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프로듀사’, 4명의 어긋난 사랑
- 입력 2015. 06.01. 09:45:46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KBS2 금토 드라마 ‘프로듀사’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10~11%대(이하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에서 보합세를 보이던 시청률이 지난달 30일 드디어 13.5%로 약진하며 흥행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프로듀사’는 기획 단계부터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와 김수현의 재회에 차태현 공효진 아이유의 캐스팅 등 호화진영으로 손쉬운 흥행이 점쳐졌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나자 기대치엔 못 미쳤다.
그건 신디의 소속사 사장 변 대표(나영희) 역시 마찬가지다. 연습생 시절의 소녀 때부터 신디를 조련해온 변 대표는 신디에게서 철저하게 많은 수익을 뽑아내려 혈안이 돼있고 그래서 KBS 예능국 PD들을 제 손으로 주무르려 깍쟁이 짓을 일삼지만 역시 법에 어긋나거나 특정인을 나락에 떨어뜨리려는 악행은 없다.
게다가 드라마는 대중이 KBS라는 이니셜이나 로고에는 익숙하지만 막상 그 예능국 PD들의 디테일한 일상엔 생소한 데 근거해 이들의 직업의 세세한 내막과 소소한 일상 그리고 복잡다단한 애환 등을 부각하려 애쓰는가 하면 화제성에 집착해 화려한 카메오에 무게중심을 상당히 싣느라 드라마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는 데 소홀했다.
그런데 중심에서 겉돌던 네 주인공의 로맨스가 지난달 29일부터 본격적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자 다음날 바로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신디-백승찬(김수현)-예진-라준모(차태현) 등으로 이어지는 일방적 짝사랑 구도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과 애정이 급증한 것.
준모와 예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죽마고우다. 잘 살던 예진의 집안은 고등학교 때 기울었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준모네 집안은 이때 절정의 부를 잡는다. IMF 위기 때 예진의 집은 공교롭게도 준모네로 넘어갔고 현재 준모는 독립해 이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KBS 예능국 동기로 일한다.
이사 시기가 꼬인 예진은 4개월 한시적으로 남동생과 함께 준모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데다 부잣집 엄친아인 승찬이 새로 입사한다. 원래 그는 대학 동아리 선배였으며 현재 KBS 예능 PD로서 선배인 승찬을 짝사랑하고 있는 혜주(조윤희)를 짝사랑했다.
승찬은 ‘1박2일’ 팀에 배치돼 사사건건 미숙한 일처리로 준모의 타박을 받지만 따뜻한 인간미로 자신을 감싸주는데다 가슴 한 곳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예진의 처지가 안타까워 연정을 키우게 된다.
톱가수 신디는 안하무인에 지극히 이기적이고 까칠하며 건방진 인물이지만 ‘엄친아’의 분위기가 흐르는 신입 PD 승찬이 매너까지 갖추고 있음에 서시히 이끌려 간다. 특히 ‘1박2일’ 야외 촬영 중 고립됐을 때 그가 보여준 남자다움과 따뜻함은 지금까지 삭막한 연예계에서 기계처럼 살아온 그녀에겐 신천지의 무지개였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네 사람의 본격적인 사랑의 마라톤이 지난달 29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회식 때 신디와 묘한 신경전을 벌이던 예진은 알코올 기운이 한창 오르자 준모와 승찬에게 2차를 가자고 애교를 발산한 뒤 포장마차에 앉아 ‘진상’을 부리는 가운데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난 지금까지 누굴 좋아하면 준모 너한테 다 털어놨잖아? 그런데 지금 힘든 이유는 준모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거야”라고.
사실 예진은 오래전부터 준모를 좋아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집이 준모네로 넘어갈 때 “너 내 방 깨끗하게 잘 써야 돼”라고 말한 데서 보듯 그녀는 경제적 몰락에 대한 자존심의 함몰로 인한 트라우마 탓에 항상 준모에게 자격지심을 지니고 있었기에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준모 역시 그녀가 싫진 않다. 하지만 그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성격인 듯하다. 고교시절 자신의 아파트가 준모네로 넘어갈 때 괴로워하던 예진을 따뜻하게 감싸준 준모의 감정은 분명 우정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수시로 여기저기 다치고 하는 일이 어딘가 어설픈 지금의 예진을 위로하고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 역시 준모다. 그건 예진이 “그냥 허물없는 술친구로서 편하니까 나랑 가까운 것 아냐”라고 준모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과는 다른 준모의 속내다.
