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비수사’, 믿고 보는 따뜻한 감동, 메시지는 덤[시네프리뷰]
- 입력 2015. 06.08. 14:41:55
-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일단 곽경택 감독의 바로 전작인 ‘친구2’는 잊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초기의 ‘억수탕’과 ‘닥터 K’가 무색할 정도로 정말 엄청난 신화를 낳은 ‘친구’도 선입견에서 지우는 게 낫다.
대신 비교적 최근작인 ‘통증’과 ‘미운 오리 새끼’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바람직할 듯하다. 어쩌면 진짜 곽경택 감독은 ‘친구’의 마초적 누아르의 비장미나 ‘태풍’의 폼 잡는 블록버스터 성향의 큰 얘기보다는 각 인물의 세밀한 내면과 그것들을 이루고 갈등하며 때론 화합해가는 심리묘사와 더불어 시대적 아픔에 강한 얘기꾼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연장선산에 있는 ‘통증’은 반어법적 치환의 메시지로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겪었을 아픔을 통증을 못 느끼는 남자와 피가 흐르면 멈추지 않는 여자의 태생적 핸디캡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장치와 결론은 아름다운 희생과 숭고한 이타적 사랑의 승리라는 점에서 그는 감정과 캐릭터에 강하다.
‘친구’에서도 살짝 표현됐던 시대적 아픔에 대한 그의 이데올로기는 ‘미운 오리 새끼’의 미장센 혹은 이스터에그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발음 상으로 ‘낭만’인 낙만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한 그의 블랙코미디는 필름누아르의 색과 시대고발적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암울했던 시절의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민초들의 치열한 희망과 삶을 정치적 이데올로기 없이 생존적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그렇다면 곽경택은 혹시 블록버스터보단 저예산이 체질이 아닐까? 그 대답은 오는 18일 개봉되는 ‘극비수사’에 있다. 그가 어떤 성향의, 어떤 얘기꾼인지.
기승전결은 이미 나와 있다. 이 영화는 1978년 부산에서 실제 발생했던 한 여자 초등학생 유괴사건의 33일을 그린다. 그런데 이 빤한 결말의 영화를 감독은 서스펜스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들의 내면세계에 공을 들여 김윤석과 유해진의 연기력에 바탕을 둔 자신 특유의 진중한 작가적 화법에 충실해 밀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장치적 재미로 승부하지 않고 캐릭터 자체로 완성도를 높인다.
영화는 동요 ‘옹달샘’을 BGM으로 깐 상태에서 박정희 집권 시절의 아비규환같은 시대상을 짧은 컷으로 돌리며 마치 자전하는 놀이기구같은 기법으로 보여준다.
해산물 유통업으로 떼돈을 번 부산의 방귀 깨나 뀌는 부자를 아버지(송영창)로 둔 초등학생 은주는 어느 날 괴한에게 유괴 당한다. 그런데 유괴범은 왠지 연락이 없고 초조해진 엄마는 고모(장영남)와 함께 용하다는 점쟁이 김중산(유해진) 도사를 찾아가 아직 은주가 살아있으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선 사주가 맞는 공길용(김윤석) 형사가 사건을 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길용의 관할은 사건발생지와 다르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담당 수사팀인 중부서 팀에 길용을 은밀하게 합류시킨다. 길용은 은주를 무사히 구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극비수사로 가야 한다며 경찰과 언론의 입을 막아줄 것을 부탁하고 아버지는 이를 조용하게 진행한다.
오리무중에 빠져 실마리가 안 풀리자 고민하던 길용의 귀가 번쩍 뜨이는 일이 생긴다. 중산의 점괘가 착착 맞아떨어져가는 것. 그래서 길용은 중산에게 도움을 청하고 드디어 범인의 윤곽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은주네 가족의 돈을 받을 듯 받을 듯하면서도 피하며 그들을 서울까지 올린 범인은 중부서 팀이나 서울 팀을 비웃듯 길용의 눈앞에서 유유히 사라진다. 그리고 서울 팀과 부산 팀은 서로 자신들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공조가 아닌 대립 및 갈등 그리고 심지어 교란작전까지 펼치며 아이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아이의 생환이 아니라 오로지 범인검거였으니.
