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랜드’, '매드 맥스'와 '엘리시움'의 중간계[시네프리뷰]
입력 2015. 05.26. 08:51:08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꿈은 미래다’. 긴 말 필요 없다. 디즈니 스튜디오가 돈을 댄 SF어드벤처 ‘투모로우랜드’의 주제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 주인공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꿈을 꾸는 자들이 힘을 합해 미래를 건설하자’고.

또 한 가지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의 등급은 ‘12세 이상 관람가’라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어린이들의 얘기를 펼쳐가지만 어린이들이 보기엔 좀 어렵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이 어른과 함께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는 할리우드의 메이저스튜디오 중에서 동심의 세계, 동화의 나라를 가장 잘 그려내는 디즈니답게 희망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폐허로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황무지 위에서 내일이 없는 생존자들이 희망을 찾겠다고 생존의 전쟁을 벌이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지녔다면 ‘투모로우랜드’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평행이론 속에 과거의 붕괴와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그리는 듯하면서도 미래는 먼 게 아니라 과거나 현재와 차원만 다를 뿐 공존한다고 웅변한다. 이는 전술한 ‘꿈이 환상이 아닌, 미래’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그건 ‘백설공주’나 ‘겨울왕국’으로 대표되는 디즈니 스튜디오와 더불어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로 거푸 오스카 상을 거머쥔 브래드 버드 감독의 아이디어와 상상력 그리고 취향이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나사는 그들이 만든 우주선 발사대를 철수시키려 하고 그렇게 되면 엄마 없이 자신과 남동생을 키우고 있는 아빠의 실직으로 이어지기에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던 현명하고 용감한 10대 소녀 케이시(브릿 로버트슨)는 경찰에 잡힌다. 아빠의 도움으로 풀려나던 그녀는 경찰이 되돌려준 자신의 소지품 중 못 보던 ‘T’ 이니셜의 핀 하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바로 현재와 공존하는 미래의 유토피아 투모로우랜드로 가는 열쇠였다. 그녀는 그 핀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골동품 상회를 찾아가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그들의 레이저 건 공격을 받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신비소녀’ 아테나(래피 캐시디)의 도움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어리둥절한 케이시에게 아테나는 자신이 투모로우랜드에서 왔으며 예전엔 그곳에 보내질 현명한 ‘재목’을 뽑는 모집자였지만 그곳의 지배자 데이빗 닉스(휴 로리)에게 반기를 든 천재 발명가 프랭크 워커(조지 클루니)를 도왔다가 함께 추방됐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핀은 예전에 모집자로 활동할 때 갖고 있던 ‘열쇠’ 중 마지막이었고 이미 이를 파악한 데이빗이 제거 로봇을 보낼 것이라며 프랭크의 집에 데려다준다.

로봇들은 케이시를 내주면 살려주겠다고 프랭크와 협상을 벌이지만 프랭크는 전쟁을 선택한다. 왜냐면 58일 뒤 있을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투모로우랜드로 가서 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지구는 지나친 과학의 발달로 인한 자연파괴, 인구증가로 인한 식량과 물의 부족, 욕심과 전쟁으로 인한 인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그들을 방관하려 했지만 프랭크는 어떻게든 구하고자 했다. 왜냐면 데이빗은 원래 투모로우랜드 사람이지만 프랭크는 현 차원에서 살던 어린 시절 우연히 투모로우랜드로 가게 돼 거기서 성장한 ‘이중국적’이었고 그래서 현 차원을 살리고자 했던 것.

아테나는 프랭크가 어렸을 때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투모로우랜드로 이끈 로봇이다. 여기에 케이시까지 셋은 우여곡절 끝에 투모로우랜드에 들어가 프로그램을 고치려 하지만 데이빗의 강력한 저지를 받는다.

