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프로듀사’, ‘피노키오’와 ‘미생’ 사이
입력 2015. 05.26. 10:43:02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화제의 KBS2 금토드라마 ‘프로듀사’가 드디어 11%의 시청률을 찍으며 순항을 예고했다. 첫 회 10.1%로 시작돼 3회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프로듀사’는 지난 23일 시청률이 일취월장했다.

사실 이 드라마는 1, 2회 때만 하더라도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김샌 지적이 컸다. 애초 ‘어벤져스’ 급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기대감이 컸던 탓도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와 중화권 톱스타 김수현의 이름값에만 기댄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탄력을 받고 있다.

애초 이 드라마의 대사대로 ‘산마이’(일본 가부키의 단역배우, 연예계에선 싼티 혹은 저급을 표현하는 속어)적 취향을 저격하며 표민수 PD의 초기 연출스타일대로 썩 괜찮은 B급 드라마를 탄생시키는 듯했으나 주인공인 백승찬(김수현)의 캐릭터대로 ‘니마이’(조연배우) 급으로 살짝 수준을 상향조정하는 가운데 여지없이 백승찬과 신디(아이유)의 멜로를 부각시키며 그렇고 그런 멜로물의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큼은 맞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와는 차원이 약간 다르다. 그것은 ‘피노키오’와 ‘미생’의 성공사례와 유사한 맥락이다. 분명히 이 드라마에선 그 두 드라마가 보인다.

‘미생’은 우리나라 샐러리맨의 평균적 수준의 눈높이에 맞춘 직장인의 애환을 다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큰 인기를 끌었다. 그건 1970년대 경제성장기 때 넥타이 맨 화이트컬러가 평균가정의 공통된 목표였고, 그 흐름이 IMF 위기 때 확인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시에 현재 정규직이 ‘하늘의 별따기’고 그나마도 불안하며 고용이 보장돼봤자 급여가 ‘쥐꼬리’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미생’의 직장 내 치열한 극한의 생존기와는 살짝 다른, 기자라는 전문직에 대한 애환을 다뤘지만 그 역시 샐러리맨의 생존기와 동일선상의 주제였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한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윤리’와 ‘기자정신’이 특히 강조되는, 그만큼 그걸 지키는 게 중요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반대방향의 유혹에 노출돼있다.

‘피노키오’가 시청자에게 사실감 있게 다가간 점은 TV 화면에서 리포팅하는 기자의 모습이 말끔한 정장이었지만 멀쩡하게 수습기자로 입사해 ‘사쓰마와리’(경찰서 출입 수습기자)로서 경찰서에 진을 친 지 며칠 만에 ‘좀비’가 되는 모습, 경찰서 내 기자실에서 남녀가 뒤엉켜 시체처럼 자다가 좀비처럼 새벽에 일어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날것 그대로의 이면 때문이었다.

더불어 뉴스의 극적 효과를 위해 화재현장에 갓난아이의 신발을 놓는다든가, 장대비가 내리는 강남 한복판 도로에서 무릎을 꿇고 마치 더 큰 폭우가 내린 듯 연출한다든가 하는 과한 실적주의가 낳은 부도덕을 꼬집는 자아성찰이었다.

기자 역시 직장인이기에 ‘잘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선배나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고 부도덕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심지어 ‘권력’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결국 이 드라마는 ‘내부자 고발’이라는 기자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은 물론 공무원 조직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그게 정의라면 당연히 존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회사 체계를 통렬하게 까발렸다.

‘프로듀사’는 ‘피노키오’만큼의 심각함은 아직 없지만 ‘미생’ 이상의 직장인으로서의 생생한 재미는 충분하다.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 백승찬은 언론고시를 패스해 KBS에 입사하지만 어쩐지 어리바리하다. 아버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유복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그이지만 치열한 예능국 수습PD 생활은 시작부터 난항이다. ‘1박2일’ 팀에 배치된 그는 첫날부터 출연진 중 최고참인 윤여정에게 하차사실을 통보해야 하지만 용기가 부복해 명령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고 ‘사수’인 라준모(차태현) PD에게 호되게 혼난다.

그런 그에게 중간급 선배가 ‘너 PD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냐?’고 묻는다. 어리둥절한 그에게 선배는 ‘근무시간 외 수당을 신청하는 거야. 일주일 지나면 못 받아’라고 알려준다.

또 갑자기 내린 비로 당황한 톱가수 신디에게 승찬이 KBS 직원 대여용 우산을 내주며 “반드시 하루 빨리 반납해야 합니다. 제 이름으로. 안 그러면 계속 제 월급에서 연체료가 빠져나가거든요”라며 순수하면서도 소시민적인 샐러리맨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면 역시 ‘미생’의 냄새가 역력하다.

