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한국영화 위기는 왜?
입력 2015. 06.05. 10:55:10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올해 한국 극장가는 유독 한국영화의 열세가 두드러진다. 현재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서서히 막을 내릴 태세지만 이미 300만 관객을 동원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입소문을 타고 ‘미친’ 흥행질주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스파이’가 150명을 동원하며 소리 소문 없이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월까지의 전체 관객 수는 지난 10년간의 기록 중 2위로 지난해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하지만 외국영화 68.5%, 한국영화 31.5%의 점유율은 그다지 반가운 수치가 아니다. 기록의 저변엔 외화의 흥행이 깔려있는 것. 31.5%라는 수치는 지난 10년 간 4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지난달 31일 ‘악의 연대기’(백운학 감독)가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김석윤 감독, 387만여 명) ‘스물’(이병헌 감독, 304만여 명) ‘강남 1970’(유하 감독, 219만여 명)에 이어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로서 네 번째로 200만 관객을 넘었다. 그러나 4편이 ‘어벤져스2’ 1편과 맞선 모양새니 확실히 한국영화의 약세다.

지난 4일 개봉된 ‘은밀한 유혹’은 올해 한국영화 흥행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 하루 2만 165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 2만 5022명으로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지만 그 순위는 무의미했다. 이번 주말 반전이 없다면 100만 관객 돌파가 쉽지 않을 수치다.

하지만 오는 11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4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에서 예매 이벤트를 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월드’는 시작 12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예고했다. 이 영화는 개봉 예정 영화 검색어 1위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맥스무비와 롯데시네마의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 이달 2주차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에, 인터파크 홈페이지 설문 결과 6월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에 나란히 올라 ‘어벤져스2’가 빠져나가는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을 태세다. 이달도 한국영화가 어려우리란 예고다.

2000년을 전후로 한때 ‘시나리오 한 권만 있으면 영화를 만든다’는 말이 나돌 만큼 제작이 활발했던 한국 영화계다. 그건 그만큼 투자가 잘 된다는 것이고 흥행이 바탕이 된단 연상법에 근거한다.

그 바탕은 지금의 50대 이상의 ‘선배’들이 그동안 한국영화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써온 노력과 희생이 바탕이 됐다. 1988년부터 시작된 다국적 메이저스튜디오의 한국시장 직접배급 시스템에 맞서 당시의 한국 영화인들은 부단한 노력과 힘든 대결로 한국 영화를 지키고자 애썼다. 직배 영화 상영관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금과옥조로 여겼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과 자연스런 자본의 유입으로 이어졌고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많은 영화들이 스크린쿼터제의 무용지물화를 일궈냈다. 하지만 그런 활황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영화계에 독이 돼 돌아왔다.

2001년 ‘친구’가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키자 너도나도 조폭영화를 만들며 수적팽창과 더불어 질적 저하를 동시에 가져온 게 대표적인 케이스.

게다가 당시 활발한 제작활동을 벌인 당시 40대를 중심으로 한 제작자들의 제작비를 부풀리는 ‘관행’이 마침 영화계에 자리 잡은 CJ 롯데 쇼박스 등 3대 배급사들에게 신뢰를 일어가면서 영화계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그런데 이 물갈이는 득과 실을 동시에 가져왔다. 배급사의 입맛에 맞게 제작비를 맞추는 제작사의 메이저리그 진입으로 어느 정도 투명성이 자리 잡는 가운데 그들의 신선한 기획력 역시 작품성과 다양성에 큰 도움이 돼 한국영화의 질을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렇지 못한 적지 않은 젊은 제작자들의 어설픈 실력은 전체적인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 등을 하향조정하는 결과를 낳은 것. 전술한 한국영화의 흥행부진이 입증한다.

