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복면검사’, 복면 히어로가 필요한 ‘웃픈’ 세상
입력 2015. 05.21. 10:42:53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20일 첫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복면검사’가 6.8%의 시청률로 SBS ‘냄새를 보는 소녀’(9.6%)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MBC ‘맨도롱 또똣’은 6.6%의 시청률로 근소한 차이로 3위로 처졌다.

‘복면검사’의 순조로운 출발은 마지막 회 12.0%로 유종의 미를 거둔 전작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흐름을 이어받았다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요즘 시청자들의 냉정한 안목을 고려할 때 꼭 그런 것만은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1일 대다수의 언론이 호평을 내놓는 게 그 증거다.

남녀 주인공이 주상욱과 김선아다. 김선아는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영화 ‘잠복근무’로 최고의 ‘로코퀸’ 자리에 앉았지만 그 이후로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하다. 물론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연기력과 특유의 귀여운 매력은 아직 살아있지만 그동안 수많은 후배들이 ‘로코퀸’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주상욱 역시 믿고 보는 배우이긴 하지만 티켓파워가 최정상은 아니다. 다만 지난해 ‘앙큼한 돌싱녀’와 ‘미녀의 탄생’에 연달아 출연한 결과가 좋다. 지나치게 튀지 않고 딱 제 역할에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연기력과 매력을 표출하는 수위조절 능력이 뛰어난 게 미덕이고 그래서 그에겐 안티세력이 별로 없는 게 강점이다.

이렇게 약간 부족하지만 ‘복면검사’는 대체로 호평이다.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선 다양한 장치가 필요하지만 시청률이 반드시 호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표현이 일반화됐듯 임성한 작가로 대표되는 막장드라마는 시청자의 분노조절장애증을 유발하지만 시청률은 높다.

첫 회만 놓고 절대평가를 할 순 없지만 ‘복면검사’는 일단 향후 전망이 긍정적이다. 시청률도 괜찮고 내용에 시청자들이 꽤 만족하며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공부와 담쌓고 사는 고아 정대철(주상욱)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아버지라고 하는 정도성(박영규)이 밉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그것부터 물어야죠. 행복했어? 그동안 나 없이 행복했냐고”라고 울부짖으며 그간의 설움을 토해낸다. 도성은 대철에게 “악인 중호(이기영)가 네 엄마 지숙(정애리)을 빼앗고 내 과학자로서의 업적을 가로채간 것도 모자라 나에게 간첩의 누명을 씌운 탓에 그동안 도주생활을 하다 간신히 돈을 벌어 이제 네 앞에 나타났다”며 “검사가 돼 그들에게 복수하라”고 부탁한다.

또한 첫사랑 유민희(김선아)는 “검사가 되면 너랑 사귀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옵션을 건다. 대철이 검사가 돼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충분했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부터 복면검사가 될 조짐을 보였다. 법의 힘으로 모든 악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정의의 이면을 그는 미리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낮의 남부지검 검사로서의 대철은 능청스럽거나 비굴하거나 야비하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 달리는 전형적인 속물 검사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달라진다. 복면을 쓰고는 법으로 처단할 수 없는 악을 폭력으로 응징한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검사는 다소 과장되게 표현된다. 범죄현장에 총을 들고 나타나 멋진 액션으로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그려지지만 사실과 다르다. ‘복면검사’의 대철은 그보다 더욱 허무맹랑하다. 그런데 이 과장을 넘은 만화적 상상력이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고 그 배경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복면 코스튬 플레이’는 이미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물에서 숱하게 다뤄졌다. 슈퍼맨은 평소 쫄쫄이 의상을 벗고 안경 하나 걸치고 클라크로 변신했을 뿐인데 동료 기자 로이스는 그가 슈퍼맨인지 모른다. 어쨌든 변장을 한다. 그후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기 시작하고 그게 ‘왓치맨’과 ‘킥 애스’로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이 슈퍼히어로들은 저마다 과거의 상처, 혹은 그 트라우마로 인한 현재의 고뇌, 더불어 이중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괴로워한다. 특히 ‘배트맨’의 고담 시 최고의 부자인 브루스 웨인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는 매우 심오하다.