앞서 이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쉽게 표현했지만 사실 이 영화의 내용은 쉽지 않고 여러 개의 소재가 하나의 주제를 만든다.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과연 진정한 유토피아는 무엇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다. 최소한 어린 프랭크와 케이시가 처음에 봤던 투모로우랜드는 유토피아가 맞다. 하지만 노인이 된 프랭크가 하이틴 케이시의 손을 잡고 직접 밟은 투모로우랜드는 점점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프랭크는 많이 늙었지만 데이빗은 프랭크와 처음 만나던 50년 전 즈음보다 더 젊어있다. 그럼에도 인구는 줄었고 활기찼던 도시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현 차원의 사람들은 58일 뒤 지구(혹은 현재의 3차원)가 멸망하지만 그것도 모른 채 각자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그 중에는 58일 전에 죽을 사람도 있고 딱 그날 죽을 사람도 있으며 지구만 멀쩡하다면 최소한 58년 이상 살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게 행복일까, 아님 미래를 보고 사는 투모로우랜드 사람들이 행복한 것일까?

두 번째는 사람과 로봇의 정체성이다. 데이빗의 횡포 혹은 수수방관으로 망할 현세를 구하고자 하는 프랭크를 돕는 유일한 로봇 조력자가 아테나인데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다. 전쟁은 평화의 반대지만 지구촌의 역사에서 보듯, 전쟁이 평화를 지킨 아이러니는 엄연히 존재한다.

리들리 스캇의 ‘블레이드 러너’부터 스티븐 스필버그의 ‘A.I.’까지 각종 SF 영화에선 로봇과 사람의 경계, 로봇과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심오한 질문과 깊은 고뇌를 던진다. ‘투모로우랜드’에선 바로 아테나다. 그녀는 철저하게 ‘임무’만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첨단의 로봇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할 줄 안다. 케이시가 질문을 쏟아내자 자꾸 그러면 전원이 나간다며 진짜 로그아웃된 듯 기절한다. 하지만 이것은 연기.

프랭크가 소년이던 시절의 프랭크와 아테나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어른들로 치면 사랑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그런 2차원적 감정이 아닌, 우정과 연민과 믿음과 의지(依支) 등이 뒤섞인 이 영화처럼 다차원적인 정서다. 하이라이트에서 아테나는 꿈을 가진 사람끼리 협력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건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차원의 사람들의 멸망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데이빗과 프로그램 안에서 스스로 진화한 아테나 중 누가 더 인간적일까?

두 차원의 세계가 각자 과거와 미래 혹은 현재와 미래로 구성돼있지만 ‘타임머신’같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영화 초반은 정신없다. 게다가 조지 클루니의 셀프카메라 형식의 인트로 역시 살짝 지루하다. 뮤직비디오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의 입맛엔 굉장히 아날로그 적이다.

물론 디즈니 영화의 공식은 청소년 관객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A.I.’처럼 고도한 집중력과 이에 대한 깊은 사색을 요구하진 않으면서도 ‘품격’을 지닌 작품이라고 가볍게 보면 곤란하다. 여기에 지루할 때 즈음엔 과하지 않지만 꽤 눈이 즐거운 액션과 화려한 비주얼이 충분한 재미를 준다.

이 영화는 지구가 황폐해지자 우주에 부자와 귀족들의 나라 엘리시움을 세우고 지구를 착취하는 계급구조 속 민중봉기를 그린 닐 블롬캠프 감독의 ‘엘리시움’과 비슷한 이중공간을 그리는 가운데 계급파괴와 평등을 주장하지만 ‘엘리시움’보다 훨씬 더 밝다.

하지만 오는 28일의 개봉시기가 좀 문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흥행세는 꺾였지만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스파이’의 기세가 질풍노도같은 데다 전도연의 ‘무뢰한’도 있다.

‘12세 관람 가’ 등급은 청소년만 불러 모아선 큰 흥행성적을 거두기 힘들다. 그런데 볼 게 천지인 현재 극장가에서 어른들이 ‘어벤져스2’나 ‘매드 맥스’보다 지루하고, ‘간신’만큼의 ‘볼거리’도 없는 ‘투모로우랜드’까지 아이와 함께 챙겨 보기엔 현재의 경제사정이 어렵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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