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극비수사’ 흥행, 한국영화 반등의 서막?
- 입력 2015. 06.19. 17:56:09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곽경택 감독의 영화 ‘극비수사’가 개봉날인 18일 관객 18만1733명(누적 18만8396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모으며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쥬라기 월드’가 이날 세운 11만9662명(누적 235만619명)을 큰 차이로 제친 결과다.
이로써 올해 유독 외화의 강세 속에 약세를 보인 한국영화가 비로소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다. 같은 날 개봉된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이 5만3657명(누적 5만6415명)으로 3위에 올랐지만 대세에 별로 지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다음 주 한국영화의 물량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수의견’(김성제 감독)과 ‘나의 절친 악당들’(임상수 감독)이 관객들의 관심권 안으로 급하게 빨려 들어오고 있다. 이는 ‘극비수사’의 흥행 성공을 저변에 깐 기대감이다.
‘극비수사’는 ‘친구’로 한국 갱스터 누아르의 새 장을 연 곽경택 감독이 이후 블록버스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봤고, 최근 ‘친구 2’로 실망감을 안겨준 데 대한 뉘우침같은 영화다. ‘친구’에서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의 강렬한 개성을 비롯해 상택(서태화) 중호(정운택)의 조연 및 그 외 조 단역까지 독특한 캐릭터를 앞세운 연출에 익숙했던 감독은 ‘극비수사’에서는 영화 자체의 힘과 스토리의 진실성 그리고 전체적인 휴머니즘에 포커스를 맞췄다. 즉 최대한 연출의 폼의 자제하고 영화 자체의 정공법을 지키되 주연배우인 김윤석과 유해진의 깊이 있는 연기에 내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특히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판타지가 아닌 현실, 희망이 아닌 현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현실, 그래서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건 인간냄새다.
그런 메시지와 순수한 영화로서의 교과서적 패턴은 ‘소수의견’ ‘나의 절친 악당들’로 이어진다. ‘소수의견’은 인트로에서 특정 사건이나 인물과 상관없다는 자막을 깔지만 2009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참사를 모티브로 했음을 세상이 다 안다.
당시 검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해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했다.
영화는 스펙과 인맥이라곤 내세울 게 없는 무기력한 지방대학교 출신의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 그와 전혀 반대의 대척점에 서있는 고등검찰청 차장검사 홍재덕(김의성), 진원의 친형같은 이혼전문 변호사 대석(유해진),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 신문기자 수경(김옥빈), 그리고 철거현장에서 16살 아들을 죽인 전투경찰을 죽였으니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경찰 살해 용의자인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이 주인공이다.
검찰은 소년을 죽인 범인이 농성 중인 철거민 진압에 투입된 용역깡패라고 주장하며 그 중 한 명을 용의자로 잡아들이고 용의자는 혐의를 시인한다. 하지만 국선변호인으로서 재호를 만난 진원은 그로부터 범인이 경찰이란 주장을 듣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석 수경과 함께 고군분투한다.
이 영화는 부정적인 시각을 내는 보수성향의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정의를 웅변한다. ‘극비수사’가 수사물이지만 정작 수사 자체에 힘을 싫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과 가장의 소박한, 그러나 절실한 가족보호에 포커스를 맞췄듯이 ‘소수의견’ 역시 자신들의 의도나 이익과 상관없는 참사현장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16살 소년과 20살 청년의 아버지들의 찢어지는 아픔을 그린다.
‘극비수사’의 주인공 공길용(김윤석) 형사와 김중산(유해진) 도사는 신념과 희망대로 유괴됐던 초등학생 소녀를 무사히 생환시키지만 정작 그 공로는 엉뚱한 사람들에게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예전대로 전형적인 서민의 삶 속에서 가족이 지켜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족하며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극비수사’가 허무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구석도 있고 어쨌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소수의견’도 어느 정도 그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소수의견’은 ‘극비수사’의 허무함을 아쉬운 분노로 조금 크게 키운다. 그리고 그 정서는 ‘서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 왜? 부자는 세습이니까’라고 주장하는 ‘나의 절친 악당들’로 이어진다.
‘나의 절친 악당들’의 주인공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단칸방에서 대학 4년을 다닌 뒤 간신히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곧 정규직으로 승격되지만 여전히 빚은 수천만 원 떠안고 있는 지누(류승범)와 무허가 건물에서 태어나 일찍이 엄마를 여읜 뒤 아버지까지 분신자살로 떠나보낸 뒤에도 여전히 그곳에 사는 견인차 기사 나미(고준희)다.
그리고 나미의 카센터에서 일하는 가나 출신 불법체류자 야쿠부(샘 오취리)와 그의 아내 정숙(류현경), ‘악의 축’인 재벌 회장(김주혁)과 그 ‘똘마니’들이다.
우연히 회장의 비자금을 손에 쥔 지누 나미 야쿠부 등은 회장 부하들에 쫓기다 결국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위기를 맞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 ‘증거물’을 획득한 뒤 회장에 맞서 싸운다.
스토리는 그렇게 깜짝 놀랄 만한 요소나 자극적인 흥밋거리를 가득 품고 있진 않다. 하지만 이 시대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그래도 용기를 내라’ 식의 희망고문같은 작위적인 메시지가 아닌, 아주 현실적인 반항과 일탈을 종용한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가 아니라 ‘기왕 살 거면 멋지게 살라’다.
하지만 사회비판적인 장치에 익숙한 임 감독은 지누의 무기력한 남성상과 오히려 지누보다 더 마초적이고 의리를 지키는 나미의 액션을 통해 페미니즘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에 과감하게 대항하는 젊은이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리고 그는 ‘부자는 세습’이라고, 타고난 가난은 노력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처연하게 노래한다. 그래도 지누와 나미는 유쾌하다. 젊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수의견’과 ‘나의 절친 악당들’은 각 장르가 가진 특성에 충실해 관객을 친절한 재미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감동으로 이끈다. 그건 ‘극비수사’가 내내 어둡고 우울하다가 마지막에 ‘유쾌 상쾌 통쾌’한 웃음 한 방을 날려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