어찌 보면 ‘복면검사’는 ‘스파이더맨’에 더 가깝다. 샘 레이미 감독이 그린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가난하고 잘 생기지 않았으며 똑똑한 것도 용기 있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삼촌 댁에 얹혀살며 피자배달로 학비와 용돈을 보태는 전형적인 밑바닥 서민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유전자가 변형된 거미에 물린 뒤로 스파이더맨이 되지만 가면을 안 썼을 땐 여전히 피자배달을 해야 하고 짝사랑하는 매리 제인 왓슨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못하는 ‘찌질소심남’이다.

대철이 그렇다. 피터 파커가 부모의 죽음 뒤에 감춰진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듯, 대철이 검사가 되고 또 검사로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악인을 처벌하지 못할 땐 복면의 히어로가 돼 무력으로 심판해야 하는 이유의 출발점 역시 아버지의 친구와 엄마의 배신이었다.

또한 피터가 매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파이더맨으로 활약하듯 대철 역시 민희의 사랑을 얻고자 검사로서 출세하려 한다.

‘복면검사’의 이 비현실적인, 원조인 할리우드가 코웃음 칠 설정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현실의 반영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나 고 성완종의 자살 등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의 수사나 재판결과가 국민을 분노케 하고 치솟는 전셋값이 많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도 부익부빈익빈은 더욱 심화되는 사회상에 시달린 서민들의 소심한 카타르시스다.

‘다크 나이트’라고 하면 다수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유작으로 남긴 히스 레저가 미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해 엄청난 존재감으로 승화시킨 광기의 조커를 떠올리지만 사실 크리스토퍼 놀란 삼독은 고담시 지방검사 하비 덴트와 그의 또 다른 존재 투페이스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배트맨은 분명 악을 처단하는 ‘기사’지만 그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 있을 뿐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피해자(각종 기물파손 포함)가 생기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마치 ‘핸콕’이 슈퍼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체포하라는 시민들의 빗발치는 원성을 들어야했던 것처럼.

그러나 하비 덴트는 법의 수호자이므로 법을 지키면서 범죄자를 잡아들임으로써 백기사란 별명을 얻고 하비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배트맨에 대한 반감 역시 커져간다.

하지만 하비는 사랑하는 연인 레이첼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의 얼굴의 반쪽이 없어진 사건 뒤 달라진다. 그는 복수심과 더불어 배트맨과는 차원이 다른 가혹한 폭력성만 불태울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복면검사’는 ‘다크 나이트’와도 맞닿아 있다.

‘왓치맨’에서 슈퍼히어로들은 전 동료 오지맨디아스의 어긋난 평화관을 막으려 힘을 모은다. 슈퍼히어로 중 가장 부유한 오지맨디아스는 엄청난 폭파장치로 도시 하나를 날리려고 한다. 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전쟁의 중심이 될 양대 강국이 화합할 명분을 만들어 80억 명을 구하기 위해 수천 명을 죽이겠다는 논리다.

이에 정의감에 불타면서 타협과는 거리가 먼 로어셰크는 오지맨디아스의 음모를 막으려 하고 힘에 부치자 신적인 능력을 지닌 초 슈퍼히어로 닥터 맨해튼에게 오지맨디아스의 저지를 부탁하지만 닥터 맨해튼은 ‘나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만큼은 바꿀 수 없다’며 오지맨디아스의 평화이론에 동조한 채 오지맨디아스의 음로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로어셰크를 죽인다.

사람들은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 명분과 실리 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의 논리를 비교적 쉽게 여기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그런 복잡하고 지난하며 다단한 세상살이 속에서 극과 극의 두 가지 캐릭터를 동시에 보유한 채 낮과 밤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는 복면검사 대철이 박수갈채를 받는 이유는 어쩌면 이 황당한 설정이 서민들의 바람을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잘 대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KBS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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