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 안드레아스’, 재난으로 미국을 찬양하는 불편함[시네 프리뷰]
- 입력 2015. 05.28. 10:55:40
-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여러 종류가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같은 슈퍼히어로 물, 외계생명체의 침공같은 괴수 물, ‘아바타’같은 SF 장르,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장르, 그리고 스파이 물 등이 있고 재난영화 역시 필수항목이다.
공포영화가 그렇듯 재난영화에도 몇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그래서 ‘샌 안드라에스’는 전혀 새롭지 않다. 기존에 숱하게 극장에 내걸린 재난 블록버스터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혹은 여지없이 엇비슷한 길을 걷는다.
자유의 여신상만 등장하지 않을 뿐 북미대륙 서부 해안지대의 고층빌딩들이 차례로 붕괴되는 장면이나 주인공들이 아이를 구하는 내용, 그리고 먼저 살겠다고 잔꾀 부리는 악역은 항상 먼저 죽는가 하면, 죽음 앞에 초연한 대인배가 필수 게스트라는 점은 여지없이 닮았다. 더불어 주인공들이 남들보다 뛰어난 생존능력을 지녔으며 결손가정이라는 점마저도 똑같다. 다만 주인공이 이상한 조짐을 포착해도 주변사람들이나 결정권을 지닌 권력자가 이를 무시하는 답답함을 유발하는 설정이나 애완견이 안 나오는 게 그나마 변별성이다.
LA 소방서 구조대장 레이(드웨인 존슨)는 특수부대 출신의 동료들과 함께 도시 내 위험에 빠진 시민들을 구출해내는 훌륭한 남자이지만 가장으로선 불행하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으나 둘째 딸을 눈앞에서 익사사고로 잃은 뒤 그 죄책감과 무력감의 트라우마에 괴로워하고 있다. 직업이 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정작 자기 딸을 못 구했단 사실은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의 아내 엠마(칼라 구기노)는 그런 남편에게 질려 대학생이 된 첫째 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를 데리고 집을 나와 살다 만난 부유한 사업가 다니엘(이안 그루퍼드)과 결혼하고자 남편에게 우편으로 이혼서류를 보낸다.
지질학 박사 로렌스(폴 지아마티)는 후배 박사 킴과 함께 샌 안드레아스 단층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조사하던 중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지진을 만나게 되고 때마침 연구실로 찾아온 취재진을 통해 서부지역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알린다.
이 와중에 시내의 각기 다른 장소에 있던 엠마와 블레이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레이는 만사를 제쳐두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근육질의 팔뚝에 힘을 준다.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적 도시 LA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초토화시킨 뒤 바닷물에 잠기게 만든 CG는 가히 지금까지의 재난영화 중 단연 최고다. 스티브 매퀸과 폴 뉴먼 주연의 ‘타워링’을 잊지 못해 설경구 주연의 ‘타워’에 반가워했다가 관람 후 크게 실망했던 관객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양 손바닥을 닦을 손수건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장면은 ‘인터스텔라’의 유사한 장면의 엄청난 스케일에 익숙한 관객을 긴장시키긴 한참 부족하고 자꾸 가라앉는 건물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을 피해 생존에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들의 액션은 그다지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초반의 지진의 시작으로 아수라장이 된 후버 댐 위에서 킴 박사가 한 소녀를 구한 뒤 희생되자마자 소녀의 엄마가 허둥지둥 나타나 소녀를 챙기는 설정은 굉장히 억지스럽다. 그 정도라면 킴 박사가 구해주기 전에 엄마가 소녀를 데리고 진작 피했어야 마땅하다.
그런 허점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특히 주인공들이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의 생사를 넘나들거나 위기를 피하는 장면에선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스포일러일 수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피함).
그나마 자그마한 지적인 사고를 요하는 장치로 영국에서 관광 겸 다니엘 회사의 입사면접 차 샌 프랜시스코를 찾은 영국인 형제 벤과 올리가 투입됐지만 그들이 블레이크를 구해주는 것으로 끝이다.
결국 감독과 제작진은 ‘영국 바보, 미국 최고’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미국찬가만 외칠 따름이다. 끝부분에서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헬리캠이 죽 훑어지나갈 때 뜬금없이 거대한 성조기가 나부끼는 걸로 방점을 찍으면서 그 어설픈 ‘캡틴 아메리카’ 찬양노래는 끝을 맺는다.
주의사항: ‘판타스틱4’ 1, 2편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관람금지. ‘판타스틱4’의 히어로의 리더인 리처드를 연기했던 그루퍼드가 엄청난 실망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114분의 러닝타임이 꽤 길게 느껴진다. 내달 4일 개봉.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샌 안드레아스’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