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 ‘배트맨’ ‘엑스맨’의 핸디캡
입력 2015. 06.23. 09:21:39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영화야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것이나 ‘그 철학이 어떻더라’는 토론 등에 앞서는 것은 당연히 재미와 시간 때우기다.

그래서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가 앞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철학을 찾는 게 무리이거나 과욕이긴 하지만 요즘 샘 레이미, 피터 잭슨, 잭 스나이더, 크리스토퍼 놀란, 브라이언 싱어 등의 의식 있는 감독들은 단순히 관객동원에만 주력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사고를 주입하려 노력하기에 이들의 영화는 재미 외에도 지적인 유희를 즐길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은 분명 메이저 스튜디오에 생긴 새로운 기조다.

최근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만 해도 스튜디오의 입김이 감독의 작가주의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마블코믹스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스 웨던 감독은 전편보다 진화한 철학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을 엿보게 만든다.

‘어벤져스2’의 슈퍼빌런은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으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보다 더 강력한 아이언맨 군단을 만들기 위해 조성한 첨단 시스템 자비스 프로그램의 오류로 탄생한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어벤져스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으로 그려지지만 기본적으로 울트론의 사상은 어벤져스와 마찬가지로 세계평화다. 다만 인류를 몰살함으로써 지구의 자연과 동물에게 평화를 주려는 목적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건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9년 작품 ‘왓치맨’과 얼추 비슷하다. 현역에서 물러난 선배 왓치맨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이 어느 날 살해당하자 현역 왓치맨 로어셰크(재키 얼 헤일리)는 어떤 강력한 세력이 왓치맨을 차례로 제거하고자 한다고 판단해 수사를 주도한다.

왓치맨은 모두 사람이지만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은 신을 능가할 만큼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진짜 슈퍼히어로다. 슈퍼맨은 크립토나이트라는 약점이라도 있지만 그에게는 그런 게 없고 우주의 어느 별로도 아주 간단한 순간이동이 자유로우며 몇 초 만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초능력을 보유했다.

로어셰크는 동료 중 가장 부자이자 전투능력이 닥터 맨해튼 다음인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가 세계의 주요 도시 몇 곳을 파괴함으로써 곧 벌어질 세계 3차 대전을 막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아내는 데 성공해 왓치맨들을 이끌고 오지맨디아스의 비밀기지로 간다. 이곳은 공교롭게도 슈퍼맨의 오래된 비밀기지가 있는 곳과 흡사하다. 잭 스나이더는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의 연출을 맡을 예정이다.

오지맨디아스를 이기지 못하고 수천 명이 사망하는 아수라장을 목도할 위기에 처한 로어셰크 일행은 때마침 나타난 닥터 맨해튼에게 오지맨디아스를 저지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오지맨디아스의 설명을 들은 닥터 맨해튼은 ‘나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만은 못 바꾼다’며 오지맨디아스의 손을 들어준 후 오히려 이를 세상에 폭로하겠다는 로어셰크를 죽인다.

물론 지구는 수천만 명의 희생으로 ‘평화’를 지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울트론의 사상은 닥터 맨해튼과 맞닿아 있다. 전지전능한 닥터 맨해튼마저도 ‘인간의 본성만은 바꿀 수 없다’며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방관한 뒤 지구를 포기하고 먼 우주로 순간이동한다. 하지만 울트론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멸종시킨 뒤 남은 생명들의 평화라도 지키자’는 신념을 지녔다.


이건 어쩌면 ‘엑스맨 : 데이지 오브 퓨처 패스트’ 속 철학과도 연결된다. 가까운 미래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가 오래 전에 발명한 돌연변이 제거용 첨단 로봇 센티넬로 인해 엑스맨들이 멸종될 위기에 처하자 찰스 자비에는 울버린을 1970년대로 보내 센티넬의 발명 자체를 막게 한다.