관객들의 이념도 많이 바뀌었다. 직배 초기만 하더라도 영화인들의 ‘한국영화 사수’ 의견에 무조건적인 충성도를 보였으나 적지 않은 한국영화의 ‘애드벌룬’ 선전에 속아 실망한 관객 대다수는 국적이 아닌 재미 혹은 취향을 철저하게 기준으로 삼는다. 그건 한국영화를 위해 자그마한 투자를 할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새 한국 영화계에 불고 있는 낯설지 않은 찬바람의 영향도 영화인들을 위축시키며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다. 한국영화계의 중간 형 급인 강우석 감독은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언론과 만나 그런 흐름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강 감독은 NEW가 ‘변호인’에 투자한 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고, 김우택 대표가 대상포진에 걸릴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현실에 대해 “마치 영화계에 계엄령이라도 선포된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이러다 영화계에 사전 검열이 부활되는 것 아니냐”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변호인’에 투자한 CJ창투가 최근 회사명을 타임와이즈로 바꾸고, 간접 투자사 캐피탈원 역시 얼마 전 모태펀드 조성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것이 부디 같은 맥락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토종 충무로의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의 수장이기 도한 그는 CJ에서 2년째 개봉이 미뤄진 ‘소수의견’을 가져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영화가 기업 논리에 좌우돼선 안 될 것 같아 그랬다”고 설명했다. ‘소수의견’은 철거 과정에서 일어난 두 명의 젊은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법정다툼을 그린다. 오는 25일 개봉.

또 한 명의 반가운 감독이 연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만날 수 있다. 1978년 부산에서 발생한 한 유괴사건을 중심으로 사주로써 그 아이를 찾으려는 도사와 형사와 33일간의 얘기를 담은 ‘극비수사’다. 사람 냄새 나는 정서에 특별하게 공을 들이는 곽경택 감독이 휴머니즘에 근거한 긴장감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오는 18일 개봉.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면 ‘영화는 감독 놀음’이다. 강우석 감독은 그 자신도 흥행감독이지만 김상진 장윤현 등 수많은 흥행 감독을 양성하고 배출해내기도 했다. 그가 ‘소수의견’에 투자하는 이유는 그런 영화계의 ‘형’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자는 의미다.

‘친구’ 이후 대작과 소품 사이를 오가며 심한 파도타기를 한 곽경택 감독은 이번엔 지금까지의 연출 필모그래피 중 가장 진한 사람냄새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난 5개월간 각각 성공과 실패를 맛보고 있는 한국영화를 보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악의 연대기’는 꽃미남 스타를 앞세우진 않았지만 불꽃 튀는 시나리오를 ‘튜브’(2003년) 이후 절치부심한 감독의 묵은 김치같은 깊은 맛의 연출력을 손현주 등 배우들이 화려하진 않지만 깊이 있게 소화해냈다.

‘스물’은 재기발랄한 작가 출신인 감독의 재미와 감각의 집대성이고, ‘강남 1970’은 메시지가 살아 숨 쉰다. ‘조선명탐정2’의 재미야 두말 하면 잔소리다. 물론 이 모든 원인의 배경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잘 조리한 감독의 연금술이다.

하지만 ‘위험한 상견례2’는 ‘조선명탐정’과는 달리 ‘형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을 지키는 우를 범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웃어야 즐거워하지, 감독이 먼저 웃으면서 웃으라고 강요하면 불쾌하다.

‘간신’은 김강우의 명연기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산만하면서도 깊이가 없는 내러티브에 잔인하거나 에로틱한 비주얼의 과한 부각이 과유불급의 교훈을 어기면서 관객에게 외면당했다. 아직 흥행의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지만 ‘은밀한 유혹’ 역시 멜로도 스릴러도 모두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시나리오와 미장센 비주얼 그리고 배우의 외모에 기댄 채 연출의 방향을 잡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매드 맥스’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담고 캐릭터 각자의 이름 하나에도 신화와 역사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결코 어렵지 않고 그냥 재미있다. ‘스파이’는 뚱뚱하고 예쁘지도 유명하지 않은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절대 억지로 웃음을 강요하거나 촌스러운 구닥다리 유머를 재탕하지 않는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극비수사' '소수의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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