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매드 맥스’ 역전의 흥행돌풍엔 이유가 있다
입력 2015. 05.20. 13:14:17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국내 박스오피스가 요동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 장악했던 국내 극장가는 지난주 한국의 복병 ‘악의 연대기’와 할리우드의 메이저스튜디오가 만든 대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 맥스’)가 개봉되면서 나란히 1, 2위를 나눠가지며 ‘어벤져스’의 흥행에 제동을 건 뒤 새로운 성적표를 쓰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악의 연대기’가 앞서나갔으나 18일 ‘매드 맥스’가 역전한 뒤 향후 파죽지세로 1위를 내달릴 태세다. 여기에 오는 21일 한국영화 ‘간신’과 할리우드의 복병 ‘스파이’가 개봉돼 흥행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당분간 ‘매드 맥스’의 돌풍은 계속될 예상은 쉽다. 개봉 직후 ‘악의 연대기’에 근소한 차이로 밀리긴 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오히려 계속 관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매드 맥스’는 지난 19일 전국 772개 스크린에서 9만2004명을 동원함으로써 누적 관객 99만1805명을 기록했다. 20일 100만 관객을 돌파한다.

18일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간 ‘악의 연대기’는 731개 스크린에서 8만2911명을 동원해 누적 103만5051명을 기록했다. 이 주 스크린 점거 싸움이 볼 만하다.

영화는 드라마랑 비슷한 모양새의 대중문화 콘텐츠지만 일부러 차량 등으로 이동해 돈을 주고 표를 산 뒤 기다림을 통해 관람한다는 점에서 그 수요의 동기가 약간 다르다. 게다가 영화는 드라마보다 사회상이 더욱 많이 반영된다.

수년째 대한민국 사회는 경제난이 화두고 1990년대 중후반의 IMF시대보다 더욱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무척 현실적인 평가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고 그래서 여가에 쓰는 돈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1만 원으로 2시간 이상을 즐길 수 있는 영화는 가장 실속 있는 휴식 겸 놀이문화다.

적지 않은 영화는 메시지나 철학을 담아 단순한 여흥이 아닌, 지적인 유희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대중은 영화를 드라마와 좀 다르게 여긴다.

‘어벤져스2’는 확실히 재미있는 영화이긴 하다. 슈퍼히어로들이 하나도 아니고 다수가 등장하고 범우주적인 스케일로 전개되는 판타지의 세계와 첨단 CG의 미학은 눈이 부실 정도라 손바닥의 땀을 크게 유발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같은 단순하거나 억지스러운 블록버스터의 맹점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여실히 보인다. 각 히어로들은 나름의 고뇌와 트라우마가 있고 한편이지만 갈등도 한다. 그렇지만 그 심오한 철학과 마블시리즈 전편을 아울러 이어가는 매듭이 마블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어 그게 적잖은 관객의 몰입과 이해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아주 극명하게 갈린다. 단 하나의 디테일과 미장센에도 마블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해서 열광하는 마블 열성팬에 비해 마블 시리즈를 통달하지 않은 단순한 관객은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라고 불편함을 토로한다.

그에 비해 ‘매드 맥스’는 단순하다. 이미 30년 전에 3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졌음에도 그 3편을 안 본 관객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사실 어떤 관점에선 이 영화의 비주얼은 옵티머스같은 아이언맨이나 X맨을 능가하는 헐크가 나오는 ‘어벤져스2’보다 더 피곤함을 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괴기하고 흉측한 분장이거나 기형적 외모를 지녔다. 핵전쟁으로 살아남은 사람을 제외하곤 동식물이라곤 인트로의 머리가 둘인 도마뱀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스토리도 복잡할 게 없다. 그냥 권선징악이다. 하지만 내용은 충분히 곱씹고 자세하게 뜯어봐 관찰할 만한 무게감과 주제의식이 풍부하다.

핵전쟁으로 모든 문명과 문화가 사라지고 오직 물과 기름이 자원이며 과학이라곤 자동차와 총이 전부인 이 폐허의 사막을 임모탄(휴 키스-번)이란 사이비 교주같은 독재자가 지배하고 그 밑에서 사령관으로 일하던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임모탄의 여자들을 빼돌려 탈주하던 중 맥스(톰 하디)와 합류한다.

그들은 유토피아인 녹색의 땅을 찾아가지만 그곳마저 폐허가 됐다는 사실에 낙담하다가 생존을 위해 임모탄과 정면대결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이런 단순한 스토리 안엔 독재자와 종교에 대한 조롱과 조소가 담겨져 있으며,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은근히 요구한다. 더구나 ‘세상을 움직이고 구하는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란 페미니즘까지 담고 있어 초고강도의 아날로그 액션이 여자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게 작용한다.

퓨리오사의 잘려나간 반쪽 팔과 거대한 모래폭풍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장면이 CG 없이 사실의 액션으로 촬영된 이 영화의 ‘무식한 뚝심’에 한 번 놀라고, 주인공들을 뛰어넘는 액션을 펼쳐내는 자동차들의 위용과 질주에 다시 한 번 경악하며, 이 모든 것을 지시한 감독과 그에 따라 몸으로 때워낸 배우(와 스턴트맨)에게 경이와 존경심이 느껴질 법한 영화다.

이 영화는 개봉 전 가진 언론시사회 결과 전 언론의 격한 호평을 이끌어 냈지만 개봉성적에서 ‘악의 연대기’에 밀렸다. 하지만 영화는 ‘입소문’이 언론과 평단의 평가보다 흥행의 열쇠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개봉 후 점점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결국 일주일도 안 돼 ‘악의 연대기’를 앞질렀다.

게다가 관객들은 이 영화의 장대한 스펙터클을 다양한 스크린으로 감상하기 위해 일반관은 기본이고 아이맥스 3D, 돌비 애트모스, 4DX, Super 4D 등의 프리미엄 상영관을 한 번 이상 다시 찾으며 재관람의 마니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마치 호러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로키 호러 픽처 쇼’처럼.

이는 ‘어벤져스2’의 관객 중 상당수가 불평을 늘어놓는 현상과 정반대의 모양이다. 인터넷과 SNS 등에는 관람객의 혀를 내두르는 칭찬 일색이다.

그건 유명 개그맨 장동민이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여성비하와 혐오 발언으로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보듯 아직도 남자 ‘어른’들의 정서에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의 의식의 잔재가 남아있으며 첨단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지만 미래가 암울해 ‘매드 맥스’ 속 디스토피아의 현실감이 오버랩되는 가운데 그렇게나마 절망같은 희망을 찾고 싶은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왜냐면 ‘매드 맥스’의 주인공 맥스나 그 이상으로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퓨리오사가 미친 게 아니라 바로 세상이 미쳤기 때문이고 그건 현재와 별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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