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AOA ‘심쿵해’와 신조어 공해
입력 2015. 06.22. 09:34:07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대중가요가 단순히 주막에서 취객들이 흥에 취해 젓가락을 두들기며 구성지게 읊조리는 유행가 수준을 넘어 ‘3분의 대중예술’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절묘한 음악적 구성으로 이뤄지는 완성도(작품성)와 더불어 가사가 담고 있는 철학 혹은 메시지 덕이다.

성우만큼의 호소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통해 대중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라는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심오한 가사가 대중의 유행가마저도 고급스럽게 즐기고 싶은 기호를 맞췄기 때문이다.

단 한 장의 앨범만 냈고 타이틀곡 ‘사랑하기 때문에’가 방송사 인기차트에 오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고 유재하가 위대한 뮤지션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기존 대중가요의 작곡과 편곡의 형태에서 벗어나 재즈와 클래식과의 훌륭한 조화를 이뤄냈으며 가사가 시에 다름없을 만큼 수려했기 때문이다.

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 무려 741주 동안 머무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4000만 장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싱글이 아니라 앨범이다.

로저 워터스가 담당한 가사는 현대인의 광기에 짓눌린 혼돈스러운 의식과 자본주의의 병폐에 얽매인 참담한 심경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음악은 프로그레시브록 특유의 우주적인 신비함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일상적인 소음부터 기계음까지 효과음으로 채택함으로써 가사와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더구나 앨범 한 장에 수록된 모든 곡은 하나의 컨셉트로 연결된 연작이다.

AOA의 세 번째 ‘미니 앨범’이라는 ‘하트 어택(Heart Attack)’의 타이틀곡 ‘심쿵해’가 지난 22일 오전 7시 기준 지니 엠넷 올레뮤직 소리바다 네이버뮤직 몽키3 등 6개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정상에 등극했다고 한다. 엑소의 ‘러브 미 라잇(Love Me Right)’이 1위를 차지한 멜론에서는 4위다.

미리 공개된 ‘심쿵해’의 뮤직비디오에서 AOA는 라크로스라는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스포츠를 보여준다. 의도는 좋다. 컬링처럼 비인기 종목에서 보이지 않는 땀으로 박수갈채조차 받지 못하는 스포츠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끌고자 했다면 박수갈채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그리고 끝날 때도 멤버들이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골반을 야릇하게 상하로 펌핑하는 안무는 왜 라크로스를 선택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던질 소지가 다분하다.

요즘 정상급 인기 아이돌그룹의 신곡은 이변이 없는 한 발표되자마자 각종 음원차트 1위에 오르지만 웬만한 음악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처럼 1달 전 공개됐을 땐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꾸준한 스테디셀러같은 지지 속에 드디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건 음악의 진정성과 소비성 문제다.

아이돌의 신곡은 발표 당시 일시적 인기는 얻을지언정 스테디셀러가 되거나 노래방의 오랜 애창곡이 되진 못하다. 물론 장기간 애청되는 일도 드물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1994년 발표 당시 20~30대 젊은이들의 인기를 얻고 사라졌지만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 살짝 삽입된 것 하나만으로 부활해 역시 현시점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그건 음악이 소비적 성향이 아닌, 진정성을 담은 가사와 완성도 높은 음악적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쿵해’는 컴퓨터로 만든 리듬 섹션의 반복과 더불어 심금을 울릴 만한 아날로그 악기의 편성 하나 없이 오로지 컴퓨터로 찍어낸 동음이어의 재탕 같은 단순한 편곡이 한 번만 들어도 질리게 만든다. 더불어 이퀄라이저를 잔뜩 덧씌워 조율해낸 보컬은 누구 목소리인지, 무슨 가사를 읊는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음악도 창작자의 작가적 의도가 중요하므로 대사나 가사의 왜곡 혹은 비표준어 사용에 관용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드라마 ‘착한 남자’의 원래 제목이 ‘차칸 남자’였던 것은 ‘원래 착했지만 상처 때문에 착할 수만은 없는 주인공’이란 극의 흐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쿵해’는 그런 깊은 뜻과는 달리 그저 인스턴트식 사랑에 익숙한 요즘 10~20대들의 유행어를 사용함으로써 소비적 효과만 노리자는 목적 외에는 별다른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국어파괴는 하나도 바람직한 게 없다. 이런 그릇된 국어파괴 현상에 대한 자각도 없이 오직 청소년들의 그릇된 언어문화에 편승해 돈을 버는 것만 볼 뿐 우리 조상이 만들어낸 훌륭한 문화이자 자산인 국어가 파괴되는 폐단을 못 보는 근시안적 판단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게다가 가사 앞부분의 ‘완전 반해 반해 버렸어요’와 중간 이후 후반부의 ‘너무나 멋진 그대’ 역시 도대체 국어를 제대로 알고 쓰는지, 작가주의적 표현법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하는지 의심이 든다. 이러니 청소년의 국어파괴 현상이 자꾸 심각해지는 것이다.

‘완전’은 모자람이나 흠이 없이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졌음을 의미하는 명사다. 여기에 앞말의 행동을 시키거나 앞말이 뜻하는 상태가 되도록 함을 나타내는 ‘하다’라는 보조동사가 붙어서 ‘완전하다’ 혹은 ‘완전히’ 등으로 활용하지 명사 자체로서 관형어를 수식할 수 없다.

‘너무’를 강조한 ‘너무나’는 부정적 성격의 부사이므로 ‘너무 아파’ ‘너무 슬퍼’ 등으로 쓰지만 ‘멋지다’를 수식할 순 없다. 그건 매우 정말 아주 등이나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심쿵해’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들으며 AOA가 ‘너무’ 좋아서 ‘심쿵’해지며 ‘완전’ 즐겁다면 그건 문화적 공해지 ‘3분의 예술’은 아니다. 그리고 ‘미니 앨범’은 EP가 옳다. ‘미니’와 ‘앨범’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음반은 싱글 EP 앨범 등으로 나뉜다. 초등중학생이란 말은 없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AOA가 작사 작곡 편곡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거나 혹은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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