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왜 셰프에 ‘삼시세끼’인가?
- 입력 2015. 06.02. 17:26:17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달 26일 열린 제51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케이블TV tvN ‘삼시세끼’를 연출한 나영석 PD가 대상을 수상했다.
지상파 방송이 아닌 점도 놀랍지만 관찰예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군대예능도 가능함을 보여준 MBC ‘진짜 사나이’가 아닌, 그냥 시골에서 하루 세끼 밥지어먹는 프로그램이어서 방송가는 물론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선 셰프라는 단어부터 그렇다. 예전엔 주방장이었고 조금 격을 높인다고 해봐야 기껏 조리장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왠지 고급스러운 뉘앙스를 풍기는 영어 셰프다. 프랑스어론 더욱 격상된 수장이란 뜻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 후 폐허 속의 극도의 가난을 극복하고 재건하는 과정에서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뉘었고, 그건 38선을 경계로 미국의 ‘보호’ 아래 전쟁의 상처를 치료해가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받아들인 자본주의의 영향 탓도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사회 내부엔 ‘직업의 귀천’이란 의식이 자리 잡게 됐고, ‘공순이’ ‘공돌이’ ‘버스 차장’이란 비하적 의미의 별명이 붙은 직업이 다수의 젊은이들의 숨통을 터줬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며 이런 직업의 귀천 구분은 많이 무너져 내렸다. 화이트컬러가 블루컬러보다 우월하고 오랜 관료사회 역사의 영향으로 공무원이 귀한 직업으로 추앙받던 의식이 장인을 인정하고 직업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선진형 직업관으로 바뀌게 된 것.
그럼에도 중요성과 전문성의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전문 요리사에 대한 인식은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상대적 하위개념이 잔존해있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식당의 조리사는 아라이(접시닦이, 조리계에 갓 입문한 왕초보) 보조(세컨드 셰프) 조리장(셰프) 등의 3단계로 구분돼 있었다. 갖은 궂은일을 이겨내 주방장의 위치에 오르면 다행이지만 그 전까지의 과정은 밖에 드러내놓기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심지어 주방장이 돼도 내놓고 주방장이라고 말하기 껄끄럽긴 마찬가지.
복장학원 및 대학의 관련 학과는 오래됐지만 요리학원이나 요리에 연관된 학과가 생긴 역사가 일천한 게 그 증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프랑스의 요리 전문학교 르 코르 동 블루가 하버드 못지않은 권위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인식될 정도다.
경제개발 시절같으면 이연복 셰프가 탕수육을 잘 튀긴다고 방송에서 자랑삼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이렇게 셰프의 위상이 높아지고 그 직업 자체가 자랑거리가 된 것은 소득 혹은 생활 수준의 향상이 그 첫 번째 원인이다. 경제수준이 낮을 땐 ‘뭣을 먹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끼니를 때울까’가 당면과제였다. 하루에 세끼를 흰 쌀밥으로 챙겨먹기조차 어려웠던 시절엔 ‘꿀꿀이죽’이란 용어가 있을 정도여서 끼니걱정이 삶의 가장 큰 숙제였다.
하지만 지금 샐러리맨들은 11시를 넘길 즈음이면 ‘오늘은 뭘 먹을까’로 고민한다. 휴일엔 역시 아침을 먹으며 점심과 저녁 메뉴를 놓고 갑론을박한다.
고기를 먹는 데도 ‘쇠고기냐, 돼지고기냐’부터 쇠고기면 등심 안심 차돌박이 살치살 꽃살 등의 부위를 놓고 의논하며, 심지어 고기는 건강에 별로 안 좋으니 생선회나 쌈밥 샐러드뷔페 등의 채식으로 하자는 주장도 대세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양지 뒤엔 음지가 공존하듯 이런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식으로 고급스럽게 잘 차려먹자’는 의식의 팽배의 이면엔 ‘한 끼에 목숨을 걸자’는 비장함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아니 정확하게 서민들의 경제상황은 모두가 체감하듯 근래 들어 최악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인 피고용자들이나 자그마한 규모의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는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화려한 해외여행이나 호화파티는 남의 나라 얘기고 가장들은 휴일이 무섭다. 부자들이 수억 원 대의 수입차를 메뉴 고르듯 갈아탈 때 서민들은 오로지 연비만 계산하고 보다 더 싼 주유소 찾기에 혈안이 된다.
한때 스키어들로 붐볐던 강원도 고성 알프스 리조트는 폐장돼 을씨년스런 폐허로 변한지 오래고 나머지 스키장들도 눈 구경이 어려운 동남아시아나 중화권 관광객들만 넘쳐날 따름이다.
그래서 서민들은 1만 원의 행복에 만족해 레저를 포기한 채 극장 문을 닳게 만드는가 하면 보다 더 싸게 맛난 식사 한 그릇으로 지난한 하루를 마감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는다.
그런 그들에게 평소 맛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서양식 요리를 만드는 셰프는 ‘백마 탄 왕자’이면서도 셰프가 일반인의 냉장고를 뒤져 간편하고도 특별한 가정식 요리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낼 땐 ‘이상형 남편’이 된다.
연예인은 물론 셰프들조차 서울의 3대 탕수육 중 하나라고 극찬한 이연복 셰프의 서울 연남동 중국식당은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봤을 땐 떼돈을 갈고리로 긁고 있어야 마땅한데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 셰프는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다. 해당 식당은 탕수육이나 짜장면이 아닌, 값비싼 코스요리가 메인메뉴고 그래서 그게 매출을 주도한다. 하지만 방송 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코스요리를 주문할 만큼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다. 그래서 객단가가 떨어지고 당연히 매출이 하락하는 것이다.
모든 육체노동을 요하는 전문직도 대기업 CEO 못지않게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유독 셰프가 각광받는 현상이 서민들의 아픈 현실의 반영이기에 씁쓸하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삼시세끼’, CJ E&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