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상류사회’, 진부한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
입력 2015. 06.15. 12:31:42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서기 900년 즈음 당나라에서 출간된 수필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예쉔은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간다. 애지중지 하던 붉은 비늘 물고기를 계모가 잡아 먹어버리자 그녀는 그 가시를 놓고 우는데 홀연히 나타난 물고기의 신령으로부터 화려한 옷과 황금 신발을 선물 받는다. 그것들을 차려입고 마을 무도회장으로 갔다가 계모와 배다른 언니에게 들켜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던 그녀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다. 그 황금 신을 본 왕이 수소문 끝에 예쉔을 찾아내 결혼한다는 얘기로 약 900년 뒤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옛 얘기들을 모아 정리한 단편집 ‘교훈이 담긴 옛날 얘기와 콩트’에 실린 ‘성드리용 또는 작은 유리 신’의 원전이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다.

이렇듯 많은 서민들의 가슴 속엔 이런 희망 혹은 판타지가 있기 마련이고 그건 그만큼 현실이 힘들며 그 어려움을 극복해 부자나 귀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단 뜻이다. 안방의 꿈의 공장인 드라마가 이런 신데렐라 얘기를 재벌가와 묶어서 자주 그려내는 이유는 최소한 기본 시청률은 안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 봐도 SBS ‘풍문으로 들었소’ MBC ‘전설의 마녀’ SBS ‘상속자들’ ‘황금의 제국’ 등 죄다 재벌가와 그들과는 태생이 다른 ‘신데렐라’의 성공스토리가 얽히고설켜 전개된 드라마가 넘쳐난다.

지난주 새롭게 시작된 SBS 월화드라마 ‘상류사회’는 아예 제목부터 ‘황금의 제국’처럼 재벌가와 서민 간의 대결구도 혹은 화합 아니면 반전을 얘기하고자 한다. 이쯤 되면 우후죽순처럼 차려진 여느 설렁탕 집과 다름없다. 지겹게 우려낸 사골국이다.

주인공은 태진 퍼시픽 그룹의 막내딸 장윤하(27 유이), 유민그룹 계열 백화점 대리 최준기(29 성준), 유민 그룹 3남으로 유민 백화점 본부징인 유창수(29 박형식), 그리고 유민 백화점 푸드마켓의 아르바이트 생 이지이(27 임지연)다.

윤하는 국내 최고 재벌가의 막내딸이지만 왠지 집안에서 ‘왕따’다. 외아들(경준, 이상우)바라기인 엄마 민혜수(고두심)는 윤하가 경준의 기를 누를 사주를 타고 났다며 드러내놓고 미워하면서 ‘네가 독립해서 살 수 있는 길은 내가 시키는 대로 시집가는 것’이라며 핍박한다.

아버지 원식(윤주상)은 전형적인 비리 재벌 회장이자 독재적인 황제 스타일로 드러내놓고 첩을 두고 살며 아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거나 자신에게 대들면 바로 돈줄을 끊는 잔인함을 지녔다. 게다가 비록 지금은 경준을 부회장에 앉히고 후계자 수업을 하고 있지만 그를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첫째 예원(윤지혜), 둘째 경준, 셋째 소현(유소영) 등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일 정도로 재산다툼에 눈이 멀어 있다.

이에 반해 윤하는 일찌감치 후계자 승계를 포기한 채 자신만의 독립적 삶을 살 자립의 틀을 다지고 있다. 부족할 것 없이 타낸 용돈으로 사치를 하는 대신 그 돈으로 주식을 사들여 이제 독립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녀는 신분을 숨긴 채 유민 백화점에서 친구 지이와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이는 고졸에 월세 20만 원짜리 연립주택 옥탑방에 사는 ‘루저’다. 상사인 준기가 무시하건 말건 드러내놓고 사랑하며 본부장인 창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투성이에 푼수기질이 다분한, 통통 튀는 캐릭터다.

준기는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한시도 부유한 적이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친구인 창수 밑에서 일하고 있고 친구로서 자전거 경주를 해도 몰래 져줘야 한다.

창수는 형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승계할 수 있는 절박한 처지인데 사실 깜냥이 부족하고 모든 여자들이 배경 때문에 자신을 유혹한다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는 ‘왕자병’ 환자다.

이렇듯 이들의 캐릭터는 유사 드라마의 캐릭터를 바꾸고 뒤섞었으며 살짝 비틀었을 뿐 어디선가 많이 봐왔다. ‘백마 탄 왕자님’ 같은 김탄(이민호)은 가난한 준기로 변했으며, 까칠하고 건방지지만 어딘지 그늘이 보이는 최영도(김우빈)는 창수로 부활했다.

