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밴드’ 원더걸스, AOA 전철 안 밟는 법
- 입력 2015. 06.26. 11:35:42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걸그룹 전성시대를 연 선구자 원더걸스가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한 지 3년 만에 돌아온다. 처음부터 끝가지 원더걸스를 지켜온 ‘오리지널’ 멤버는 예은밖에 없지만 원년 멤버인 선미가 되돌아온 게 초심을 지켜온 팬들이 무척 반길 요소.
아무리 원더걸스가 걸그룹 전성기의 초석을 다진 첨병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들보다 약간 늦게 등장해 같은 해부터 좋은 라이벌로서 서로의 긴장감을 자극해 함께 성장한 소녀시대가 건재하긴 하지만 원더걸스가 미국시장을 개척한 이래 그동안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그녀들의 빈자리를 나눠가졌다.
원더걸스의 평균연령도 26살로 만만치 않다. 맏언니 유빈은 28살이다. 더 이상 ‘걸스’가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JYP가 꺼내든 카드가 밴드다. 예은이 키보드를, 혜림이 기타를, 선미가 베이스를, 유빈이 드럼을 각각 맡아 농염하거나 귀엽게 ‘텔 미’ ‘노바디’를 외치며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보다 더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승부수를 띠운다.
그룹과 밴드는 의미가 다르다. 두 명 이상이 모이면 그룹이 되는 넓은 의미라면 밴드는 그 그룹 중 스스로 연주 작곡 편곡 등을 소화해내는 집단을 의미한다.
경력이 쌓임에 따라 음악적 색깔을 정립한 일부 아이돌은 그렇지 않지만 데뷔 초는 당연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대부분의 아이돌그룹은 오직 소속사가 기획한 음악에 따라 노래하고 춤출 따름이다. 그건 소속사 혹은 소속사가 고용한 프로듀서들의 기획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퍼포먼스 엔터테이너 수준이란 의미다.
그래서 밴드는 의의가 많이 다르다. 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로 이뤄지는 지금의 밴드의 기본 구성은 1940년대부터 미국에서 태동된 로큰롤 밴드에서 기인한다.
블루스는 미국 남부 노예 출신 흑인들이 만들었다. 여기에 백인들이 강한 비트를 첨가하고 노예 해방과 프랑스의 피를 이어받은 부유층 흑인들의 적극성이 더해져 리듬 앤드 블루스가 된다. 미국 남서부의 카우보이 광부 농부 등 백인 육체노동자들은 신대륙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들이 즐기던 토속음악 블루그래스에 포크를 뒤섞어 컨트리 앤드 웨스턴이란 통속적인 대중가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1940년대부터 흑인과 백인 뮤지션들이 리듬 앤드 블루스와 컨트리 앤드 웨스턴을 적당하게 버무려 로큰롤이란 음악을 완성한다. 이 음악은 즉흥적이고 통속적이며 꽤나 관능적이어서 금세 미국의 젊은이들을 사로잡는다.
1955년 6월 록밴드 빌 헤일리 앤 더 코메츠가 ‘Rock around the clock’으로 전미 인기차트 1위에 오르면서 로큰롤이란 이름과 그 음악이 선풍적으로 유행되기 시작했고, 이듬해 멤피스의 트럭운전사였던 엘비스 애런 프레슬리가 데뷔한 뒤, 로큰롤은 전 세계의 대중음악계를 휩쓰는 가운데 보다 더 포괄적이고 심오한 장르로 진화한 뒤 오늘날 지구촌의 가장 공통적인 문화적 정서로 자리 잡게 된다.
특히 이 록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을 기점으로 젊은이들의 저항문화로 직결된다. 반전 반핵 자연보호 정신부터 시작해 자본주의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혹은 염세주의 등이 그 바탕이다.