아직 트라스크가 센티넬 제작을 국가로부터 승인받기 전 그는 의회를 상대로 센티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예전에 네안데르탈인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진화한 크로마뇽인들에 의해 멸종됐듯이 엑스맨들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고.

아마도 울트론은 현 인류를 멸종시킨 뒤 새로운 종인 신인류의 탄생을 기대하고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다소 음울하지만 그래도 유머가 살아있는 동화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은 혼돈과 혼란 속의 디스토피아고, 배트맨은 단지 고뇌하고 갈등하며 끊임없이 자신과의 내면의 다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왓치맨같은 캐릭터다.

로어셰크는 어려서 겪은 트라우마로 내내 아파한다.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홀어머니는 그를 애물단지로 취급했고 친구들은 나약한 자신을 ‘창녀의 아들’이라고 놀리면서 수시로 폭력을 가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어린 로어셰크는 드디어 자신을 업신여기는 세상을 향해 무기를 들었고 그것을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휘두르며 세상을 향한 복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성장한 로어셰크는 나약한 법을 믿지 않고 악을 단죄해갔다. 아이를 유괴해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을 잡은 그는 살려달라는 용의자를 더 잔인하게 죽이며 이렇게 외친다. ‘용서는 사람만 하는 거다. 개는 죽인다’라고.


어쩐지 배트맨과 닮았다. 배트맨은 나름대로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철칙은 있지만 그는 법을 무시한다. 게다가 그 역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지금까지 시달린다.

로어셰크는 머리 전체에 뒤집어쓰는 ‘쫄쫄이’ 모자에 집착하며 그것을 ‘얼굴’이라고 칭한다. 이 모자는 그의 감정변화에 따라 무늬가 변화한다. 그건 복잡다단한 배트맨의 내면과 닮아있다.

낮에는 고담 시 최고의 갑부인 브루스 웨인으로서 항상 파티 속에 파묻혀 살고 미녀들과의 로맨스를 그림자처럼 달고 살지만 정작 밤이면 얼굴을 가린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정의와 법의 수호 사이에서 방황하는 배트맨으로 사는 그의 이중성은 로어셰크의 어둠과 엇비슷하다.

물론 토니 스타크도 배트맨과 비슷하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화려한 삶을 살면서도 아이언맨으로 자신을 감춘 채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회사가 판 무기로 서방세계를 공격하는 테러단체에 맞선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배트맨과 다르기도 하다. 일찌감치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 뒤 나름대로 유쾌하게 인생을 즐길 줄 안다. 그건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정체성의 차이로 분석된다.

‘어벤져스1’에서 토니 스타크는 영국이 낳은 하드록 그룹 블랙 새버스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1970~80년대 역시 영국 출신의 딥 퍼플과 자존심을 걸고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이들은 비교적 블루스에 기초한 정통 하드록을 추구했던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과는 달리 소위 ‘사탄 메틀’이라 불리는 오컬트 적 요소를 강조했다.

특히 리드 보컬리스트 오지 오스본은 악마 분장을 하고 무대 위에 올라 살아있는 비둘기를 뜯어먹는 등의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경악시키기도 하는 기행을 펼쳤고 그래서 대중은 그들을 ‘쇼크록’ 밴드로도 불렀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히트곡 중 하나가 ‘Paranoid’(편집증)이다.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는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와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라는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와 경쟁을 펼쳐야 했지만 무명 시절 생활비를 대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가 오른손 중지와 약지의 끝마디가 절단된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핸디캡을 잘 극복한 노력파로 알려져 있다. 그건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타크는 정신병자라는 게 확실할 정도로 결점투성이다.

아마 조스 웨던 감독 혹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울트론과의 연계성일 것이다.

어쨌거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슈퍼히어로는 우울하다. ‘어벤져스2’의 퀵실버(애런 테일러 존슨)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남매는 가상의 도시 소코비아에서 만들어진 뮤턴트 즉 엑스맨이다. 울버린처럼 이들 역시 어릴 적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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