‘미생’보다 더 진화한 소스도 있다. ‘1박2일’이 시청률 저조로 위기에 처하자 작가들이 “프로그램이 폐지돼도 피디는 월급을 받지만 작가는 안 그렇잖아요”라고 울부짖은 뒤 잽싸게 휴대전화로 다른 피디에게 일자리를 알아보는 장면이 그렇다. 여기서 이 드라마의 주제와 병치되는 대사가 오버랩된다. 준모의 죽마고우이자 입사동기로 ‘뮤직뱅크’ 연출자인 탁예진(공효지)은 준모에게 이렇게 외친다, “이별에도 예의가 있는 법”이라고. 이는 신혜주(조윤희)와 사귀는 준모에게 혜주와의 관계에 대해 확실하게 규정하라는 뜻이자 동시에 출연자들의 하차에 예의를 지키라는 중의적 표현이다.

‘프로듀샤’는 KBS 예능국 PD들의 직장인으로서의 일상과 애환 그리고 청춘에 대한 얘기임으로 사내 연애도 있고 각자의 디테일한 사정이 뒤죽박죽돼있다.

그들이 가장 힘든 일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만 얘기하는 국장의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규정에 안 걸리기 위해 재킷을 입으라고 부탁했지만 신곡의 콘셉트 때문에 막상 생방송 때 재킷을 벗어던진 신디를 어쩌지 못하는 예진의 분노다.

또한 준모가 수지를 섭외하기 위해 JYP 사무실을 찾아 일본에서 운동 중이라는 박진영의 운동이 끝나기를 기다려 간신히 화상통화에 성공하지만 ‘수지’ 얘기가 나오자 버퍼링이 걸린 듯한 설정으로 자신을 피한 박진영이 다음날 전화를 걸어 ‘큰 것 주겠다’며 수지의 캐스팅을 받아들일 것처럼 얘기하다 ‘나’라고 얘기하자 크게 실망하는 장면 등이 예능 PD의 실감나는 현실적 애환을 아주 잘 보여준다.

화려한 테크닉이나 말장난은 없지만 작가의 필력은 ‘별에서 온 그대’만큼 촌철살인이다. 승찬이 회의 중 “제가 버라이어티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보고 있는데요”라고 수습다운 진지함을 보이자 조연출이 완모에게 “형, 얘 사마천이야”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게다가 승찬이 신디를 섭외하기 위해 “진지한 영화배우란 이미지가 강했던 전도연이 ‘공포체험 돌아보지마’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점이나, 섹시퀸 이미지만 있었던 이효리가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 민낯으로 밭을 갈고 밥도 짓는 모습을 보여 팬이 갑자기 늘어났다”고 설득하는 장면 역시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완모와 예진의 전격적인 동거를 통해 부동산 정책을 질타하는가 하면 미혼의 동거에 대한 사회적 풍자를 서슴지 않는 내용도 쫄깃하다.

어쩌면 이런 모든 게 화려한 캐스팅과 더불어 막판에 표민수 PD를 영입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만약 기획단계의 예정대로 예능국의 서수민 PD에게 전적으로 메가폰을 맡겼다면 인터뷰 형식을 삽입해 다큐멘터리의 효과를 준다거나 아웃포커싱으로 화면의 주인공과 배경의 심도를 달리해 몰입도를 높이는 기법 등의 깊이와 재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예진이 후배나 작가들 앞에선 신디를 크게 나무랄 듯하다 주변을 물린 뒤 반말을 존댓말로 바꾸고 애원하는 장면에선 예전 PD의 도그마가 사라진 현실을 아주 실감나게 반영한다. 어쩌면 작가는 승찬의 입을 빌어 맹구(이창훈)의 니힐리즘을 얘기하듯, 고단한 삶을 사는 예능 PD들이 나중엔 결국 느끼게 될 허무주의를 얘기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캐스팅은 확실히 ‘어벤져스’가 맞다. 코믹연기의 대가 차태현은 이번엔 오히려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듯 차분하고 착한 성격의 완모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다. ‘믿고 보는 배우’ 공효진은 심지어 대사가 없을 때마저도 눈빛 하나, 얼굴 표정 하나로 모든 걸 말한다, 일에 찌든 예능 PD를 표현하기 위해 베이스 메이크업을 마다한 채 거친 피부를 그대로 노출하는 디테일마저 아름답다.

‘막내’ 김수현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내면은 킬러지만 겉으론 모자란 바보를 연기한 데서 더 진화해 똑똑한 바보의 이중성을 소름 돋게 표현한다. 그가 동글동글하고 맑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릴 땐 왜 여자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쉽게 된다.

그에 반해 마지막 주인공 아이유는 미스캐스팅으로 보인다. 세 명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기에 그녀의 부족한 연기력은 더욱 두드러진다. 모든 것을 떠나 연기의 기본인 어설픈 발성에서 우러나오는 대사는 자막이 필요할 정도고 말투 자체가 캐릭터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아 옥에 티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KBS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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