여기에서 길용은 양 팀을 향해 분노의 일갈을 터뜨린다. “너희들 자식이 유괴돼도 이따위로 할 거니”라고. 그리고 길용은 부산 팀의 ‘음모’에 의해 예전에 관행대로 돈을 챙긴 일을 빌미로 경질될 위기에 처해 할 수 없이 사건에서 손을 떼려 한다.
이때 뭔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를 찾은 중산이 길용에게 아이를 찾으러 가자고 하지만 이미 맥이 풀린 길용은 그와 주먹다짐을 벌인다. 잠시 긴장된 시간을 가진 뒤 차분하게 마주앉은 두 사람. 이때 중산을 한낱 점쟁이로 우습게 여기는 길용에게 중산이 말한다. 자신이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소신 때문이라고. 이 영화의 주제다.
중산은 점쟁이 업계의 슈퍼스타인 백 도사의 수제자다. 은주가 살아있으리란 확신을 가진 그는 스승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고자 전화를 걸지만 백 도사는 아이가 죽었다며 그에게 핀잔만 던진다.
천신만고 끝에 길용과 중산은 아이를 구하고 범인도 잡지만 결국 승진하는 경찰은 부산 중구 팀이고 언론의 호들갑에 의해 슈퍼스타가 되는 사람은 중산이 아닌 백 도사다.
여기서 감독은 현재도 별 다름 없을 비뚤어진 관행과 그것에 순응해가는 부조리로 가득 찬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미운 오리 새끼’가 조금은 산만한 블랙코미디였다면 ‘극비수사’는 정형화된 수사물의 외형을 살짝 빌려온 뒤 점괘나 사주팔자라는 과학과 다소 거리가 있는 민족적 실생활적 정서로 포장한 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잘 정리된 교과서다.
에필로그에서 감독은 은주가 생환된 지 1년 만에 또 유괴됐다 역시 길용과 중산의 활약으로 재생환됐다는 글을 적고 있다. 극에서 아버지는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대표적인 부르주아다.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길용은 형사란 지위를 이용해 적당히 용돈을 챙기고 아버지가 주는 수고비도 마다하지 않는 융통성이 있지만 아버지에 비교하면 중산과 똑같이 대표적인 서민이다.
모처럼 여유롭게 방안에 누워 현장에서 뛰느라 엉망이 된 발의 굳은살을 잡아 뜯던 길용은 그 손으로 아내가 얻어온 은주네 고모의 제과점 과자를 집어먹는다.
용하단 소문을 듣고 은주의 엄마와 고모가 찾아간 중산은 마당에서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는다. 사건이 마무리 된 후 역시 소문을 듣고 달려온 아줌마 무리 앞에 선 중산은 그 자리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행동은 전형적인 서민 가장의 모습이다.
실제 길용은 은퇴에 즈음해 경무관 자리를 고사하고 끝까지 일선 수사관으로 뛰다 옷을 벗었다. 이 사회에 정의가 앞장설 수 없다면 소신이라도 지켜져야 한다는 게 영화가 외치고자 하는 웅변이다.
‘매드 맥스’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절망적 아포칼립스 속에서도 차선책으로 디스토피아 속의 실낱같은 희망을 그린다면 그나마 ‘극비수사’ 속에는 극비스럽긴 하지만 계곡의 물놀이같은 소박한 즐거움과 현실적인 낭만은 있다. 메르스가 정녕 중동에서 출발한 공포 혹은 재앙인지 아니면 내부적인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통곡하고자 한다면 ‘연평해전’을, 남은 분노를 끌어올리자면 ‘소수의견’을, 그리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차분한 낭만과 즐거움과 행복을 노래하고자 한다면 ‘극비수사’를 선택할 수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사족: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닐 블롬캠프 감독은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는 데 지나치게 큰 블록버스터를 이용한다. 게다가 그는 친절하지 않고 강요적이다. 이에 반해 곽경택 감독은 많은 돈을 쓰지도 않으며 강제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공감대 형성을 유도한다. 그건 관록의 차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극비수사’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