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프로듀사’의 진실과 허구
입력 2015. 05.29. 18:21:31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1월 끝난 SBS 드라마 ‘피노키오’는 굉장한 호평을 얻었으며 그만큼 시청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줬다.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것은 그동안 기자라는 특수한 전문직에 대해 드라마가 제대로 다루지 않았거나 왜곡되게 그렸던 것에 비해 굉장히 실감나게 디테일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잘 몰랐던 ‘사쓰마와리’나 ‘물먹었다’는 기자 세계의 ‘전문용어’를 알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탄탄한 취재 덕이었다. ‘기자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촌철살인의 대사는 실제 오래 전부터 선배 기자가 후배 기자를 가르칠 때 단골로 써먹던 코멘트다. 그리고 내부자 고발 문제로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갈등 장면은 실제로는 거의 존재하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일부 기자가 개인적으로 겪었을 만한 고민인 것은 맞다.

그런 면에서 KBS2 금토드라마 ‘프로듀사’는 일반인은 잘 몰랐던 지상파 방송사 예능 PD들의 소소한 일상과 직업적 애환을 알 수 있는 꽤 흥미진진한 내용을 그린다. 선악의 양대구도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달리 긴박감이 없으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1박2일’의 PD인 라준모(차태현)가 출연자의 전원교체를 명령하는 김태호 CP(박혁권)에게 “‘무한도전’도 식스맨 뽑는 것으로 몇 주를 우려먹는데 우리도 새 멤버 경합으로 가볼까요?”라고 제안하자 태호는 “너 경합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얘기야?”라고 묻는 대목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PD들의 고민과 애로를 잘 드러내준다.

준모가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해 ‘1박 2일’의 고참으로 승선시켰던 윤여정에게 하차통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하는 장면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애초에 ‘여배우 컨셉트’로 윤여정 황신혜 금보라 현영 등을 라인업으로 구성한 점은 스스로 KBS 예능국 PD들의 수준을 평가절하 했다.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KBS 예능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입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런 중차대한 일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입사한 지 하루 밖에 안 된 수습사원 백승찬(김수현)에게 시킨다는 것 역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

압권은 ‘뮤직뱅크’를 연출하는 탁예진(공효진) PD와 톱가수 신디(아이유)와의 신경전이었다. 신디는 신곡의 컨셉트 때문에 시스루 의상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진은 “지상파 방송에서 그랬다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호출감”이라며 재킷을 걸칠 것을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예진은 후배 PD와 작가 앞에선 강한 척하지만 상황이 불리해지자 후배 등을 모두 물린 뒤 태도를 바꿔 신디에게 애걸한다.

KBS MBC SBS 등의 지상파 3대 방송사에 신곡을 낸 가수들이 설 무대는 각자 한 개씩밖에 없다. 그 프로그램의 PD라면 시청률에 상관없이 가수나 음반기획사 임직원에게 ‘갑 중의 갑’이다. 하지만 그들도 고개를 숙일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디같은 ‘갑 중의 갑 중의 갑’이라면 예외다.

그런 면에서 예진의 신디에 대한 굴욕 신은 현실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그건 사실과 다르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다. 조용필이나 나훈아 정도라면 가능하지만 그들은 의상으로 PD와 신경전을 펼칠 정도로 무식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TV에 안 나온다.

1990년대 댄스그룹이 창궐하던 시절 웬만한 그룹이나 솔로가수들은 음반을 냈다 하면 100만 장 판매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래서 각 업체들은 홍보를 위해 가수들에게 꽤 많은 지원금을 주고 그 의상에 자사의 로고를 붙이게 했다. 그런가 하면 많은 남자가수들은 몸에 문신을 새겼고 여자가수들은 점점 노출수위를 높여갔다.

그때 KBS는 대대적인 자체정화 방침을 음반기획사에 하달해 가수들을 당황케 한 적이 있다. 로고 부착, 문신 노출, 선정적인 의상 착용 등의 금지가 그것이었다.

라디오 전성시절의 여의도 MBC 사옥 6층 라디오국과 7층 스튜디오의 휴게공간엔 음반제작자들이 상주하며 PD들에게 자신이 데리고 있는 가수의 노래를 틀어줄 것을 직간접적으로 부탁하는 게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듯 KBS 본관 1층 커피숍엔 가수 매니저들이 상주하며 어떻게든 ‘뮤직뱅크’ PD에게 어필할 수 있나 총력전을 펼친다.

라디오의 청취율이 전성기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진 현재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는 가수의 신곡을 홍보할 최대의 격전지고 그래서 담당 PD는 초특급울트라 갑이고 작가도 갑은 된다.

예진이 실수로 후배 승찬의 외제차 외부에 흠집을 낸 후 수리비 83만 원을 갚을 돈이 없어 3만, 5만 원씩 할부로 갚아나가는 설정은 엄청난 비현실이다. KBS 직원의 연봉은 웬만한 종합일간지의 그것보다 더 높다. 예진 정도의 연차라면 최소한 5~6000만 원은 받는다.

연예계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른바 ‘PD사태’라고 해서 가요를 포함한 예능 담당 PD와 드라마 연출 PD가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기사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실제 스타 PD 여러 명이 그런 건으로 ‘옷’을 벗은 경우가 존재한다.

드라마 속 예진은 굉장히 투명한 PD이긴 하지만 83만 원을 못 갚을 정도로 KBS의 급여수준이 열악하진 않다.

신디 소속사 변 대표(나영희)가 장인표 국장(서기철)과 태호를 앉혀놓곤 ‘1박2일’에 신디를 출연시켜줄 테니 ‘입수와 국물 섭취가 안 되고, 밤 12시 이후 촬영금지’라고 당당하게 ‘옵션’을 내거는 장면 역시 비현실적이다. 물론 승찬을 어린애 다루듯 하찮게 여기는 내용 역시 절대 없다. 승찬이 지금은 AD지만 몇 년 뒤 ‘1박2일’이나 ‘뮤직뱅크’의 PD가 되기 때문이고 변 대표는 신디 하나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신인들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프로듀사’의 공동연출자 표민수 PD는 KBS 드라마국 공채 출신의 프리랜서다. 물론 서수민 CP 역시 예능국 공채 출신으로 표 PD의 후배지만 지금은 그녀가 ‘갑’이다.

과연 서 CP가 ‘개그콘서트’의 김현준이나, 현실의 신디인 보아에게 예진처럼 굽실댈까?

‘피노키오’와 ‘미생’ 사이를 오가는 언론사 ‘갑’들의 ‘직딩생활’을 그린 ‘프로듀사’는 ‘사’ 자 돌림 직업을 선호하는 현 사회에 대한 우회적 조롱을, 겉으로 보기엔 호화로운 연예계의 ‘갑’이지만 사실은 그들도 ‘미생’ 속 주인공과 다름없는 샐러리맨임을 날것으로 동시에 그리려 하지만 ‘피노키오’에 비하면 현실감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KBS 화면 캡처]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