내수공업 차원이 아닌, 영화와 다름없는 시스템과 제작비, 그리고 연인원이 투입되는 제작방식 아래서 방송도 하기 전에 여주인공과 제작사가 동상이몽을 꾼다는 사실이 대중의 눈엔 곱지 않게 비치는 것이다.
다 채널에 다 플랫폼인 요즘 방송가의 시장현황에 비춰볼 때 홍보마케팅, 그것도 사전홍보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스포츠로 치면 선제공격이고 전쟁으로 치면 선전포고다. 그런데 제작발표도 하기 전 여주인공이 제작사의 홍보방식에 제동을 걸고 있다. 기존에 홍보를 위해서라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망가지고 자신의 민감한 내용이 거론되는 것도 불사하던 주연배우의 홍보스타일과는 사뭇 다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홍보차 영국 언론과 인터뷰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의 치부를 묻는 질문자의 무례함에 발끈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영화 주인공들은 홍보를 위해 세계 각국을 누비고 있고 여성비하 논란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다 홍보를 위한 희생정신이다.
그러나 제작사와 수애의 엇박자는 대중의 눈에 불쾌하게 비칠 따름이다. 홍보를 위해서라면 자사 작품의 여주인공의 퍼블리시티권마저도 마음대로 휘두를 태세인 제작사나, 자신이 주인공인 작품에 대한 배려나 희생 없이 오로지 퍼블리시티권만 지키겠다는 여배우나 모양새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스타의 퍼블리시티권은 지켜져야 하는 게 백번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그의 활동영역을 벗어나 오로지 상업적 목적으로만 이용될 때 적용할 일이지, 그의 작품과 관련된 연예활동이라면 탄력적인 적용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한때 가요계엔 신인가수의 데뷔 초 홍보방식으로 ‘유명가수 000가 인정한 신인’이란 보도자료가 유행한 적이 있다. 물론 신인가수의 매니저는 그 유명가수가 자사 소속일지자로 미리 양해를 구하고 그런 홍보방식을 펼쳤다.
이번 수애와 ‘가면’ 제작사의 동상이몽 해프닝은 사전에 협의가 없었던 게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제작사와 배우의 개념이 애초부터 달랐던 게 불협화음으로 불거진 것으로 풀이된다. 수애가 먼저 퍼블리시티권의 보호를 외치고 나선 것은 제작사가 그런 홍보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은 자명하고, 만약 제작사가 진짜 애초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주연여배우를 캐스팅할 때 계약서 안에 그 부분에 대한 확실한 명기(明記)를 했어야 했다.
이 드라마 소개란엔 ‘실제 자신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다’고 적혀있다. 배우란 자신의 본질을 철저하게 가린 채 대본(시나리오) 속 캐릭터로 완벽하게 가면을 쓰는 직업이다. 제작사는 속이 쓰려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당신이 최고’라고 치켜세우며 톱스타를 캐스팅하고자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게 투자와 편성과 흥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