가난하지만 캔디 같은 차은상(박신혜)은 재벌가의 딸이지만 ‘알바생’으로 살아야하는 윤하로 살짝 변주됐고, 지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느 누구든 한번쯤 그려봄직한 캐릭터다.

제작진은 기획의도를 이렇게 적고 있다. 윤하는 사랑을 갖기 위해, 준기는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각자 모든 걸 다 내던진다고 한다. 지이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뇌하고,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창수는 딱 하나 가질 수 없는 여자 때문에 인생이 흔들린다고 한다. 어쩐지 김탄과 차은상의 성별이 바뀌었고, 최영도는 여전히 창수처럼 외롭다. 여기에 푼수 같은 지이는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처럼 사랑도 우정도 모두 잃을 처지다. 여기에 ‘나의 사랑과 그 사람의 사랑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한다’는 ‘사랑의 머피의 법칙’이 마치 공식처럼 붙어있다.

이런 식상함 때문일까? 포드 승용차부터 화려한 패션까지 PPL이 줄을 설 정도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드라마는 지난주 홀로 시청률이 떨어졌다. MBC ‘화정’이 11.0%(닐슨코리아, 전국)로 지난 방송(10.2%)보다 0.8%포인트 상승한 가운데 1위를 굳건히 지키고 KBS2 ‘후 아 유’가 8.1%로 역시 전주보다 0.4%포인트 상승했지만 ‘상류사회’는 이날 지난 방송보다 0.3%포인트 하락한 7.0%의 시청률에 그쳤다. ‘화정’이 50부작이므로 ‘상류사회’는 ‘후 아 유’와 도토리 키 재기 싸움에 만족해야 할 모양새다.

사실 이 드라마의 배우들의 진용은 좋다. 부부로 호흡을 맞춘 윤주상과 고두심은 확실하게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상우는 예의 착한 캐릭터로 튀진 않되 딱 그 자리의 몫을 보탠다.

게다가 박형식은 ‘상속자들’과는 사뭇 다른 연기를 펼치고, 임지연은 영화 ‘간신’의 ‘알몸만 있고 연기는 없었던 배우가 맞나’라는 놀라움을 주며 푼수 연기에 소질을 보인다.

이제 유이 앞에 ‘아이돌 출신 어쩌고’ 하는 식의 불편함은 없다. 그녀는 확실히 배우가 됐다. 다만 성준의 준기에게서 아직도 ‘연애의 발견’의 남하진이 남아있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 드라마의 가장 불편한 점은 재벌가의 부조리와 비인간적인 인성의 돈에 대한 과욕,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처절한 다툼을 꼬집는, 비슷한 종류의 드라마의 전형에서 하나도 벗어난 게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 캐릭터의 과잉도 입맛을 쓰게 한다. 고집불통에 정이나 인간미라곤 하나도 없는 원식은 ‘전설의 마녀’의 악하기만 한 신화그룹 회장 마태산(박근형)이 차라리 타당해 보일 정도로 독재의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는 혜수가 보란 듯이 첩 김서라(방은희)와의 두 집 살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와 10여 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는 동안 다른 여자도 만났다. 그가 믿는 것은 식사와 섹스뿐이다. 그는 서라에게 드러내놓고 ‘넌 장난감일 뿐’이라고 차갑게 쏘아붙인다.

하지만 경준은 한 번의 이혼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이렇듯 태진 퍼시픽을 향한 세상의 감시의 눈이 번뜩이는데 원식의 제왕적 독재가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물론 서라의 캐릭터도 많이 과하다. 캐디 출신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천박하고 퇴폐적이며 상스러워 지성과는 담을 쌓았다. 전국의 여자 캐디들이 항의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혜수는 원식에게 살짝 대들었다가 돈줄이 막힘은 물론 남동생의 회사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는다. 이런 일이 전에도 없지 않았을 텐데 그녀가 뻔한 결말을 알면서 반항한다는 설정은 앞뒤가 안 맞는다. 금세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빌 정도로 혜수가 머리가 빈 캐릭터는 아닌 것으로 그려짐에도.

모든 자식이 똑같이 예쁜 건 아니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것 없다’는 말처럼 최소한 어릴 때의 자식은 부모에겐 모두 소중한 보물이다. 하지만 사주 하나 때문에 어릴 때부터 혜수가 윤하를 배척했고 그래서 상처받은 그녀가 오죽하면 친자확인까지 했다는 설정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아무리 살벌한 재벌 집안이지만 아들에 대한 집착과 애정 때문에 딸을 미워할 엄마는 없다. ‘전설의 마녀’의 막장 냄새가 벌써부터 솔솔 풍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상류사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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