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극비수사’, 희망과 절망의 이음동어(異音同語)
- 입력 2015. 06.15. 08:47:48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영화 ‘친구’에서 동수(장동건) 살인교사 혐의로 법정에 선 준석(유오성)은 혐의를 부인하면 유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시인한다. 그 뒤 수감된 준석을 면회하는 상택(서태화)이 “그때 왜 그랬냐”고 묻자 잠시 뜸을 들이던 준석은 “건달이잖아”라고 건조하게 답한다.
또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나온 어린 시절 친구들의 해수욕 신에서의 ‘거북이와 조오련의 수영 경주’ 대사 역시 어떤 의미인가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갖은 폼을 다 잡아대던 곽경택 감독이 새 영화 ‘극비수사’로 달라졌다. 호화로운 테크닉이나 관객에게 낚시를 던지는 ‘이스터 에그’ 식 기법을 배제한 교과서적 정공법으로 영화 자체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화는 1978년 부산에서 발생한 한 부잣집 외동딸의 유괴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실제로 사건을 잘 마무리한 형사와 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수사물 특유의 영웅담이나 서스펜스 구조로 재미를 포장하려 하지도, 부모와 자식 간의 감동으로 눈물을 짜내려 하지도 않는다. 형사와 도사라는 직업을 떠나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기에 그래서 모든 이데올로기나 욕심 따위를 떠나 그저 아버지의 시선으로 유괴된 아이의 생존을 애타게 갈망하고 미치도록 찾고자 하는 사람 사는 냄새만 짙게 풍길 따름이다.
이 영화가 반가운 이유는 상업영화계의 판도가 정형화된 틀에 고착되거나 그게 아니면 오로지 자극으로 유혹하고자 하는데 반해 중세시대 한눈팔지 못하도록 양 눈 옆에 가리개를 부착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던 말 같은 우직함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은주가 유괴되자 중부서에 수사팀이 꾸려지고 여기에 아이 부모의 특별요청으로 타 관할 소속의 공길용(김윤석) 형사가 배치된다. 보름 만에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오고 길용은 이를 예언한 김중산(유해진) 도사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다. 부산 팀 서울 팀 그리고 길용과 중산의 사주 팀 등 세 팀이 은주를 찾거나 범인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여기서 경쟁이란 표현이 맞다. 왜냐면 경찰들은 아이가 죽었으리란 확신에 오로지 범인을 잡는 데만 혈안이 돼있다. 그리고 그들은 혹시라도 이 사건의 후유증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될 것을 철저하게 사전에 방지하는 데 촉각이 곤두서 있다.
하지만 길용과 중산은 다르다. 심지어 스승인 백 도사마저도 아이가 죽었다고 혀를 끌끌 차지만 중산은 자신이 계산한 사주에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길용 역시 중산의 사주를 믿는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믿고 싶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주연을 맡은 김윤석과 유해진의 출연의 변대로 감독은 결코 주역 혹은 주연배우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 길용은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대의 간부를 거쳐 지금의 실적이 괜찮은 형사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는 결코 로보캅이나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가장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승진해야 처자식을 보다 더 편하게 먹여 살린다는 게 그의 처세의 근본이다.
그건 중산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한 도사랍시고 울긋불긋한 색동옷으로 신비주의를 과시한다거나 집안에 요상한 그림 등을 걸어놓지 않고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소박하게 살아간다.
이런 감독의 설정은 정공법을 채택한 첫 번째 결과다. 그들의 캐릭터를 과장되게 부풀리지도 않고 감동 슬픔 웃음 등의 코드를 가능한 한 절제한 채 사건과 스토리 자체에 충실한 내러티브와 대사로 풀어낸 게 전체적인 색깔이다.
이 영화는 당시 사회상을 오롯이 보여주는 데 특별한 공을 들인다. 거리의 풍경부터 각 집안의 내 외부는 물론 모든 출연자의 의상 및 소품, 그리고 특히 거리의 주인공인 오래된 차들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딱 1978년 부산을 그려낸다.
그 이유는 바로 그 당시의 시대상을 말하고자 하는 감독의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에 기인한다.
인트로의 데모진압 장면 등은 마치 ‘왓치맨’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미국의 현대사 퍼레이드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배경에 동요 ‘옹달샘’을 깐 센스라니!
이 영화는 수사물 서스펜스 그리고 드라마의 장르가 뒤섞여있다. 하지만 감독은 그 흔한 이분법적 구도를 채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영특함을 보인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은주의 아버지는 대표적인 부르주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은주를 유괴한 범인은 홀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어렵게 사는 빈민이다. 여기서 선과 악의 구분은 없다.
물론 아이의 구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출세에만 눈이 먼 서울 형사 팀과 부산 형사 팀 역시 살짝 악의 냄새가 풍기긴 하지만 그들 역시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가장들이고 그래서 문책당할 일은 피하고 실적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다.
사건이 잘 마무리된 후 부산 팀은 승진의 포상을 받고 백 도사는 언론에 의해 족집게 도사로 스타덤에 오른다. 물론 길용과 중산 역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겉으론 해피엔딩이다.
앞서 이 영화가 이분법적 구도를 피하고 있다고 했다. 겉으론 ‘그래도 이 세상에 정의는 남아있다’ 혹은 ‘인간미는 승리한다’인 듯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녹록하게 얘기를 마무리 짓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끝난 뒤 스크린에 박히는 엔딩 자막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길용의 아들은 학교에서 싸우고 돌아온 뒤 아버지에게 “그 녀석이 경찰들은 부자들 똥 닦아 주는 사람이라케서 줘박았다”고 항변한다.
‘왓치맨’의 로어쉐크(재키 얼 헤일리)는 아이를 유괴해 살해한 범인에게 “체포는 사람만 한다. 개는 죽여야지”라고 말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처단한다. 그는 진실의 은폐를 강요하는 ‘유일신’ 닥터 맨해튼의 저지에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다. 인생을 살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불평 없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말한 뒤 기꺼이 죽음을 맞는다.
그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자 꼼수를 부리는 서울 팀과 부산 팀을 향해 “너네들 자식이 유괴돼도 이럴 거냐”고 분노에 찬 호통을 치는 길용이다. 미치도록 연쇄살인범을 잡고 싶었던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송강호) 형사의 분노의 연장선상에 있다. 박 형사는 정년을 기다리지 않고 일찍 은퇴한 뒤 살짝 구린내 풍기는 사업가로 살아간다. 그것 역시 가장으로서의 최상의 선택이었다.
길용은 그냥 사람을, 그 누군가의 딸을 미치도록 살리고 싶었을 따름이다. 범인검거는 그 다음 일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37년 전을 그리지만 왠지 러닝타임을 지나다보면 현재의 얘기를 쓴다. ‘내일이 안 보이는 암울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다운 사람은 남아있다’라는 희망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쉽지 않다’는 절망을 이음동어(異音同語)로 처연하게 노래한다.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세수도 하고 목도 축이고 해야 하는데 그냥 물만 먹고 갈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 척박한 현실이라고. 하물며 달동네에서 사주팔자로 먹고 사는 소박한 도사조차도 소신을 갖고 사는 세상인데.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극비수사’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