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아무 생각 없이 공포를 즐길 권리[시네프리뷰]
입력 2015. 06.11. 08:41:51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영화는 ‘꿈의 공장’이다.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의 기준이 제각각인 이유는 그들의 꿈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은 대중의 다양한 꿈 중의 공통점을 찾아 그 취향을 저격하는 데 있다. 그런 흥행작은 완성도나 작품성이 뒷받침되는 게 있는가 하면 오로지 구린 돈 냄새만 풀풀 풍기는 것도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전자를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다. 물론 피터 잭슨, 샘 레이미, 잭 스나이더, 크리스토퍼 놀란, 브라이언 싱어 등 제작비 만큼의 값어치 있는 작품세계를 구현해내는 감독도 있지만 대부분의 블록버스터에 동원되는 감독은 메이저 스튜디오 등 거대 자본이 댄 돈의 목적에 충실한다.

1993년 심형래가 ‘티라노의 발톱’이란 어설픈 공룡영화를 내놓을 때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은 그야말로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혁신적 작품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스타 워즈’가 있긴 했지만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과 더불어 어린이용 영화치곤 꽤 심오한 메시지는 인위적인 자연파괴로 생태계의 질서를 무너뜨릴 정도로 오만해진 인간의 ‘만물의 영장’이란 착각에 날카로운 돌을 던지는 경고라는 점에선 꽤 의미가 깊었다.

그렇게 3편까지 계속된 ‘쥬라기 공원’은 속편을 거듭할수록 관객을 실망시키긴 했지만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은 맞다. 그래서 무려 14년 만인 11일 한국 관객을 다시 찾아온 ‘쥬라기 월드’는 확실히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킬 자격이 충분하다. 단 스필버그는 총제작 담당이고 메가폰은 신예 콜린 트레보로우가 잡았다는 것은 염두에 두는 게 좋다.

영화는 매우 정교해지고 사실적으로 발전한 첨단기술에 힘입어 이전 시리즈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인트로에서부터 시작된 근접촬영이 수시로 시도되는 것은 그런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다.

스토리를 관통하는 기본 틀은 전작들과 별다를 바 없다. ‘쥬라기 공원’이 문을 닫은 지 22년 만에 인간과 공룡이 공존하는 안전지대를 만들고자 했던 존 해먼드 박사의 과업을 물려받은 억만장자 마즈라니(이르판 칸)가 그 자리에 ‘쥬라기 월드’를 재개장한다.

하지만 그는 작지만 강한 육식공룡 랩터 조련사 오웬(크리스 프랫)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출신장을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보다 더 위협적인 대형 육식공룡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 일에 앞장선 사람은 유전학 박사 헨리(B. D. 웡)인데 그는 마즈라니에게 숨기고서 더 위험한 프로젝트를 꾸민다.

아직 틴에이저인 그레이(타이 심킨스)와 자크(닉 로빈슨)는 이혼을 눈앞에 둔 부모의 배려로 쥬라기 월드의 이노베이션 센터 책임자로 일하는 이모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와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즐기기 위해 쥬라기 월드로 온다.

워낙 바쁜 클레어는 자신의 비서에게 VIP 카드를 쥐어주고 조카들이 공원을 충분히 즐기도록 배려한 뒤 자신의 업무를 보다가 가장 강력한 유전자 조작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가 우리 안에서 사라진 것을 오웬과 함께 발견한다. 놀란 오웬은 한 직원과 함께 우리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크게 긁힌 인도의 발톱자국을 보고 어떻게 탈출했을까 의아해하던 중 소스라치게 놀란다. 놀라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이 공룡은 사실 탈출한 게 아니고 사람들을 속여 우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렇게 꾸몄던 것.

인도는 직원을 잡아먹은 뒤 우리를 빠져나오고 이때부터 쥬라기 월드가 있는 섬은 아비규환이 된다.

조카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클레어는 한때 연인이었던 오웬을 밀림 속으로 보낸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실탄장비를 갖춘 구조대가 투입되고 마즈라니가 직접 나서지만 사태는 점점 어려워진다. 결국 이사회에 의해 새로 투입된 지휘팀은 오웬이 조련한 랩터 4마리를 풀어 인도를 사로잡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려 한다.

영화는 초반이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나머지 100분 동안 눈이 호강하고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강해 후회는 없을 듯하다. 하와이 로케이션이 보여주는 풍광은 여행욕구를 자극하고, 첨단기술로 탄생된 공룡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은 눈이 호사스러우면서도 인간에 의한 멸종 동물이 자꾸 늘어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교훈까지 설파한다.

사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흥행문법에 충실하느라 스토리의 연결이 뚝뚝 끊어지고, 설정에서 과학적 고민이 읽혀지지 않는 불편함이 눈엣가시다. 그게 시나리오의 완성도 탓인지, 감독의 연출력이 거대 자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편집 상의 오류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긴 하지만 오웬과 랩터들과의 끈끈한 관계나 인도가 밀림 속 깊숙한 곳에 버린 살점이 어느 순간 오웬의 손에 실린 설정 등은 억지스러운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한여름 킬링타임 용으로 꽤 적당한 이유는 현재 극장가의 흐름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칸의 여왕’ 전도연의 열연이 돋보이는 무게감 충만한 ‘무뢰한’도, 임지연의 강력한 노출연기에 화려한 비주얼이 강한 ‘간신’도 맥을 못 추는 게 현재 한국 극장가의 현실이다.

게다가 메르스 공포로 관객이 20%가 줄었다는 보고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도 지갑이 얄팍한 서민들이 이 팍팍하고 지난한 삶 속에서 단돈 1만 원으로 2시간 이상 즐기는 데 영화만한 게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스파이’가 200만, ‘매드 맥스’가 300만 명의 관객을 각각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샌 안드레아스’ 역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다. 재난영화와 괴수영화는 무더운 여름의 더위를 잊을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로서 한판승부가 불가피하지만 이미 예매를 통해 보여준 ‘쥬라기 월드’의 선전포고의 파괴력이 심상치 않다.

‘샌 안드레아스’가 억지로 재난을 통한 공포를 강요하는 가운데 ‘이혼하면 안 된다’는 어이없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쥬라기 월드’ 역시 비과학적인 설정으로 공룡을 탄생시켜 재앙을 초래한 뒤 ‘이모를 사랑하라. 그러면 그녀에게 터프가이 애인이 생긴다’는 뜬금없는 교훈을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월드’는 단순히 거대한 지진과 해일만으로 승부를 보자고 하는 ‘샌 안드레아스’와 달리 20m짜리 수중 공룡 모사사우르스 같은 스케일적 비주얼과 더불어 눈이 피로할 틈도 없이 눈부신 자연풍경과 공룡을 직접 보는 듯한 경이로움을 준다는 점에선 확실히 여름 킬링타임 용으론 손색이 없다.

낡은 ‘쥬라기 공원’의 캐릭터 티셔츠와 폐허가 돼 폐쇄된 쥬라기 공원을 다시 보여주는 센스까지 갖췄을 뿐더러 악의 축인 ‘인젠’의 리더가 뻑하면 ‘공룡 용병을 아프간에 보내겠다’며 미국을 조롱하는 블랙코미디도 곁들였으니 이 정도 상업용 블록버스터라면 봐줄 만하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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