1960년대를 지배한 비틀즈 해체 뒤의 1970년대는 하드록의 전성시대였고, 이때 기타리스트(2명) 베이시스트 드러머 등의 4인조 밴드는 마치 록밴드의 교과서인 양 자리매김했다. 이와 동시에 여기에 키보디스트가 더해진다. 명 키보디스트 존 로드가 이끌던 딥 퍼플은 하드록밴드로선 꽤 깊고 폭넓은 사운드를 추구했는데, 그들의 명곡 ‘April’은 하드록에서 파생된 클래식넘버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바로 원더걸스가 그런 악기의 조합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자 로커는 있었지만 성공한 여자 록밴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자로커로 손꼽히는 조니스 조플린은 블루지한 보컬로 가장 유니크한 명성을 자랑했지만 남자 밴드의 지원사격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명 기타리스트 조안 제트가 이끌던 런어웨이즈라는 여성 록밴드가 한때 눈길을 끌긴 했지만 1976년 데뷔 이후 잦은 멤버교체로 결국 3년 만에 해체됐고, 그 이후 여자 록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하트의 앤과 낸시의 윌슨 자매 역시 나머지 남자 멤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명성을 떨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댄스 걸그룹이었던 원더걸스가 하루아침에 런어웨이즈가 될 순 없다. 그들이 선천적으로 뛰어난 음악성을 타고 났고, 그동안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록밴드의 진용을 갖추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건 AOA가 이미 증명했다. 씨엔블루와 FT아일랜드가 소속된 FNC는 2012년 각 기획사마다 작심하고 야하게 꾸민 걸그룹을 내놓는 시장에서 야심차게 걸밴드 AOA를 데뷔시켰다. AOA는 거대 기획사의 세력에 힘입어 대중매체를 ‘도배’하는 노출빈도를 자랑했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결국 FNC는 곧바로 이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혀 1년여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지난해 ‘사뿐사뿐’으로 인기대열에 합류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사뿐사뿐’의 컨셉트가 고양이다.
1979년부터 수년간 국내 가요계를 강타한 6인조 혼성밴드가 있었으니 임종임이 이끌던 들고양이들이었다. 이들은 ‘연안부두’와 ‘마음약해서’란 불멸의 히트곡을 낳았는데 장르가 트로트고고라는 변종이다. 한국전쟁 이후 국내에 물밀 듯 밀려온 록에서 파생된 고고라는 댄스적 경향이 짙은 가벼운 팝의 형식에 트로트의 멜로디를 입힌 장르다.
결국 원더걸스의 숙제는 어떤 장르의 음악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고 구닥다리 기형아 트로트고고를 할 순 없지 않은가?
AOA의 데뷔곡 ‘엘비스’는 도대체 그들이 왜 밴드로 나와야 했는지 의심을 자아내게 했던 형태였다. 기존의 걸그룹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에 랩을 덧입히고 후크송의 반복적 구성이었다. 내추럴 악기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컴퓨터로 조작한 소리만 시끄러웠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였다.
물론 원더걸스가 그런 악수를 재현하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이 들고 나올 음악이 궁금하고, 열성팬들의 반응이 흥미지수를 올린다.
지금까지 JYP 소속 가수들은 박진영이 만든 노래 위주로 취입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박진영의 진두지휘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작 백아연의 음악은 철저한 현대적 소울 취향의 박진영과는 많이 다른, 록과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백아연의 자작곡이다.
원더걸스의 신곡은 그들이 직접 만들면 가장 이상적이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박진영의 입김을 배제한 새로운 프로듀서를 끌어들이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JYP의 정욱 대표는 록 마니아고 오래 전부터 록밴드의 배출을 꿈꿔왔다. 박진영과는 많이 다르다. 원더걸스의 새 음악이 어떤 형태를 띨지 대충 윤곽은 잡힌다. 레퍼런스는 킴 칸즈, 보니 타일러, 신디 로퍼, 마돈나 등이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시크뉴스DB, 티브이데일리 제공]