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더 지니어스 4’ 장동민과 ‘고집불통’
- 입력 2015. 06.23. 14:44:49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KBS2 ‘개그콘서트’에 ‘고집불통’이란 코너가 있다. 아파트 입주민 송필근이 더위를 잊기 위해 호러영화 DVD를 대여해온다. 그러자 경비원 임우일은 공동주택에서 호러영화를 보면 안 된다고 가로막는다. 보다가 무서울 것이고 그러면 비명으로 이어져 단지 내 소음이 돼 다른 입주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입주민 중 임우일과 친구로 지내는 이성동이 보는 것은 패스다.
원칙만 고집하는 융통성 혹은 탄력성의 부재현상이 서민들의 삶에 피해가 되는 상황을 꼬집거나 더 나아가 잘못된 규칙에 연연하느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콩트다.
장동민 혹은 케이블TV tvN이 그런 식으로 화난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행보다.
23일 서울 마포구 CGV상암에서 tvN ‘더 지니어스 : 그랜드 파이널’(이하 ‘더 지니어스 4’)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행사에 홍진호 이상민 김경란 이준석 최정문 유정현 임윤선 오현민 김경훈 김유현 최연승 그리고 정종연 PD가 참석했는데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 막말파문으로 대국민사과까지 했지만 외면당하는 분위기가 짙었던 장동민이다.
그는 “공식 석상에 오랜만에 나왔다. 먼저 말씀 하나 전해드리고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겠다”며 “얼마 전 과거의 발언 때문에 상처받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다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진심으로 죄송하다. 앞으로 방송을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다”고 재차 용서를 빌었다.
‘개그콘서트’를 tvN에서 보는 느낌이다. 도대체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기나 하는 건지, 여론이 어떤지, 막말로 상처 입은 당사자의 고통이 어떤지 알고나 있는지, 장동민도 tvN도 소통을 포기한 고집불통으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문제가 된 장동민의 발언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처참하고 잔인하며 인격을 극도로 모욕하는 단어와 내용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이 대중의 사랑을 받아 그걸 바탕으로 부를 얻고 명예를 쌓은 유명 연예인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나왔는지 대중이 혀를 내둘렀던 터다.
앞선 ‘1차 사과’의 자리에서 장동민은 대중의 들끓는 방송하차 요구에 “제작진에게 맡기겠다”는 본질과 한참 벗어난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이번엔 “방송을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단다.
이건 삼척동자도 웃을 사과다. 분노하는 사람은 대중이고, 상처 입은 사람은 막말의 직접적 피해자다. 그가 방송에 떳떳하게 나올 수 있는 근거는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이고, 이를 통해 당사자가 마음에서 우러나온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민 뒤, 그걸 보고 다수의 대중이 그를 방송에서 봐도 불편할지 그렇지 않을지 내리는 판단에 있다.
제작진의 판단에 내맡긴다는 것은 그 자리에 사과하라고 내세운 제작진의 의도를 이미 알고 나서 하는 뉘앙스가 짙은데 거기서 진정성을 느끼라는 사과의 진짜 뜻이 어떤지는 몰라도 다수의 대중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것은 이미 여론으로 입증됐다.
게다가 방송을 열심히 하는 게 보답이라는 논리는 억지를 넘어서 아전인수의 이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송을 열심히 하면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그다. 물론 시청률이 높게 나오면 방송사도 이득이다.
또한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시청자가 100퍼센트는 아니니 부분적으로 그의 개그에 즐거움을 느낌으로써 삶의 활력을 얻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시청자는 ‘더 지니어스 4’를 시청하고 안 하고를 떠나 물의를 일으키고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읽기 힘든 불편한 연예인이 당당하게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나쁠 가능성이 높다. 결정적으로 피해 당사자의 분노와 더불어 ‘정의와 도덕과 질서가 바로 서지 못하는 사회’ 혹은 ‘연예인이 갑인 사회’라는 피해의식이 발생하기라도 했을 경우가 문제다. 누가 어떻게 그들을 위무해줄 것인가?
장동민의 소속사 코엔그룹은 연예인 기획사 코엔스타즈와 더불어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사 코엔미디어를 동시에 운영하지만 그 프로그램에 장동민을 출연시키진 않고 있다. ‘대중문화계의 공룡’ CJ C&M 계열사인 tvN은 정작 소속사의 제작진마저 외면한 장동민의 출연을 강행군하는 타당한 이유를 시청자에게 설득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도덕적 책임까지 저버린다면 적지 않은 시청자를 실망시킬 것이다.
강호동은 세금과소납부로 1년여 스스로 방송을 떠났다. 그리고 철저하게 칩거생활을 하는 동안 재산 일부의 사회환원도 했다. 복귀 후 그의 활약상은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그가 그런 것들을 예상 못 했을 리 없음에도 잠정중단을 택한 이유는 만약 강행군한다면 작은 것을 지키려다 큰 것을 놓친다는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토니안 이수근 등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도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다. 다만 팬들의 실망과 다수 대중의 화를 키웠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두말없이 방송을 떠났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기 때문이다. 군사작전 중 기본이 ‘작전상 후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있다. 로마제국 초기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시사용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한국전쟁 때엔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나 참전했는데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운데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내보낸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 대중의 추앙을 받거나 인기를 얻는 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티브이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