엄마가 주선한 미녀 검사와의 맞선 자리에 안 나갔으면서도 나갔다고 예진에게 거짓말하는 준모의 속마음이 “나랑 확실하게 선을 긋기 위해 그러는 것 아냐”라는 예진의 절규와 맞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냥 준모는 우유부단하거나 아니면 아직 사랑 자체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건 혜주와의 관계에서 이미 드러났다. 두 사람은 방송국 내 공개 커플이다. 회사 내에서도 애정표현을 할 정도다. 그래서 혜주는 준모와 곧 결혼한다고 떠들고 다닌다.
그러나 준모는 애초에 결혼 따윈 관심 밖이다. 그래서 그는 ‘확실하게 하라’는 예진의 충고를 받아들여 단칼에 혜주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그러니 예진의 사랑을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아니, 어린 시절부터 그는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념 혹은 진로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 반해 승찬은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빠르다. 애초에 짝사랑했던 혜주가 오매불망 준모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4년 이상 키워온 사랑을 갈무리한 뒤 갓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매진한다. 그런 그의 단단한 마음의 껍질에 예진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승찬은 그걸 애써 거부하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30일 방송에서 예진은 무대 위에서 사고로 다칠 뻔한 신디를 구해주지만 결국 둘 다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간다. 예진이 다쳤단 소식에 놀라 달려온 승찬이 응급실에서 만난 사람은 신디. 신디의 마음은 더욱더 승찬을 향해 내달리지만 그런 신디의 심장박동을 눈치 못 챈 승찬은 밖으로 나가 예진을 만난다.
승찬의 부축을 받으며 나온 예진 앞에 나타난 준모는 예진에게 “왜 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연예인을 다치게 만들었냐”는 핀잔만 늘어놓는다. 그게 준모의 진심은 아니었지만 서운함과 낭패감이 극에 달한 예진은 행간을 읽을 겨를이 없어 눈물을 터뜨린다.
그러자 승찬은 예전에 준모가 그랬던 것처럼 우는 예진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이제 자신의 감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가겠노라는 의사를 밝힌다.
여성 팬들의 김수현에 대한 충성도를 고려할 때 톱스타의 일방적인 사랑을 못 본 채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시작한 승찬의 캐릭터는 흥분지수를 극대치로 끌어올리기 충분하다. 안타깝고 애처롭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유행하는 ‘연하남+연상녀’ 커플에 대한 환상까지 더해지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사실 유명 연예인과 방송사 PD와의 조합은 실존하는 연분이다. 사내 커플 역시 어느 직장이건 존재한다. 하지만 김수현 아이유 차태현 공효진이 그걸 연기한다면 느낌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그게 ‘프로듀사’의 지지율이 급등한 배경이다.
게다가 작가는 영악하게도 사랑의 머피의 법칙을 가져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정작 내가 관심이 없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스타’일지라도 내 취향이 아니면 그건 별 감흥이 안 된다.
하지만 이건 결국 시청률이라는 족쇄에 사로잡힌 제작진이 기획단계에서 정립한 여타 멜로물과의 차별화 전략을 스스로 무력화함으로써 ‘프로듀샤’가 ‘그렇고 그런’ 드라마로 전락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한 흐름이다.
‘피노키오’에서 방송사 수습기자 달포(이종석) 인하(박신혜) 범조(김영광) 유래(이유비) 등은 각자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이건 현실에선 무조건 불가능하다. 방송에서 보여준 것처럼 수습기자는 6개월 동안 ‘좀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사랑은 사치고, 취미와 레저는 판타지며, 그런 것들을 꿈꾸는 것조차 꿈도 꿀 수 없다. 6개월은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 속 생존경쟁이며 그 기간을 잘 버텨낸 뒤에도 기명기사 하나 나오기 전까진 숨도 쉴 수 없는 게 기자세계다.
그래서 승찬의 사랑은 억지스럽다. 물론 그게 김수현이니까 시청자들이 열광하겠지만.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KBS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